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밤 11시, 거실 식탁 위에는 윙윙거리는 노트북 소리만이 정적을 채운다.
노트북 화면 속 커서가 깜빡이며 나를 재촉한다. 글을 쓰다 말고 잠시 멈춘 창 너머로, 희미하게 내 얼굴이 비친다.
8년째 육아하는 아빠,
8년째 매일 육아일기 쓰는 아빠,
누군가의 삶을 돕는 전문 코치!
겉보기엔 성실하고 꽉 찬 삶을 사는 남자가 창문에 비친다.
하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전혀 다르다.
'오늘 그 코칭 세션, 정말 최선이었어? 더 깊게 공감해 줄 수 있었잖아.'
'아까 아이에게 했던 말, '존중어'를 쓴다고 했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습관처럼 2019년 4월부터 써오던 육아 일기장을 펼친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기록해 온 이 성실함조차, 때로는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내는 나에게 '대단하다', '꾸준하다'라고 말해주지만, 정작 나는 그 칭찬을 마음 깊숙이 들이지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이게 놔둔다.
'대단한 게 아니야, 이건 그냥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인걸. 아직 나의 태도는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내 안의 검열관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나를 샅샅이 검열한다.
그는 '수용'과 '인정'이 올라올 때 잽싸게 그것들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나를 깎아내려야만 더 성장할 수 있다'라고 믿게 만들어 내가 패배하는 쪽을 선택하게 한다.
나는 창가에 머문 시선을 돌려 거실 바닥을 보았다. 아이가 놀다 둔 레고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오늘 저녁, 아이는 자신이 만든 알 수 없는 모양의 블록을 들고 와서 외쳤다.
'아빠! 이거 봐! 내가 만든 우주선이야. 진짜 빠를 것 같지?, 난 이 우주선 타고 우주여행을 할 거야!'
어설프게 끼워진 조각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아이에게 그건 이미 완벽한 우주선이었다.
그 순수한 확신이 부러워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나는 타인에게 '마음의 언어'를 건네고, 갈등을 예방하는 존중어를 이야기하는 책까지 썼다.
그런데 왜 나 자신에게 건네는 언어는
이토록 삭막할까?
왜 나는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작품'으로 봐주지 못하고, 고쳐야 할 점이 가득한 '초고'로만 대하는 걸까?
노트북 화면을 닫고 나는 육아 일기장을 다시 폈다. 그리고 오늘은 반성문 같은 일기 대신, 나를 위한 변론을 적어보기로 한다.
내면의 깐깐한 검열관을 잠시 퇴장시키고,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낸 한 인간에게 건네는 투박한 위로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완벽한 아빠가 아니어도 괜찮아.
완벽한 경청을 할 수 있는 전문 코치가
아니어도 괜찮아.
너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은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
나는 식탁 위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고, 쓴맛 뒤에 옅은 단맛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정이란, 거창한 팡파르가 아니라 이렇게 씁쓸한 하루 끝에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눈빛 같은 게 아닐까?
나는 노트북을 열어 쓰다만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를 재촉하는 글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윙크를 보내는 글을 쓸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