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낯선 도시, 그리고 새내기의 봄

by 꿈의복지사

4화. 낯선 도시, 그리고 새내기의 봄

1996년, 드디어 나는 대학 새내기가 되었다.
낯선 도시로의 발걸음...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또 하나의 삶의 출발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여대였다가 남녀공학으로 막 바뀐 상황이었다.
입학식 날, 고향 누나들이 같은 학교라 함께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
내 눈은 어디를 두어야 할지 몰랐다.
앞뒤, 좌우, 교정 어디를 보아도 여학생들의 물결이었다.
순간, 꽃밭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꽃밭이었다. 벌 한두 마리 다니는 정원처럼.

학과 선배들도 모두 여학생이었다.
내가 남자 1호 입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선배”였지만, 그들도 남자 후배를 처음 맞이하는 터라
“누나”라는 호칭에 어색하면서도 은근히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상급생에게 선배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당당히 말했다.
“누나, 밥 사주세요.”
뜻밖의 넉살과 친근함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한 명이 웃으며 물었다.
“저기요, 현역이세요?”
순간 말을 잃었다.
겉늙어 보였던 탓에 재수생쯤으로 본 모양이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네, 현역입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라던 선배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의 시작은 그렇게 웃음으로 열렸지만,
이내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부의 정책과 이념에 맞서던 마지막 운동권 세대의 기운이
교정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교문 앞에는 열사를 기리는 현수막과 분향소가, 학생회관 앞에는 ‘열사 추모’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데모 대열에 서 있었다.
손에 쥔 피켓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 함성 속에서 분명히 느꼈다 —
“이것이 청춘의 뜨거운 피구나.”

그 안에서 나의 대학, 나의 독립이 시작되었다.

기숙사 생활도 새로웠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4명이 한방을 쓰며
낯선 도시의 외로움을 함께 녹였다.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억양, 충청도 말씨가
한방 안에서 뒤섞이며 밤마다 수다가 이어졌다.
밤 10시 점호 후, 불 꺼진 복도에는 “뽀글이” 냄새가 퍼졌다.
전기포트에 라면을 끓이며 “조용히, 사감 온다!” 속삭이던 그 시간—
그 불편함마저 우리 청춘의 의식처럼 달콤했다.

그리고, 청춘의 상징 ― 삐삐.
나는 ‘세림이동통신’ 015번호로 시작하는 첫 삐삐를 손에 쥐며
세상이 내 손안에 들어온 듯 설렜다.
공중전화와 호프집 테이블마다 놓인 수화기를 통해
호출음을 확인하던 시절.
486은 ‘사랑해’, 1004는 ‘천사’, 1052는 ‘I LOVE YOU’.
그 숫자들이 곧 우리의 언어였다.
숫자 몇 자리만으로 웃고 울던 시절.
삐삐 화면 속 숫자는 편지보다 솔직했고, 고백보다 짙었다.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올 무렵, 캠퍼스에는 신입생 페스티벌이 열렸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정장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정장이 없었다.
기숙사 온 방을 뒤져 친구의 옷을 빌려 입고 어색한 넥타이를 매며 행사장으로 향했다.

(다운타운이라는 나이트클럽 대구 분들은 기억하려나~~)

커플이 아니면 벌금을 내야 했던 그 행사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때, 짝이 없는 나를 선배가 슬며시 불렀다.
“누나가 오늘 일일 커플 해줄까?” 그 말이 나는 고마웠고 형제만 있던 나에게 누나가 생겼다는 설렘이 좋았다.
그날의 불빛, 음악, 그리고 술잔에 담긴 웃음은
한동안 내 청춘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되던 봄,
나는 진짜 사랑을 만났다.
학교 성당에서 미사를 하며 마주치던 친구, 우연히 같은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가까워졌던 그녀, 수줍은 미소와 단정한 머리, 유독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이 수업 마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밤공기를 마시던 순간들, 같은 신앙으로 마음을 나누던 시간들...
그러나,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향집에서 연락이 왔다. 우편함 속 봉투 하나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병무청 입영 신체검사 통지서 도착, MT를 다녀온 뒤, 4월 1일 만우절 그날이 입영 신체검사
“농담이지?”라며 웃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징병검사장에 들어섰다.
회색빛 벽과 차가운 바닥, 벗겨진 페인트 냄새 속에서 줄지어 서 있는 청춘들의 얼굴은
모두 비슷했다 — 설렘 대신 막막함으로 채워진 눈빛. 속옷 차림으로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몸의 이곳저곳이 ‘검사 대상’이 되는 순간, 어른이 된다는 게 이렇게 적나라한 일일 줄 몰랐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장래 희망을 묻지 않았다.
그저 ‘합격’ 혹은 ‘보류’만이 있었다.
그 짧은 판정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

입대를 앞두고,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마지막 봉사라은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그렇게 학교 성당에서 주관한 소록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접수가 마감되어 나의 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한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에 나는 기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내 여자친구가 원래 신청했던 자리였다.
그녀는 군입대를 앞둔 나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그 자리를 양보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설렘으로 나도 소록도 봉사활동을 함께할수 있게 되었다고 기쁨을 나누려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운명의 장난으로 그녀는 눈물로 나를 배웅했다.

소록도의 바람은 따뜻했지만, 마음 한켠은 싸늘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듯했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아 있었다.
손을 잡아드릴 때마다 전해지던 체온은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젊음은 화려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라는 것을.

그러나 현실은 다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입대가 다가오자, 나는 마음 한편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두려움이 앞서 있었다.

나는 어렸었다.
사랑했던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고, 나가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이별을 선택했다.
그녀를 위한 배려라고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미성숙한 도망이었고 비겁한 변명이었다.
고향집으로 돌아와 입대를 준비하면서 그녀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녀가 울 것 같아서, 나도 같이 울게 될까 봐.

그리고 훈련소 입소하던 날 아침, 마지막으로 삐삐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 이렇게 가면... 나, 너 정말 미워할 거야.”
짧은 그 말에 울음과 떨림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만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피 끓는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아쉬움과 무심함,

그리고 어리석음을 짊어진 채 군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이별도, 후회도, 모두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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