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하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밖으로 자상함을 표현하지 않는 말 그대로 그냥 경상도 남자, 보여지는 것과 다르게 겁도 많으셨던 아버지...
그래서인지 그 흔한 차량 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차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 보니, 남들이 다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형편은 되지 못했던 것이 이유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다 아래로 8명의 동생 불같은 성격의 할아버지 장남으로 뭐하나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다. 모두가 하던 것들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아버지의 삶은 언제나 남다른 길을 걸었다.
아버지는 두 개의 직업이 가지고 계셨다.
하나는 신협 이사장(IMF 힘든 시기를 보냄) 그리고 신문보급소 국장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직업은 신문보급소 소장이다.(신문보급소를 30년을 운영하셨다.)
두 개의 직업 중에서 신문보급소 국장의 삶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요. 그 자전거가 업무적으로는 배달 수단이요. 기사 취재 기동력으로 활용되었다.(70~80년대에는 지방 소식을 취재하는 기자가 많지 않아 신문보급소 국장들이 사진과 기사를 간략하게 적어 보내면 기사화 되어 지방 신문기자 역할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탈 때는 업무용 짐 자전거, 내가 탈 때는 놀이와 학교 통학 수단으로 이용했다.
40대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키가 작은 어린 나이에 성인용 짐 자전거를 타려면 삼각 프레임 안에 비스듬히 다리를 넣어 안장에 앉지 못하고 자전거 탔던 경험들 있을 것이다. 바로 신문사에서 지급되는 자전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자전거는 앞바퀴에 마찰을 이용한 모터가 달려 있어 야간에 빛을 내는 플래시 기능이 있던 자전거라고 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지금은 찾아서 보아야 볼 수 있는 그런 자전거가 되었지만...
그런데 여행 중 낡은 소금 창고 앞에 세워진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 비록 낡고 볼품없었지만, 그 자전거는 분명 지나온 세월만큼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그 자전거로 달려왔던 것처럼...)
새것이었을 때는 닦고 씻어주고 귀하게 여겨졌을 자전거, 밝은 햇살 아래 소금 창고 문에 기대어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서글프고 짠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도 아닌 자전거가 짠하게 보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20살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군 입대 당일 아침 고향 아침밥을 먹고 훈련소로 떠나기 위해 부모님께 인사하고 대문 밖을
나와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타라’ 아버지의 부름 낡은 짐 자전거를 꺼내 기차역까지 배웅한다고 하신다.
유년 시절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전거를 탔던 일이 없는데 성인이 되어 등을 허락하신다.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10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까지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잠시지만 이별이라는 아쉬움과 섭섭함에 밀려와 눈물을 삼키며,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짐 자전거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전거가 되었다.
어쩌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짐 자전거가 보이면 작고하신 아버지의 등이 더 그리워진다.
무뚝뚝한 아버지, 잔정 없는 아버지였지만,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츤데레’같은 아버지,
그 모습이 오래된 짐 자전거를 볼 때면 항상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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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인블로그 2025.3.25 https://blog.naver.com/worker1977/223809489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