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어'라는 말은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육아를 하며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아이가 화를 낼 때가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하던 아이가 갑자기 "됐어, 아빠랑은 말 안 해"라며 입을 닫아버릴 때다.
주 양육자 아빠로서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대화를 망친 일이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빠, 오늘 친구가 내 장난감을 뺏어가서 너무 속상했어."
그 순간, 나는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아이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저런, 진짜 속상했겠다. 아빠도 회사 다닐 때 그런 적 있었어! 그때 어떤 사람이 아빠가 만들어 놓을 것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아빠는 그걸 어떻게 해결했냐면..."
나는 신이 나서 예전 내 억울함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이가 겪은 문제와 비슷한 아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최고의 공감이자 위로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참 내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의 얼굴을 봤을 때,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더 이상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아빠는 맨날 아빠 얘기만 해."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이와 대화를 한 걸까,
아니면 아이의 대화를 훔친 걸까?"
우리는 대화 중 상대방이 이야기를 꺼내면, 그 이야기의 끝을 보기도 전에 "어! 나도 그래!" 혹은 "내 생각에는 말이야" 라며 대화의 주도권을 낚아채는 치명적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피자 위에 새로운 토핑을 얹듯 상대의 이야기 위에 내 이야기를 얹어 본래의 맛을 덮어버리는 '대화의 도둑질'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악의를 가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훔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하고 싶어서, '연결'되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 대화 테이블에 앉았는데, 내가 그 감정을 '가로채' 내 무대로 만들어버렸기에 이런 태도는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나도 그랬어"는 얼핏 공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네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더 중요해"라는 신호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아빠의 거대한 경험담 밑에 깔려 버린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둑맞은 집에 또 귀한 물건을 그대로 보관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마이크를 내려놓고 '빈 의자'를 내어주자
진정한 대화는 상대의 공이 넘어오면 다시 상대방이 치기 좋게 넘겨주는 테니스 게임의 랠리와도 같다. 그런데 '대화의 도둑'은 넘어온 공을 주머니에 넣고 자기 공을 꺼내 상대방에게 강력한 스메싱을 날려버린다.
가족과 진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이제 마이크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 상대방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
훔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주는 '존중어'의 기술
내 경험상 입술을 깨물고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존중어'기술이 필요하다.
"나도 그래" 대신 "어떻게 됐어?"
(궁금함의 언어)
아이가 장난감을 뺏겼다고 할 때, 내 경험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도 꾹 참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때 마음이 어땠어?" 내 이야기가 나오려던 통로를 막고, 아이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길을 터주는 것이 '존중어' 기술이다.
"그건 말이야" 대신 "좀 더 말해줄래?"
(초대의 언어)
해결책을 주고 싶을 때, 3초만 멈추고 이렇게 질문하자, "아빠는 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네 생각이 궁금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이 말은 아이에게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네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어'라는 최고의 찬사가 될 것이다.
당신은 도둑인가요, 아니면 안전한 금고지기인가?
코칭을 공부하는 전문 코치인 나도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피곤함이 몰려올 때면 아이의 말을 자르고 "빨리 씻어"라고 하거나, 아빠의 경험을 늘어놓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그때마다 나는 '셀프 코칭'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는 아이의 감정을 훔치고 있는가,
아니면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있는가?"
아이와의 대화에서는 화려한 화술을 뽐내는 연사가 될 필요가 없다. 아이의 서툴고 두서없는 이야기조차 안전하게 받아주는 안전한 금고지기가 되어야 한다.
오늘 저녁, 아이가 혹은 배우자가 당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 때, 부디 그 소중한 이야기의 마이크를 뺏지 말고 그저 따뜻한 눈으로 끄덕이며 이렇게 말해보자.
이제 더 이상 대화의 도둑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얻는 '관계의 부자'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