brunch

해가 뜨면 겨우 잠들던 나

by 열시

최근 몇 년간 나는 새벽 5시~6시 사이에 잠들고 오전 11시쯤 일어나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니 웹툰이나 소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 보면 바깥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쓰레기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 슬슬 잘 준비를 하고 멍 때리다 보면 잠드는 시간이 매번 동트기 직전이었다. 잠이 부족하니 오후에 낮잠으로 잠을 보충하는 것도 습관처럼 굳어졌었다.


밤이 되고 혼자인 시간이 찾아오면 쓸데없는 생각과 걱정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된다. 몇 년이 지나버린 일, 이미 결과가 나온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의 최악의 최악을 상상한다. 그때 그러면 안 됐었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면 어떡하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학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다 혼자 울기까지 했다.


그래서 매체들을 접했다. 뭐든 보고 있는 순간엔 잡생각이 사라지니까. 물론 재밌기도 했고.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밤에 잠을 잘 자지 않는 편이긴 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새벽까지 만화를 보다가 밤샌 것을 들키기 싫어서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온 척 나갔다가 들어왔을까. 이게 가능했던 것도 부모님은 그 당시, 아침에 퇴근하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정말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던 가정환경이었다.


이런 잠버릇을 가진 상태로 나이가 들고, 점차 생겨난 불안과 우울까지 더해지면서 최근까지의 생활 패턴을 최종적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건 밤에 딴짓을 계속하니까 못 자는 거 아니냐며 말하곤 하지만 엄연히 순서가 다르다. 무언가를 봐서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잠을 못 자기 때문에 버티고 버티다 뭐 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 상황은 그 누구도 이해를 못 해줬다. 그게 그거 아니냐며 핑계 대지 말라고, ‘낮잠을 자니까 밤에 못 자지’ 또는 ‘밤마다 휴대폰을 그렇게 붙잡고 있으니까 잠이 오니’ 같은 말들은 그저 내 고민을 쉽게 생각하고 결론짓는 편견들이었다. 심지어는 가족들 마저도.


이렇게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당연했던 나는, 병원에서 자기 전에 먹는 약을 줄 테니 취침시간을 당기고 푹 잘 수 있게끔 생활 패턴을 바꿔보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회의감이 들었다. 수면제도 아니고 항불안제를 먹는다고 잠자는 게 편해질까 싶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불안감이 많은 사람은 잠도 잘 못 자는 경우가 많다나?


약 먹는 시간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으라길래 이왕 시작하는 거 아예 극단적으로 약을 먹어보자 싶었다. ‘나’을 위해 조금씩 바뀌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12시에 약을 먹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일주일은 너무 말똥말똥하길래 눈을 감고 망상이나 하자 싶어서 긍정적으로 변한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휴대폰도 최대한 안 보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엔 2시쯤에 잠이 드는 게 아닌가.


예전엔 그 어떤 난리를 쳐도 불가능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푹 잤다. 말도 안 되게 개운한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낮잠은 생각도 안 나더라.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점차 잠드는 시간이 앞당겨질 때쯤엔 짧은 시간에 확 바뀐 취침 시간 때문인지는 몰라도 부작용이 생겨났다. 자꾸 새벽에 깨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이건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엔 새벽 3시쯤 한번 정도만 깨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에는 새벽 2~3시경에 한번, 그리고 6~7시 사이에 또 한 번. 거의 2~3번을 새벽에 깨게 된다. 자다 깨는 그 순간에는 너무 개운한 느낌이라 다시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째 다시 잠이 들긴 하더라. -이 시기의 최종 기상시간은 8~9시 사이였다-


근데 이게 며칠간 지속되자 점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상담하니 중간에 깨는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자라더라. 정신이 말짱해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 감고 자려고 노력하고, 오로지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만 신경 쓰라고 한다.


자는 것도 제대로 못하나 싶어서 스트레스받고 문제로 느껴졌던 게 상담 한 번에 정말 별 것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해지니 생각도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깨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6시 넘어서 깨게 되면 다시 자지 말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자.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침 친한 언니를 만나 내 상황을 말하니 언니가 하는 말이, 내 몸은 6시쯤에 일어나도 수면시간이 충분해서 자꾸 깨는 것 같으니 그냥 일어나서 생활을 해보란다. 내가 무작정 시도하려는 일에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천재인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래 봤자 2명이지만- 아예 6시든 7시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 버리면 중간에 깨는 것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더라.


나를 위한 모닝 루틴도 만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 일기를 작성한 뒤, 나의 하루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브이로그를 간단하게 편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스 헤드라인을 읽는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보니 두세 번 잠에서 깨던 게 한 번으로 줄어들어 괜히 더 잘 잔 기분이 든다.


요즘은 알람 없이 6~7시 사이에 기상하고 있다. 일어나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저 시간에 알람 없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성취감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늘 잠이 부족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알람을 5분 간격으로 두 시간 전부터 맞춰 둬야 겨우 잠에서 깨던 사람이었다.


어디 놀러 가면 내 알람 소리에 주위 사람들만 기상하는 그런 민폐 스타일의 친구가 바로 나였다. 우리 집에서도 나만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른 가족들만 기상한다. 물론 이렇게 알람을 맞춰 놓고도 제시간에 못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니, 과거의 나를 이렇게 글로 써보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싶네.


같은 사람 맞냐구~!


불규칙한 수면시간을 보냈던 과거보다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지금은 삶의 질이 굉장히 많이 올라간 상태이다. 새해마다 다짐했지만 실패했던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일찍 일어나는 것의 장점을 하나 꼽아보자면 계획한 일들을 미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엔 잠들지 못하는 새벽시간이 기니까 그때 일을 처리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낮에는 할 일을 미루기 마련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게을러서였겠지만. 그래 놓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나는 왜 이것도 못하냐며 자책하곤 했다. 참고로 mbti는 j이다. 게으른 계획형이었달까..?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 버리니까 계획한 모든 일들이 오전에 끝이 나버린다. 뭘 해도 시간이 남아서 오히려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길래 독서도 시작했다. 심지어 늘 보던 웹소설이 아닌 한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나가서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만들어 뒀던 도서관 카드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심지어 반납기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 내에 책을 다 읽어야지!라는 마음이 드는 약간의 강제적인 시스템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바깥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 자체를 불안해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책 하나 읽겠다고 도서관을 가게 된 것도 아주 큰 발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만으로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작고 소소한 일일지라도 성취감이 올라가니 자존감도 같이 올라가더라.


11시 넘어서 일어나던 사람이 6~7시에 일어나는 것은 개인적으로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란 것이지. 밍기적거리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누군가는 약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수면제가 아닌데 이렇게 효과가 좋다고? 심지어 내 약들은 전부 약하게 처방된 것이라 엄청난 변화를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난 85% 정도는 내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목적 없는 불안감 때문에 잠을 설치던 과거의 잔재는 많이 줄어들었다. 우울한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게끔 일찍 자버리니까!


혹시 매일매일이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괜히 불안하고 우울하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기분이 드는 시간이 많다면 한번 자는 것부터 바꿔보는 게 어떨까?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새벽마다 깨어나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낮잠을 자버리기도 하지만 조금씩 삶이 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별 것 아닌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처럼 어떤 결과를 가져와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일단 시작해 보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믿지 않는 말이니까.


갓난아기도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치는가? 그 과정을 거쳐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우리는 이미 그 험난한 첫걸음을 뗀 상태이다.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위해 시작한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