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내가 가장 싫어질 때가 있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약 10년 전 유행했던 이 밈을 기억하는가. 신이 나를 만들 때, 좋은 자질은 실수로 적게 넣고 나쁜 자질은 왕창 넣었다는 유머로 사용되던 밈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시험대에 오르는 요즘, 이 밈이 자주 떠오른다. 신이 나에게 임기응변 실력을 더 많이 넣어줬더라면, 신이 나에게 망설임은 덜 넣었더라면... 내 안에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이젠 신의 탓으로 돌려본다. 그리고... 다시 자기소개서나 몇 줄 더 고치는 것이다.
학창 시절을 거치며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취업 시장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시험의 형식이던 이전의 평가가 명백한 정답과 오답을 가리는 것이었다면, 취업시장의 평가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고 말한다). 대신, 원하는 인재상이면 합격이고 아니면 탈락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장의 합격과 불합격이 사람을 정답과 오답으로 가르는 기준은 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지원자가 이를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탈락을 반복하면 누구나 이런 결론에 이르기 십상이다. 혹시 ‘나’ 자체가 오답은 아닐까?
바늘구멍 같은 티오에도 늘 합격자는 있고, 합격자에 대한 이야기는 족보처럼 떠돈다. 몇 다리를 거친 합격 후기는 이런 영웅담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지난번 면접 때, 누군가는 히피펌을 하고 면접관들 앞에서 춤을 췄대. 근데 걔, 정장도 안 입었다더라. 목소리가 진짜 자신감 넘쳐서 면접관들이 그렇게 좋아했대. 이야기 속 합격자의 반짝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동시에 볼품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비교되는 순간 영웅담은 괴담으로 변한다. 이건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속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 남녀의 사랑법> 속 마케터를 꿈꾸는 취업 준비생 이은오(김지원)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참고로 은오는 합격자가 아니라 합격자의 영웅담을 듣는 취업 준비생 쪽이다. 드라마에서 은오를 수식하는 단어는 이렇다. 평범하다, 바보 같다, 착하다. 남자친구의 바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출근 당일 입사 취소 소식을 접해도 속 시원히 울지 못한다. 그런 은오에게 모두들 말한다. 넌 너무 평범하다고. 그 길로 은오는 양양으로 떠나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은오가 택한 이름은 ‘윤선아’다. ‘윤선아’는 앞서 말한 괴담이 된 영웅담 속 합격자의 이름이다. 히피펌의 캐주얼룩 춤꾼 지원자이자, 은오가 입사 취소 통보를 받은 회사의 신입사원이 된 합격자. 면접장에서 만난 선아는 취미를 ‘댄스’라고 말할 만큼 자유롭고, 히피펌 사이에 브릿지 염색을 섞을 만큼 개성이 뚜렷하며, 면접관 앞에서 “어차피 머리는 합격하면 염색할 것”이라고 말할 만큼 당차다. 이런 선아를 면접장에서 바라보는 은오의 표정 안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스친다. 반짝거리는 상대에 대한 동경, 나는 왜 저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자책, 평범한 자신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향한 충격. 이 날의 기억으로 은오는 선아가 되었다.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처음 본 건 20살,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그때 나에게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였고, 그 정도 감상이 다였다. 하지만 4년이 흘러 24살에 다시 본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전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에게 드라마는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성장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다시 봤을 무렵 나는 대학교의 절반 이상을 마친 고학년이었다. 스스로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이제 막 몇 개의 자기소개서를 써내던 시기였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채용 공고를 뒤적일수록 합격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 누구는 수상 경력이 이만큼인데도 떨어졌다더라, 누구는 경력 하나 없는데 서류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합격했다더라. 소문 속 합격자를 구체화할수록 나는 한없이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배낭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떠난 합격자만큼 대단한 도전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고, 며칠간 이어진 면접에서 이사님과 수다를 떨었다는 합격자만큼 넉살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볼수록 면접장에서 선아를 처음 본 은오가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한 기분. 여기까지 이르자 나도 은오처럼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던 은오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을 떠나 양양의 라면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 은오는 한결 밝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새로 바뀐 웨이브 머리에는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섞여있었고, 해변을 방방 뛰어다닐 땐 하늘하늘한 보헤미안 스타일의 가디건이 나풀거렸다.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반말로 넉살을 떨 줄 알았으며, 처음 만난 재원(지창욱) 앞에서 어설픈 노래를 한껏 열창하는 엉뚱함도 있었다.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장소에 자신을 던졌을 뿐인데, 은오는 선아가 되어 있었다. 어딘가 억눌려있던 은오와 달리 선아는 무엇이든 겁 없이 뛰어든다. 처음 시도한 서핑을 할 때도, 우쿨렐레를 배울 때도, 재원과 사랑에 빠질 때도 그렇다. 보드에서 떨어져 물을 왕창 먹고, 다른 보드에 부딪쳐 상처 나는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이게 내가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오게 된 이유다. 이름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익숙해진 공간과 관계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어 보기도 하고, 한국이었다면 지나칠 곳에서 몇 시간 멍때리기도 하며 이전의 나를 잊은 것처럼 지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만들 수 있는지보다 오늘 뭘 먹고 뭘 할지를 고민했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운지, 오로지 관심사는 그것뿐이었다.
호주에 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는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좋은 버스킹 공연을 만나면 계획했던 것을 모두 취소하고 두 시간 동안 길바닥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햇볕이 좋은 날엔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가방만 베고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었다. 카메라를 들고 걸을 때면 왔던 길도 몇 번을 다시 지나고, 목적지가 있는 길도 수십 번을 멈췄다 돌아갔다 한참을 헤맸다. 하루가 충만하게 채워지자,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 높아졌다. 생활이 즐거워지는 만큼 그걸 즐기는 나도 좋아하게 됐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며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어느 날, 이제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전의 나를 떠올렸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무엇을 그렇게 바꾸려고 애를 썼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를 제일 마음에 안 들어 한 건 나였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매일 밤 일기에 고치고 싶은 점은 5개씩, 칭찬하고 싶은 점은 1개도 쓰지 못했던 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들여다보기보다 내가 가진 못난 것들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나. 사실 나는 몇 달 만에 생판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 아니, 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일기장에 잔뜩 적어둔 내 단점들은 돌아가도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단점들을 고친 게 아니라면 달라진 건 내가 나를 보는 시선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다시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떠올려본다. 양양에서 선아로 사는 은오는 밝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렇게 은오는 선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선아의 생활은 두 달 만에 끝이 나고, 은오는 결국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이은오’로 살아간다. 오랜 친구와 옥탑방에서 함께 작은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가... 내가, 윤선아야. (...) 나는 아직도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옛날 바보 같은 이은오 그대로야.”
드라마 후반부, 10년지기 친구들에게 두 달간 ‘윤선아’라는 이름으로 양양에서 살며 재원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은오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바뀐 게 없다고. 하지만 시청자는 알고 있다. 은오는 전과 다르다. 선아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 은오는 이전처럼 순하고 착한 모습도, 선아처럼 자유분방한 모습도 아니다. 어딘가 차분하지만 어떨 때는 착하고, 어떨 때는 당차게 화를 내기도 하는, 새로운 이은오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변화를 보통 ‘성장’이라고 부른다.
“옛날의 너, 바보 아니었어. 옛날의 이은오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 옛날의 너도, 지금의 너도, 넌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친구 린의 말처럼 옛날의 은오도, 양양에서의 선아도, 지금의 은오도 모두 은오다. 때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는 것뿐. 그러니 선아가 나을 것도, 은오가 별로일 것도 없다. 그저 이리저리 복잡한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이면 된다. 결국 은오는 선아가 되어봄으로써 진짜 자신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진 셈이다. 한 발 떨어져서 본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평범하지도, 초라하지도 않다는 것을 느끼며. 드라마가 은오에서 시작해 선아로 끝나지 않고, 은오에서 시작해 은오로 끝난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옛날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나 역시 몇 달 뒤 한국으로 돌아가 익숙한 나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숱한 채용 공고와 합격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명확히 알고 있다. 못나 보여서 너무 미운 나도, 그걸 바꾸려고 애쓰는 나도 모두 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들여다보고, 조금 더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흔들리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도 알고 있다. 정 안 되면, 잠깐씩 다른 사람이 되어 봐도 괜찮다는 것. 가끔은 선아가 되어 은오를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선아도, 은오도 결국 다 내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