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행동으로 그 사람의 우주를 규정짓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8년 전, 퇴사 후 주 양육자의 삶을 막 시작했을 무렵의 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바라보는 '문제 해결사'였다.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을 때면 내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얘가 또 이러네. 이러다 커서도 자기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무책임한 어른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장난감이나 치우려고 육아하는 아빠의 삶을 선택했나?'라는 무력감에도 빠졌었다.
지금 돌아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 아래, 그 아이의 광활한 우주를 A4 용지 한 장처럼 '납작하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단편적인 행동 하나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쉽게 판단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 하나에 '게으름', '이기적인', '무책임함'이라는 부정적 인식의 블록들을 순식간에 쌓아 올려, 결국 그 사람을 구제 불능의 악당으로 만들어버리는 논리적 비약을 저지르는 것이다.
'존재의 압축'은 빛의 양자적 압축(존재 확률 겹침)또는 자본주의에 의한 시공간의 압축(경험의 재구조화)을 의미한다.
사람은 빛과 그림자, 기쁨과 슬픔,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요동치는 수백 면체의 정교한 보석이다. 그런데 단 한 면에 난 작은 흠집을 보고 "이 보석은 가짜야!"라고 외쳐 입체적이고 복잡한 한 인간을, 아주 얄팍하고 납작한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의 압축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아닌 "존재"를 바라보는 코치의 시선
상대에게 '이기적이고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순간, 대화는 산산조각 나버린다. 상대가 쳐놓은 방어막을 뚫고 들어갈 어떤 틈도 찾을 수 없게 내가 상대를 납작하게 누르는 순간, 관계의 숨통도 함께 끊어지게 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지고 있었던 나는 전문 코치라는 직업의 페르소나를 통해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아이가 일으킨 '문제'인가?,
아니면 아이라는 '존재' 자체인가?"
코칭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내면에 이미 잠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어주는 것.
즉, 납작해진 존재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입체적으로 부풀어 오르게 돕는 것이다.
아이가 떼를 쓰는 행동 이면에는 '아빠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아내의 날 선 짜증 뒤에는 '나의 고단함을 알아달라는 서글픈 호소'가 웅크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납작한 꼬리표를 달지 않고 한 걸음 멈춰 설 때, 비로소 그 이면의 풍성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꼬리표를 떼고 호기심을 입히는 '존중어' 연습
상대를 납작하게 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결을 살려주는 화법. 이것이 바로 '존중어'의 핵심이다.
오늘부터 가족에게 두 가지 존중어를 실천해 보자.
'너는 항상 안 치우더라', '당신은 절대 내 말 안 듣지'
'항상', '절대'이 두 단어는 상대의 모든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는 단어다.
대신 '지금, 여기'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자.
'지금 바닥에 장난감이 많이 흩어져 있네. 아빠랑 같이 치워볼까?' 정체성을 공격하지 않고 행동만 분리해 내는 것, 이것이 상대를 지켜주는 첫 번째 존중어 실천법이다.
'넌 원래 이렇게 성격이 급해?라고 판단하지 말자.
판단이 끝난 곳에는 어떤 이해도 자라지 못한다. 대신 다정한 호기심으로 질문의 문을 열어보자.
'오늘따라 마음이 조금 급해 보이는데, 아빠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단정 짓는 마침표를 지우고 호기심의 물음표를 찍을 때, 납작했던 상대의 마음은 다시 부풀어 오를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는 모두 오해받기 쉽고, 매우 복잡하고 아름다운 우주이다. 때로는 못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마음과 다르게 뾰족한 말을 뱉어내면서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나의 단면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지 않을 단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네가 방금 실수했지만,
나는 네가 얼마나 따뜻하고
멋진 사람인지 알고 있어.'
이 믿음을 보내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마에 혹시 '고집불통'이나 '게으름뱅이'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붙여두진 않았었나?
이제 그 납작한 꼬리표를 가만히 떼어보자.
당신이 평가의 잣대를 거두고 온전한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당신 곁의 그 사람은 가장 다채롭고 눈부신 우주로 당신 앞에 다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