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작가 분이 '자신의 원고를 편집자 분이 매만지고 나서 너무 아름다운 새로운 글로 태어났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퇴고를 앞둔 나는 서툰 내 글이 '좀 더 빛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것' 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약간 설렜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첫 책은 직업 에세이였다.
특정 분야의 직업에 관한 개인적인 분석이고 기록이기 때문에 내용의 전문성과 문장의 고유함은 내게로부터 밖에 나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문 편집자들의 손끝에서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과 좀 더 작가(?)다운 고급진 단어들이 다뤄진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짜임새 좋은 글로 재탄생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있었던 것 같다.
퇴고의 과정은 문장들을 점검하고 (교정교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을 수정) 사진들이 삽입되어질 부분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정이라 보면 될 듯하다.
먼저 완성된 원고를 편집자가 한번 점검하고 나에게 보내주면 또다시 내가 점검하는 식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엔 세 번 정도 반복했던 걸로 기억한다.
편집자와 작가의 애살이 남다를 경우에는 10번 이상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고도 알고 있었고 에세이의 경우에는 매만지면 매만질수록 글에서 윤이 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참 많다;;;)나 또한 퇴고가 그렇게 오랜 시간 지루하게 이뤄지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내 책은 직업 에세이였기 때문에 고유한 문장을 완전히 다른 표현으로 바꿔낼 부분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오타 잡아내기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퇴고 시작 시점에서 담당 피디님은 '1명의 편집자가 보면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원고를 3명의 편집자가 보고 세 번정도 퇴고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분명 수정된 원고가 3번 오고 가긴 했으나 내가 받은 원고에는 수정사항이 거의 없었다.
수정사항이 없는 똑같은 원고가 형식상으로 오고 가는 느낌에...
원래 이런 건가? 이제 수정할 부분이 없나?라는 의문과 내 원고에 신경을 써주지 않는 듯한 서운한 마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의문과 서운함들을 삼켜버렸다.
원래 남의 티가 더 크게 보이는 법.
아마도 그때의 나는, 직접 글을 쓴 내가 찾아내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편집자들의 시선에 걸려드는 무언가가 있길 바랐고, 그 티들을 잡아내는 것 또한 좀 더 전문적이고 성숙한 그들의 손끝에서 완성도 높은 글로 매만져지길 내심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장르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내가 쓴 최종 원고는 퇴고랄 것도 없는 무색한 시간만을 흘려보내고 오타 잡아내기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후에 책이 출간되고 나서 원고가 책으로 바뀐 다시 읽은 책 속에는 문장 같지도 않은 말도 안 되는 문장과 오타들이 수두룩했다.
어찌 이것이 퇴고의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이러고도 퇴고를 몇 번 거친 완성본이라 할 수 있는지. 이런 책을 사람들이 읽는다면 뭐라 할지.
갑자기 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대부분은 오타도 매끄럽지 못한 문장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그나마 다행인 건가)
하지만 내 눈에는 매직아이처럼 선명하게 떠 오른 이 오타들이 퇴고의 시간 동안 편집자에게로 떠밀던 나의 게으름과 무책임함을 반영해 주는 주홍글씨처럼 맘에 뜨겁게 새겨졌다.
그와 더불어 그렇다면 왜 편집자(무려3명)중 한명도 이 오타들을 찾아내지 못했을까...라는 원망도 함께.
'작은 출판사에서 한정된 인원들로 너무 많은 원고를 다루고 너무 많은 책들을 출간해 내는 곳이었기에 그 누구도 나의 원고에 특별한 애정을 기울이지 않아서'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나의 원고에 보여주었던 열정과 애정은 출간계약 도장이 찍힘과 동시에 쌓여 있는 수많은 원고 중 하나로 취급되었던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후 수시로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어쨌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채택되지 않았을 수도 있던 글이었고, 나의 원고에 생명을 불어넣어 책으로 만들어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주고 전국 유통망에 깔아준 것만으로도 나는 출판사에 고마워해야 할 입장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나의 글에 대해 애살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빨리 책으로 만들어지기만을 바라며 출판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게으른 마음으로 내 역할을 미루기만 한 것도 사실이고.
'주인 의식을 가져라'
라는 말이 떠오른다. 결국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인데...
나는 이 말을 주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인의식은 주인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놓고 나는 책의 주인이 출판사라 생각했던 걸까.
주인 의식을 출판사에 바랐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어쨌든 최근 이미 천오백 부 이상이 찍혔고 운 좋게 증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꼼꼼하게 교정교열을 해서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책을 재출간하게 되길 희망해 본다.
(그때는 두 눈 부릅뜨고 내 책은 내가 만든다는 사명으로 퇴고를 할 예정이다!)
TIP.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가분들이라면 최종 원고를 책 형태로 제본해서 책을 읽듯이 넘기면서 최종 퇴고를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마우스로 스크롤해서 읽을 때와는 다르게 책을 읽는 느낌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매직아이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실 수 있고, 독자 입장에서 글을 읽는 느낌으로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수정하시기에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