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어야 아이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
매일 스스로를 용광로에 던져버리는 싶은 충동을 일으킬 만큼 나 자신이 통재가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8년째 주 양육자로 살고 있지만, 가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 앞에서 망연자실할 때가 있다.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걸까?'
'아빠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억울함과 실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나는 피해자, 아이는 가해자처럼 느껴지도 한다.
그런데 코칭을 공부하며 아주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그 '문제 행동'들이 사실은 아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눈에 씌워진 '기대감'이라는 안경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한다.
"우리 애는 너무 산만해."
"우리 애는 너무 예민해."
마치 이것들을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처럼 단정 지어버린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조금만 깊게 들어가 보면, 그 단단한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세상이 곧 객관적인 진짜 세상"이라고 믿는 착각
인간은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을 뇌라는 '편집실'을 거쳐 재구성된 세상으로 인식한다.
편집실의 감독은 바로 나의 과거 경험, 편견, 그리고 그날의 기분이 된다.
나는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물을 쏟았다.
평소라면 "실수했구나" 하고 넘길 일을 "너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물이 쏟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부주의함'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행동'으로 해석한 건 전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였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태로 바라본다.
내가 만든 프레임에 아이를 가두지 말자.
내가 '반항적인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아이가 하는 모든 말들이 반항의 증거가 된다.
반대로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똑같은 행동도 리더십의 싹으로 보인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잘 듣고 밝은 아이'라는 역할을 강요하고 아이가 조금만 어두운 표정을 짓거나 짜증을 내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그치기 바빴다.
'아빠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너는 왜 그 노력을 몰라주니?'
내 눈에만 보이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그려놓은 뒤 그 그림에 맞지 않는 아이의 진짜 감정들은 틀린 것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내 좁은 시선의 감옥에 가둬버린 셈이 돼버렸다.
느낌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연습
"코칭이란,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과 태도를 다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를 향해 '존중의 태도'를 갖는 것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이 문장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의 공기는 기적처럼 달라질 것이다.
상대방을 내 맘대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마침표(.)'나 '느낌표(!)'의 언어를 멈추고, 호기심 어린 '물음표(?)'의 언어를 사용해 보자.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너 또 시작이구나!"라고 단정 짓는 대신 이렇게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자.
"지금 내가 쓴 안경은 무슨 색깔이지? (내가 너무 피곤한가?)"
"저 행동 이면에 내가 보지 못한 아이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아빠 눈에는 네가 화난 것처럼 보이는데, 네 진짜 마음은 어때?"
아빠의 해석을 '진실'로 강요하지 않고,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존중의 태도이다.
이제 나의 안경을 닦아주자.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경이 더러워져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왜곡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 나의 안경을 닦아보자.
오늘, 가족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어떤가?
혹시 당신의 불안이나 욕심이 투영된 허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 고백이 당신을 살리고 관계를 살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당신 안경에 씌워진 착각의 때를 닦을 때, 비로소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고유한 우주가 있는 그대로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내 머릿속의 이미지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서 숨 쉬고 있는 불완전하지만 생생한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