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내내 책 만드는 내내 책이 나온 이후로도 예민했던 이야기
등단을 하지 않고도 작가가 될 수 있고, 내 이야기로 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책을 그래도 꽤 접했던 사람이니 할 수 있었던 생각일 것이다. 작가가 되고 지인들은 ‘이렇게 책을 낼 수도 있는 거였구나’, ‘그것 자체로 신기하고 자극이 된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전공 공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블로그를 10여년 전부터 운영해오고 있던 나는 그와 거의 동시에 온라인 카페에 소속되어 서평단 모집 중인 책을 신청하고, 당첨되면 제공받은 책의 후기를 남기는 활동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그 카페를 통해 신간을 빠르게 받아보고, 포스팅 거리도 만들며 블로그 운영을 활발히 하고, 관심 분야인 심리 관련 서적들과 그 외 분야의 책들도 다양하고 폭넓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책들을 받아보다 보니 어떤 주제의 책들이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 출판 트렌드가 어떤지를 의도하지 않아도 대략은 파악하게 되었고, 유명한 기성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에 한 가지 주제를 밀도 있게 적은 원고는 충분히 책으로 나올 수 있겠다는 믿음이 막연히 생겼다.
그 원고를 어떤 방법으로 내느냐는 결정할 부분이었는데, 독립출판과 기획출판의 자세한 차이도 모르면서 나는 독립적으로 낼 돈도 디자인 안목도 없으니, 그 반대인 ‘의존출판’을 하여 자본에도 전문적 기술에도 기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정한다고 다가 아니라 그 결정을 같이 내려줄 출판사가 있느냐가 더 큰 요인이지만 말이다. 독립출판을 경험해본 분들은 그 과정도 무척 매력적이라 하는데, 오만하게도 기획출판이 되지 않으면 택할 차선책으로 남겨두었다.
책을 쓰겠다고 하고 나는 매일 밤 서재로 들어가 두어 시간을 나오지 않았다. 책을 쓰려면 일단은 일정 분량의 원고가 필요했다. 원고지 800페이지가량이 적절하다는 것을, 고맙게도 책쓰기 수업을 들으시는 블로그 이웃님께서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주셔서 옆에서 눈동냥으로 손쉽게 배우게 됐다.
과거에 꾸준히 써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고픈 이야기가 생기니 매일 밤 누가 말려도 두 시간씩은 서재에 들어가는 자세가 되었다. 이 작업이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로 나올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은 달콤했고, 마침내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짜릿했다. 무엇보다 나의 과거 기억에 풍덩 빠져들어 헤엄치는 과정 자체가 치유적이었다. 원고를 위해 예전에 약물치료를 받았던 기록, 상담받았던 기록을 여기저기 전화하고 방문해 그러모으며 고군분투했던 가여운 나를 만났다. 5년 전 그 당시 충분히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눈물이 났다, 그러나 괴로움이 아닌, 시원하고 후련한 씻어냄의 눈물이었다.
그러니 어서 아이들이 잠들기를 바랐다. 조금 늦게 잠드는 날일라치면 재촉하게도 되었다. 쓰지 않고 있을 땐 불안했다. 기억과 감정이 날아갈까 불안했다. 더 불안한 건 누군가 그 사이에 나와 꼭 닮은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나보다 먼저 투고하고 책을 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내 글이 아류작처럼 되거나 출간 도전조차 못해보게 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었다.
글을 쓰는 기간 내내 예민했다. 남편은 첫 책도 아직 내 보지 않은 내게 ‘다음엔 책은 안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을 쓰는 동안만이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아니, 물론 그런 이야기도 했겠지마는 일차적으로는 아내의 꿈을 피우기도 전에 좌절시킬 생각이냐며 발끈했다. 남편은 공무원 선배들이 은퇴하시면 자전적 책을 간혹 내시던데 책을 내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는 투였다. 내 이름이 포털에 검색되고 온라인 샵에서 판매가 되는 일이라고 하니 표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알았느냐는 듯 나는 다시 의기양양하게 완전히 예술가 모드가 되었다. 입만 열면 책 얘기였다. 맥락도 없이 불쑥, 이건 어떻게 생각해? 목차는 이런 식이 나을까 이런 식이 나을까. 오래 앉아 있는데 글이 잘 안 써져, 답답해. 완전 필 받았는데 자야 해, 아쉬워!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끝이 안 나! 어떡해!
남편에게 원고만 마무리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투고라는 큰 산이 있었다. 물론 투고를 마치면 괜찮아질 줄 알았고,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고 출판사를 결정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으며 책이 나오면 정말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직후가 가장 괜찮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남편 또한 연속적으로 그런 이야길 들었다. 나 지금 투고 중이라서 예민해, 나 지금 홍보 기간이라서 예민해, 나 지금, 나 지금...! 물론, 남편은 점점 믿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쓰고 있는 걸 보면, 쓰는 게 참 좋았나보다. 쓰는 행위도, 그 이후도. 어쨌든 그렇게 첫 책은 모든 과정이 예민함이자 불안함이었고 혼란스러움이자 당황스러움이었다. 마치 내가 첫 아이를 낳고 키운 과정처럼 그래서 내 첫 책에 담은 딱 그런 내용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