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남자가 되는 시간 (훈련소의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1997년 7월 31일,
훈련소 앞에서 벗이라 부르던 친구가 마지막 배웅을 해줬다.
“건강히 다녀와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훈련소 정문을 향했다.
그때는 입소식이 진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기말 외환위기 IMF로 나라가 휘청이고 있었다.
그 결과 가계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맞춰 퇴소식만 가족이 참석하도록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애인을 뒤로한 채
한 명, 한 명씩 묵묵히 정문을 통과했다.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동작 그만, ‘얼빠진 놈들 정신 개조부터 들어가야겠다.’
십원 짜리 욕이 날아오며 들어서자마자 얼차려가 시작됐다.
아직 군인 신분도 아닌 사복 차림 그대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을 만큼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 들어온 걸 실감했다.
적도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찜통더위 속,
그렇게 나의 훈련소 생활은 시작되었다.
입소한 날, 나이와 사는 곳, 신분도 제각각인 남자들이
20명씩 내무반에 배정되었다.
사복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줄을 섰고,
전투복 두 벌, 반바지, 반팔티, 그리고 주황색 활동복(트레이닝복)—일명 ‘떡볶이’.
당시엔 사이즈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보급품에 몸을 맞추는 일이 더 많았다.
조교들이 던져주는 옷을 받으며 “이게 내 옷인가?” 싶었다.
군대란 그런 곳이었다.
자유는 없었고, 생각을 말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20대 성인이 어린아이처럼 통제되는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퇴행’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훈련소의 폐쇄된 공간에서 위안에 되는 일은 있었다.
같은 훈련소 생활을 하게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름은 ‘허정용’ 고향 친구와의 재회. 졸업 후 1년 6개월 만의 만남
그 만남이 나의 훈련소 생활 내내 서로를 기대며 혹독한 여름과 훈련을
견디게 하는 매개가 되었다.
6주 동안 훈련소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입소 첫 주에는 마치 학교의 생활기록부처럼 병력조사가 진행됐다.
출신 지역, 가족 관계, 학력, 전공, 질병 유무까지.
이후 병과를 배정하기 위한 일종의 ‘호구조사’같은 개념이었다.
한 내무반엔 129.5kg이 넘는 비만 친구가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180cm에 40kg 남짓의 마른 체형이었다.
전투복이 맞지 않아 단추가 채워지지 않거나,
헐렁한 옷자락이 허공에 펄럭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같은 ‘훈련병’이었다.
(과체중인 친구 에피소드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때 군대는 참 단순했다.
두 친구는 입소 일주일 만에 재검 끝에 면제 판정을 받았다.
과체중 친구는 기준에서 고작 0.5kg 모자라 현역 판정을 받았는데,
중대장과 면담 후 PX로 가서 마음껏 먹고
체중계를 다시 올라 면제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면서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첫 저녁식사 시간, 취사장에 들어서자 조교의 한마디 “앞뒤로 밀착!”
폭염 속에서 서로의 땀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막히는데 겨울도 아닌 날씨에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맞대고 체온을 뜨겁게 나누었다.
동기의 등에 식판과 내 몸이 그리고 뒤에 동기의 식판과 몸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식판을 몸과 몸 사이에 두고 붙어서 배식을 기다렸다.
식사는 주는 대로 먹어야 했고, 남기면 다시 돌아가 먹어야 했다.
그날 먹은 식사가 다시 역류할 것만 같은 고된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조교의 호통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사회에 묻은 때를 다 벗기고 군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작 그만,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식사 후 얼차려라니…
몸이 버티지 못할 만큼 숨이 가빴다.
그때, 조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자, 이제 사회에서 입고 온 옷을 소포로 싸서
부모님께 보낸다. 옷과 함께 안부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지겠다.”
그 순간, 왜일까— 나의 시야에는 흰 서리가 내려앉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부모님”이라는 단어 하나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편지지는 고작 한 장.
띄어쓰기조차 아까워 꾹꾹 눌러 썼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남자가 되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든 마음을 담았다.
밤이 깊어, 저녁 9시 낯선 연병장 어둠이 내린 점호시간.
연병장에 모인 훈련병들 앞에서 중대장이 외쳤다.
“가족, 부모님, 그리고 사회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함성 10초, 발사!”
‘아아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기침이 날 정도로
훈련소의 첫날 밤하늘은 유난히도 밝았다.
밤하늘 퍼져나간 그 함성 속엔 두려움, 설렘, 그리고 다짐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의 아들이자 연인이었던 존재에서
한 명의 ‘군인’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2년 2개월의 군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 걱정과 설렘으로 가득한 첫 날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