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공간에서의 추억은 단지 공부와 교실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는 이성에 눈을 뜨고,
서툴렀지만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하던 풋풋한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휴대폰은 커녕 삐삐조차 흔하지 않았던 시절.
연락의 전부는 편지였다.
수업 시간 몰래 돌리던 종이쪽지, 투박한 노트를 찢어 삐뚤빼뚤 써 내려간 편지.
말로는 차마 하지 못했던 고백과 속내가 종이 위에 담겼다.
그 시절은 편지가 곧 SNS였었다.
친구끼리 꼬깃꼬깃 접어 돌리던 쪽지 속에는 장난과 웃음뿐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와 응원도 담겨 있었다.
때로는 성적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
부모님과의 갈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에 마음을 담고,
기다림과 설렘 속에서 답장을 받아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화기는 더더욱 특별했다.
대부분의 집은 안방에 딱 한 대, 그것도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써야 했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 있던 집은 회선을 두 개로 나눠 방에도 전화를 설치했는데,
그 전화기를 몰래 들고 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이며 통화하곤 했다.
문제는, 두 대의 전화기를 동시에 들면 상대방의 대화를 고스란히 엿들을 수 있었다는 것.
통화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혹시 누가 몰래 듣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밤늦게 통화하다 아버지의 한 마디에 기겁 한 적도 있다.
“야들아~~~, 밤에 전화하지 말고 그냥 얼굴 한번 보러 와라.”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고, 수화기를 덜컥 내려놓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사춘기의 은밀한 통로가 들킨 순간, 부끄러움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이 뒤섞였다.
남학교였던 까닭에 이성과의 만남은 더더욱 조심스럽고, 또 더더욱 간절했다.
가끔 체육대회나 교내 행사에 여학생이 참가하여 오기라도 하면,
교실 전체가 술렁거렸다.
그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만약 우리가 남녀공학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쑥스러움과 아쉬움이 섞여 더 큰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런 상상과 함께 몰래 써 내려간 쪽지, 몰래 들은 통화,
손에 들린 노트 속의 그림들은 모두 우리만의 작은 몸부림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1995년, 고등학교 3학년.
이젠 정말 ‘수험생’이 되어 있었다.
94년의 찜통더위보다는 살 만했지만, 여름은 여전히 여름이었다.
교실은 후끈했고, 진로와 성적의 압박은 우리를 짓눌렀다.
그 시절, 입시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사설 독서실’
사설 독서실은 우리가 가질수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교실보다 더 조용했고,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었다.
밤이 깊어 가도록 졸음과 싸우며 문제집을 넘겼고,
가끔 창밖으로 들려오는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에 고개를 들곤 했다.
잠과의 싸움에서 지쳐갈 때면 독서실 옥상에 올랐다.
독서실 옥상은 우리에게 작은 쉼터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잠시 잠을 쫓기위해 올라가면, 늘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서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지만, 눈빛 하나로 마음이 오가던 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오늘도 왔구나” 하는 설렘이 있었고,
어느 날은 옥상 난간에 기대서서 좋아하던 노래 한 소절을 나누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시절의 연애는 그랬다 — 말보다 눈빛이 앞섰고, 표현보다 기다림이 길고 컸다.
짧은 마주침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며, 그렇게 우리는 밤을 견뎌냈다.
우리의 청춘은 노래 속에서도 길을 찾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 기억하는가.
지방에 살던터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들을 수 없었지만,
지역 DJ가 진행하는 별밤, 사연을 신청해서 듣던 노래들...
라디오와 TV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였다.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가 전국을 강타하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의자 위에 올라 엉덩이 춤을 추던 시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듀스의 「여름 안에서」,
비오는 날 듣던 임종환「그냥 걸었어」(너무 많이 왔나^^) 등등~~
입시 지옥 속에서도 잠시나마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교실 한쪽에는 문제집과 교과서가 쌓여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꿈과 사랑, 음악, 웃음이 있었다.
그 두 세계에서 우리는 여름을 건너고, 청춘을 지나왔다.
그렇게 90년대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서의 마지막 학창시절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친구와의 우정, 첫사랑의 설렘, 그리고 시대의 노래까지 모두 한 페이지로 남긴 채,
이제는 저마다의 새로운 세상 ‘대학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외지 생활의 시작이 조용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멀리 보이는 기차역, 버스 터미널, 그리고 시골 고향을 벗어나 도시로 향하는 길.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세상을 배우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90년대 한가운데서 배운 모든 것들, 편지와 노래, 숨죽이며 통화하던 밤,
친구들과 나눈 작은 모험들 그 모든 기억은 앞으로 마주할 낯선 세상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줄 작은 등불이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조용히 마음의 짐을 꾸리고 있었다.
ARS를 통해 대학 합격 여부 확인한 누군가는 기뻐했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켰다.
서점에서 입학원서를 사서 직접 제출하던 풍경,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던 그날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제 교실의 종소리 대신 낯선 도시의 소음이 들릴 것이고,
친구들의 익숙한 목소리 대신 새로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우리의 편지는 삐삐의 숫자로, 교정의 종소리는 도시의 거리로 옮겨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으로 고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고향, 그리고 학교여, 안녕.
이제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