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아우라

김종삼과 정현종의 시

by Mignon

시는 언제나 다른 장르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시인이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가나 수필가와는 다른, 어딘가 낯설고 심오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사람이며, 그들이 쓰는 시는 무엇일까. 김종삼의 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인의 의미를 제시한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문학적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다. 오히려 남대문 시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처럼 고생하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다. 김종삼에게 시인이란 언어를 잘 다루는 이가 아니라 삶을 인간답게 견디는 이들이다.


김종삼.jpg 김종삼 (1921-1984)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이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치료의 주체는 전문가가 아니라 참여자 자신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언어 능력이 없어도, 자신의 삶을 견디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면 누구나 이미 시인이다. 이 인식은 문학 치료 참여자에게 강한 자존감 회복의 기초를 제공하며 시 쓰기를 시작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시의 무용성과 치유


그러면 '그런' 시인이 쓴 시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시란 무엇인가.


폴 발레리는 “산문은 보행이고, 시는 춤이다”라고 말했다. 보행은 목적지를 향해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행위다. 그러나 춤은 목적지가 없다. 움직임 자체가 목적이고 아름다움이다.


시 역시 그렇다. 시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쓸모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무용성(無用性)이 인간의 정서를 건드린다. 이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달라”라고 말했던 태도와도 닮아있다. 수단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이다.


문학치료 시간에 시를 먼저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 없는 언어, 쓸모없는 언어는 오히려 인간의 깊은 상처와 고독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다.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죽음으로 죽음을 사랑할 수 없고
삶으로 삶을 사랑할 수 없고
슬픔으로 슬픔을 슬퍼 못하고
시로 시를 사랑 못한다면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랴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 발자국도 없다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저 혼자 아름답다.
– 정현종, 「시, 부질없는 시」 전문


이 시는 시의 존재 이유를 “부질없음”에서 찾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의 눈은 곧 녹아 사라지며 아무 쓸모도 없지만, 그 자체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문학치료적으로 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고통 역시 대부분 쓸모없어 보인다. 실패, 상실, 외로움은 생산성을 높이지도,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시를 읽으며 우리는 이렇게 느낀다. 나의 슬픔은 쓸모없지만, 그래서 더 진짜다. 이 인식이 바로 치유의 출발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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