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 오수경 드라마 평론가 인터뷰

드라마를 관찰한다는 것

by 디테일즈 매거진

'왜 영화 잡지는 있는데, 드라마 잡지는 없을까.'


프롤로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질문은 우리 매거진의 시작이었다. 같은 극 장르여도 영화는 평론과 예술의 장르였고, 드라마는 가벼운 이야깃거리 정도라는 그 대우가 조금은 불편했다. 평론가도 ‘영화’라는 수식어는 입에 붙는데, ‘드라마’는 왜 이리도 부자연스러운지. 그 미묘한 불편함에 드라마 평론가 종사자를 찾게 된 것이, 이번 인터뷰이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 두 번째 주인공은 오수경 드라마 평론가다.


image.png <드라마의 말들> 출처|예스 24


오수경 드라마 평론가

2022년 에세이 <드라마의 말들> 집필

'씨네 21', '한겨레 21' 등 여러 매체에 드라마 칼럼 기고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기고한 ‘2024년 시리즈 연말 결산’의 마지막 문단에서 오수경 평론가는 드라마를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에 비유했다. 그녀가 칼럼을 기고하는 매체 속 프로필에서 스스로를 ‘드라마를 관찰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 거울은 어쩌면 세상을 관찰하는 돋보기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사진.jpg 신도림역 인근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오수경 드라마 평론가와의 인터뷰.


이번 인터뷰에서는 오랜 시간 드라마를 관찰해 온 오수경 평론가가 발견한 드라마의 과거와 현재, 그 변천사를 함께 살펴보았다. 또한 ‘드라마 평론가’와 ‘드라마 덕후’라는 두 가지 캐릭터 안에서 그녀가 드라마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들어가는 질문]

Q.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 볼게요. 수경님이 드라마를 보실 때 가장 완벽한 세팅이라고 느끼는 세팅은 어떤 것인가요?


혼자 보는 걸 가장 좋아해요. 같이 보면 집중이 잘 안 돼서 혼자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보는 거 좋아하는 편입니다.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그리고 정주행보다는 하루에 1-2회씩 보는 걸 선호합니다. 나중에 볼 수 있는 회차가 남아있는 그 마음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요.




[평론가가 바라보는 드라마] 드라마 평론가가 말하는 옛날 드라마, 그리고 요즘 드라마

Q. 미디어 산업이 변화하며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방향도 다양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따라 드라마도 내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경님은 ‘옛날’ 드라마와 ‘요즘’ 드라마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요즘 드라마에는 없는, 옛날 드라마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옛날엔 시간 맞춰 TV로만 드라마를 봤지만 요즘은 OTT가 있어서 시간과 장소의 구애가 사라진 점이 가장 큰 외적 변화인 것 같아요. 되려 장르 간 변별력이 뒤섞여버린 느낌도 들기도 하고요. 대개 주말 저녁 8시 드라마는 가족들이 같이 보기 좋고, 평일 밤 10시 드라마는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트렌디한 느낌이 강했었거든요.


특히 코로나 이후로 영화감독들이 드라마판에 들어오기도 했어요. 보통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들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작가의 존재감이 약화된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드라마만의 긴 호흡의 서사가 잘 안 드러나는 같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회차가 줄어서 떡밥 같은 장치를 두거나 하는 드라마만의 서사 특징이 잘 살아나지 못하는 거죠. 소설을 읽는 느낌보다는 예쁜 숏폼 영상을 보는 느낌.


Q. 그러면 반대로 요즘 드라마들에서만 보이는 특징들이 있을까요?


내용적으로 긍정적인 차이가 생겼어요.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드라마판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주로 홈드라마가 지배적이었다면 90년대 이후로는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개인 서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죠.


2010년대 중후반에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리부트 되면서 드라마 속 이야기도 되게 다양해졌어요. 대체로 한국 드라마는 병원이든, 경찰서든, 법정이든 다 연애-결혼 구조로 수렴되는 서사였는데 이젠 연애의 결과가 굳이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되는, 보다 다양한 방향의 소재로 내용을 풀어내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평론가, 오수경에 대하여] 드라마를 째려보는 것

Q. 평소 ‘드라마 평론가’라는 직업을 자주 듣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평론’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스스로 ‘평론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랫동안 자유기고가로 활동을 했는데, 어떤 매체의 경우는 보다 디테일한 이름을 요구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중문화 평론가’로 하려다가 드라마라는 좀 더 세분화된 분야를 보고 싶어서 ‘드라마 평론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쓴 책에서는 스스로 ‘드라마 관찰자’라고 소개했는데 그게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관찰하고 관찰한 걸 기록하는 사람.


원래는 취미로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드라마 감상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걸 재밌게 봐주셨어요. 어떤 드라마를 보든지 ‘수경님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덕에 매체에서 제안이 와서 시작하게 됐죠. 리뷰를 쓴다는 건 (페이스북과 다르게) 좀 더 난이도 있는 글을 써야 하다 보니 스스로 공부도 하게 되고, 비평도 하게 돼요. (비유하자면) 비스듬히 누워서 보다가 제대로 앉아서 보는 느낌.


한국 사회가 드라마를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는데 그 말들에 대한 반발심도 없지 않아요. 내가 한국 드라마에 집중하는 이유는 당대의 한국 사회를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인데 그게 좀 무시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도 평론할 수 있다’, ‘비평적 개입이 필요하다’라는 반발심이 들더라고요. 드라마의 통속성이나 대중성에 대해서도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작가의 의도를 정당하게 이해해 볼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 오수경에 대하여] 누구나 가슴에 드라마 한 편씩은 품고 사는 법

Q.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드라마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게 된 순간이 있으실까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 저녁에 봐야 할 드라마가 있다고 하면 일단 좋아요. 그걸 생각하는 순간 기대감이 생길 때나 잠을 줄여서라도 드라마를 보게 될 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싶을 때. 막장 드라마 같이 남들이 다 욕하고 한심하게 하게 생각하는 드라마도 끝까지 지켜보고 끝을 보고야 말 때도 드라마를 사랑한 순간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전에도 지인과 함께) <협상의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감독의 작품 세계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왔는데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드라마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고 있을 때도 그걸 깨닫는 것 같아요.


Q. 편하고 사적인 자리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참석하는 자리를 비교할 때, 드라마를 대하는 자세의 차이가 있으실까요?


주로 글로 써서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니 평론가로서 말을 해야 할 때는 거의 없어요. 그냥 보는 드라마와 글로 써야 하는 드라마를 볼 때의 태도가 다른 것 같아요. 이건 다른 기자분이 쓰신 표현인데, ‘글이 붙는가’의 관점으로 드라마를 본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건 글로 써야겠다 싶으면 그 순간부터 덕질이 아니라 업이 되는 거죠. 스스로는 그걸 드라마를 ‘째려본다’고 말해요. 비스듬히 누워서 보던 걸 벌떡 일어나서 보는 마음이랄까.


지인들과 드라마 이야기할 때는 되게 복합적으로 조심하게 돼요. 사람들은 어떤 드라마를 후졌다고 하면 ‘그걸 보는 나도 후졌어?’라고 받아들이기 쉽거든요.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좋고 싫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좀 더 조심스레 대화하게 돼요.


그리고 세상에 좋기만 한 드라마도, 나쁘기만 한 드라마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도 조금 퇴행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는 인생드라마라고 해요. 내가 안 좋게 본다고 그 드라마 볼 필요 없다고 하기보단, 어떤 부분은 좋게 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내 생각을 살짝 섞는 식으로 말해요. 조심스럽게 공감하는 포인트를 이야기하면 무리 없이 대화가 되더라고요.


인터뷰 사진 3.jpg 오수경 평론가가 집필한 <드라마의 말들>과 초안 원고들. 담당 편집자의 애정 어린 메모가 인상적이었다.


Q. 집필하신 <드라마의 말들>에서 “누구나 가슴에 드라마 한 편씩은 품고 사는 것”이라는 말을 믿는다고 하셨는데, 가슴에 품었던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개인적으로 시트콤을 되게 좋아해요. 옛날에 오래 돌려본 것 중에 <올드 미스 다이어리>라고 있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 나오던 시기에 방영됐던 30대 초반 여성들의 일과 사랑 이야기예요. 되게 재밌어요.


그리고 <하이킥> 시리즈!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이랑 다니엘이 죽는 장면, 다른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찾아봐요. 슬픈 엔딩들이 유독 길게 기억에 남는 것 같더라고요. <미안한다 사랑한다> 엔딩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서 찾아보고요.


<풍문으로 들었소>가 가장 오래 품고 있던 드라마인데 이건 추천도 하고 싶어요. 미장센, 음악, 내용, 결과 등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요소가 많거든요.



Q. 수경님께 ‘드라마’는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함께 해오던 일상과 같은 존재. “즐겨보는 드라마의 다음 회차가 궁금해서 죽는 게 아쉬울 것 같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 서해인 에디터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