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학교란 공간, 그때는 그랬다

by 꿈의복지사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의 하루 대부분을 삼켜버린 삶의 무대였고, 때론 집보다 더 익숙한 공간이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낡은 교실. 겨울이면 입김이 흰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칠판 글씨보다 더 선명하게 추위를 각인시켰다.

교실마다 놓인 난로에는 폐목재와 펠릿을 넣어 불을 지폈다.

구멍이 뚫린 각목형 땔감은 이 시대를 기억하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름엔 또 달랐다.

분필 가루가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 목구멍이 칼칼해졌고,

더위 속에서 땀은 교복을 적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놀리며 웃었고,

때로는 미래를 그려 보며 그 공간을 버텨냈다.

화장실도 학교의 일부였다. 변기 없는 재래식 화장실은 사실상 ‘채벌’에 가까웠고,

청소 당번이 되어 악취와 싸울 때면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의 극치였지만, 그때는 그저 당연히 감내해야 할 학교의 풍경이었다.

점심시간은 또 다른 추억을 남겼다.

급식이 없던 시절, 도시락은 하루의 가장 큰 기다림이었다.

어머니는 계란후라이를 밥 위에 올리면 친구들이 집어갈까 걱정되어,

밥과 밥 사이에 살짝 숨겨 넣어주셨다.

여름이면 시원한 물김치를 유리병에 담아 주셨는데,

혹시라도 쏟을까 싶어 뚜껑을 덮기 전에 비닐을 한 겹 덧대어 단단히 싸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던 특별한 반찬, 피리튀김(도리뱅뱅이라고도 불리던)에 매콤한 양념을 입혀 주실 때면 도시락을 열기도 전에 마음이 풍족해졌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책상안 도시락을 만지작거리던 손끝엔, 배고픔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먼저 스며 있었다.’

그랬다. 도시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가 건네신 마음의 편지이자 위로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또 다른 추억의 한 페이지가 그려졌다.

밤 10시 무렵 짧은 쉬는 시간, 별것 없는 김밥 한 줄 속 무말랭이 김치 하나.

그러나 우리는 그 한 입에서 어머니의 정성과 집의 향기를 느꼈다.

땀과 분필 가루에 절은 하루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결국 그런 소소한 도시락과 간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친구들과의 웃음과 대화였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지탱하게 한 힘이었다.


그 시절은 제도의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대학 입시는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교과서보다 문제집이 중심이 되었고, 입시 요령과 공식이 교실의 언어가 되었다.

어느새 교실은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뉘었고, 성적표에 따라 친구들의 꿈마저 분류되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찾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 학교와 학과를 고르거나,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 떠밀려 진학을 결정하는 일도 흔했다.

그리고 모든 친구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취업을 선택한 이들은 직업훈련원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떠난 교실은 의자만큼이나 마음도 비어 버렸고, 종종 쓸쓸한 적막이 감돌았다.

남겨진 우리는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동시에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도 함께 품었다.

돌이켜 보면, 초·중·고등학교는 낡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품어주던 그릇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그 속에서 우리는 철없이 웃었고, 때로는 서로에게 기대며 한 시대를 호흡했다.

제도의 변화와 친구들의 이별 속에서도 학업에 매달리며 삶의 방향을 찾아야 했던 시절.

학교는 불완전했지만, 우리 청춘의 전부를 치열하게 담아낸 자리였다.

학교란 공간,

그때는 그랬다. 불편 속에 깃든 온기, 부족함 속에 피어난 웃음.

무엇보다, 그 시절만이 가질 수 있었던 진짜 ‘우리의 풍경’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청춘은, 공부와 성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편지 한 장,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한 곡.
그것들이야말로 학교라는 틀 안에서 우리를 진짜 ‘살아 있게’ 만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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