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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연구소 잠시 May 23. 2023

출판의 바다에 원고를 던지고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들

투고 당시의 일기를 이제 와 펴보니 가관이다. 불안, 화, 두려움, 괴로움, 가라앉는 기분, 가슴이 턱 막힘... 상당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감정단어 신체감각단어들이 보인다. 당시의 나는 왜 그렇게 괴로워했나? 와, 이 문장을 적으면서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얼마나 얄밉게 느낄지 멈칫한다. 이제 책 한 권 내서 저자나 작가로 불린다고 올챙이 적은 타임캡슐에 묻어버렸나?


그래도 들여다보자. 대체 뭐가 그렇게 괴로운가? ‘출판사들에서 메일을 확인했는데도 답장이 없다’. 어디에서 주워들은 후기로 바로 전화로 연락이 온다는 것을 보고 나는 이러한 현상을 ‘출간 의사가 없다’고 이해했다. ‘무응답과 기다림이 괴롭다’고 적었다. 이것은 투고와 관련 없이 내가 특히 취약한 부분이다. 거절이더라도 확실하고 빠른 응답을 원하는 것, 불확실성과 다가감에 약하기에 그렇다.


아 그래, 이것도 있구나. ‘아이에게 화가 날수록 책을 낼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 책이 엄마됨에 관한 과정이기 때문에 책을 낸 이후에는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자동적으로 늘 셀프 모니터링 상태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런 모성 당위성에 너무 구애받지 말자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작가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안 되는 부분에 ‘그러지 말자’고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적어도 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화 좀 났다고 책도 낼 자격이 없는 엄마가 되고, 내 책은 순 거짓부렁처럼 느껴지는 거다.


‘원고를 다시 보는 게 어렵다’고도 적혀 있다. 혹시 지금의 원고가 수정이 필요해서 출간 의사가 들려오지 않고 있는 거라면 원고를 다시 수정해야 할 텐데, 그걸 보기가 어려웠다. 이어서 적힌 말은 ‘나의 무능함을 볼까봐?’. 다시 들여다본 원고가 형편없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별게 다 나온다. ‘질투, 조바심?’. 투고 직전, 과거의 지인이 책을 낸 것을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되었으나 나는 되고파 하면서도 되지 못한 어떤 것. 그게 되지 못할까 봐 질투가 나고 조급했단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우울에 대해서까지 부정당하는 기분인가 보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랬구나, 한 번도 세상에 제대로 내본 적 없는 이야기가 과연 읽힐만한 가치가 있을지, 이게 나 혼자만의 공상과 같은 이야기는 아닌지, 공감받을 수 있을지, 혹은 또다시 고립되고 말지를 궁금해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 그 과정이 투고였구나.


투고란 내가 작가가 되느냐/그러지 못하느냐, 내가 책으로 인세를 버느냐/그러지 못하느냐, 내 이름 석 자를 단 책 한 권이 나오느냐/그러지 못하느냐 때문에 중요한 과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쓴 원고가 가치 있느냐, 투고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넓디넓은 출판의 바다에 말 그대로 ‘투’, 미끼처럼 내 원고를 던지고 물어줄 출판사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원고를 던지고 그 메일에 ‘수신확인’이 되는 순간 나는 평가를 받기 위한 시험대에 올라서는 기분이고 얼마간은 기대와 설렘 속에 시간을 보내지만 답이 없을 땐 결국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별로였구나’. 이러한 투고자들의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시는지 출판사들은 더없이 사려 깊은 문구로 거절을 표현한다. ‘보내주신 '옥고'를 출간하지 못하지만 다른 곳에서 분명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오로지 '저희' 출판사에서 발행할 때의 방향이나 적합성만을 검토한 것이다.  부디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등... 글을 다루는 출판사의 반려인 만큼 가히 언어의 예술이라 할만하다.


그 말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다. 연예계에도 기획사라는 게 있고 각 기획사가 익숙한 분야, 연예인을 잘 성장시키고 활동시킬 수 있는 분야가 있듯이 출판계에도 출판사마다 중점을 두는 분야,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다룬 편집자가 순수문학을 다루는 것보다 문학을 계속 봐온 이가 담당하는 것이 더 쉬운 과정 속 더 질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힙합 레이블이 래퍼를 양성하지 발라드 가수나 아이돌을 밀어주긴 어려울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투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내 원고와 비슷한 성격의 책을 내는 출판사인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세이를 주로 내느냐, 아니면 문학이냐, 자기계발서냐, 실용서냐...


그러나 연예기획사는 한정되어 있고, 아이돌로 데뷔하고 싶은 연습생은 넘쳐난다. 책을 읽는 사람도 출판사의 자본도 한정되어 있고,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과 책으로 둔갑하길 원해지는 원고들은 넘쳐난다.


그대, 투고를 앞두고 있는가? 넓은 바다에 원고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또한 함께하시라, 온갖 감정의 바다에 자신을 내던질 준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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