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빈자리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계셨을 때, 나는 과연 그 아픔을 얼마나 헤아렸던가. 함께 힘들어했을까.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지금 돌아보면 마음속에 자꾸 질문이 생긴다.
엄마가 유방암 수술로, 또 패혈증으로 두 번의 큰 고비를 넘기실 때, 나는 분명 그 간절함 속에 함께 있었다.
"제발, 이렇게 준비 없이 보내드릴 수는 없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그만큼이었을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이별.
아버지와 병원에서 함께 보낸 3개월.
고향집을 비울 수 없는 어머니, 그리고 멀리 서울에서 살고 있는 형을 대신하여, 대구의 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수술 후 급격히 나빠진 건강.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아버지를 위해, 나는 이른 아침과 저녁, 면회가 허락된 시간마다 병원을 오갔다.
그건 어쩌면 평생 하지 못했던 불효를, 조용히 씻어내고자 했던 시간은 아니었을까.
그 시간은 아버지와 내가 **부자(父子)**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깊게 마주했던 순간들이었다.
아버지는 산소호흡기를 입에 문 채 3개월을 보내셨다.
말씀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 의식은 또렷했지만, 말은 할 수 없었다. 너무도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힘없는 손으로 겨우겨우 글씨를 적으셨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일상이었다.
“고향집 식당, 매운탕이 맛있었는데…”
“입원 전에 먹었던 병원 앞 돼지국밥이 생각나네…”
종이에 힘없이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는
예전, 힘 있는 필체로 또박또박 글을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그 필담을 받아 들고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신지, 또 얼마나 일상을 그리워하시는지를.
내가 힘들지 않게 유추해 알아듣고, 대답을 하면 아버지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 온화한 웃음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아차렸을까.
그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얼굴을, 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걸까.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지의 팔은 묶인 채 씻지도 못해 손과 발에 각질이 일어났다.
나는 그저 물티슈로 조심스럽게 손과 발을 닦아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마음이 무겁고 죄스러웠다.
발가락 사이를 하나하나 닦아드리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던 아버지.
그 작은 반응 하나에도 나는 울컥했다.
왜 이제야, 왜 이런 모습으로밖에 아버지를 만지고, 돌볼 수 없었을까.
마흔이 넘도록 나는 아버지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색하고 무뚝뚝하게 스쳐 지나온 세월.
그런데 병상 위, 의식이 흐릿한 아버지의 손을 내가 처음 잡았다.
아버지도 있는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맞댄 손.
팔십 평생을 놀리지 않던, 부지런하던 손.
굳은살 박이고 마른, 거칠지만 따뜻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던 손.
나는 그 손이 그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
그 손이 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건네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말을 대신 품어주었는지,
나는 왜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을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버지도, 나도 그런 사람들이다.
표현이 서툴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살아온 인생.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침묵 속에 얼마나 깊은 사랑이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때 선배들이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매 순간 떠오르다가, 조금씩 그리움의 빈도는 줄어들 거야.
하지만 잊히지는 않아. 절대.”
그래, 정말 그렇다.
그리움은 흐려질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부자간의 연결의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사무실 창밖,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났다.
그해 여름, 폭염이 한창일 때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날은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 만나는 날이었다.
하늘과 땅이 잠시라도 사랑하는 이들의 재회를 허락하는 날.
아버지는 마치 그 다리를 건너는 듯,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처럼,
우리 가족의 더위를 식혀주는 비를 뿌리며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발인 직전, 뙤약볕이 내리쬐던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던 소나기.
그건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덥다고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뿌려주듯 흩뿌려진 사랑의 비.
그래서일까.
오늘, 생일인 오늘 내리는 이 비 역시
“생일 축하한다”는 아버지의 미소 같은 인사처럼 느껴진다.
오늘 밤,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는 밤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보다, 손보다, 미소보다,
이제는 그 부재의 시간들이 더 또렷하게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리움을 한 자 한 자, 필담을 나누듯이 써 내려간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아버지를,
말없이도 사랑을 전하던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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