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DAY

by MAMA

며칠 동안 일이 폭풍우같이 몰아쳤었다. 박대리의 퇴사 이후로 김 과장님은 점심시간에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박대리가 맡았던 영업처를 몇 군데 맡아 납품을 가는 등 업무량과 주행거리가 늘어난 탓에 오전 중에 나가면 점심시간 전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김 과장님은 영업처가 늘어나서 바빠졌다치고 자재실에 온종일 있는 나까지 바쁜 이유는 지난주 시작된 일명 ‘부업’과 대표님이 박대리의 영업처 중 한 곳을 맡음으로 인한 서류작업을 부과했기 때문이었다.



맡고 있는 주된 업무에 괜한 혼선을 빚어주고 싶지 않은 동갑내기 사장님의 궁여지책으로 '부업'이라 부르는 뭐 그런 단순반복 노동이나 본업인 납품준비나 내게는 뭐라 불러도 별 다를 게 없는 거기서 거기인 그냥 일일뿐이다. 그냥 지시해도 되는 일들에 관해 굳이 ‘문주임! 부업 좀 할래요?’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 생각에는 이러한 허드렛일 같거나 단순노동인 일을 ‘부업’으로 둔갑시켜 주면 받아들이는 직원들 자존심에 상처가 덜 나겠거니 싶은 것일까? 뭐 쓸데없는 배려심같지만 여하튼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하게 생겨 번쩍거리는 밸브라는 것의 코일선을 단정하게 꼬아 수축튜브를 껴주기를 300번. 그렇게 끝낸 작업이 1차였다. 2차 작업은 히팅건을 사용해서 코일에 껴져 있는 튜브를 수축시키고 3차로 코일 끝에 커넥터를 껴서 전류가 잘 흐르는지 테스트해 보는 작업까지 대장정의 일이었다. 일단, 내게 주어진 300개 밸브 작업을 쉬지 않고 완료했다. 소모성 일일수록 길게 기간을 잡으면 안 된다. 뭐 쓸데없는 이런 나의 지론으로 소모성인 집안일도 단칼에 쳐내다 보니 몸이 늘 바쁘고 압축노동에 시달려 요즘은 초저녁에 뻗고 마는 불상사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도 이 놈의 성격은 쉬이 바뀌지 않는 고집불통 그 자체다.



단순노동의 끝이 보일 때 즘, 그러니 그때의 내 형상은 어떻게든 긍정의 에너지를 박박 긁어모아 좀이 쑤시는 궁둥이를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해보고, 수 시간 동안 틀어져 있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도 듣기 싫어 꺼버리고, 당이라도 때려 넣어야겠다 싶어 오렌지주스를 페트병째로 마시고 있었던, 꼭 역사시간의 내 큰 아이 같은 모습이랄까? 바로 그 때, 사장이란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타났다. 작업대 저 편에서 납품 준비해야 할 밸브를 조립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있는 힘을 쥐어짜고 있을 때, 혼잣말이 들렸다.



“아이! 어제였잖아. 결혼기념일이었네.”



동갑내기 사장은 희한한 버릇이 있다. 속내인지 겉내인지 모르게 머릿속 생각이 늘 입 밖으로 노출된다. 단순하게 놀람의 감탄사 정도가 아니라 주저리주저리 혼잣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길어진 감탄사와 혼잣말에 뭐라 응답을 해줘야 하나 고민스럽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라든가 방금 말한 ‘어제가 결혼기념일이었네.’라고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유난스럽고 큰 목소리는 꼭 뭔가 상대의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고는 저렇게 거창하게 액션을 취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아니나 다를까



“문주임!’

“네?”

“문주임은 결혼기념일 챙겨요?”



그렇지. 뭔가 내 대답을 의도했던 과한 혼잣말이었다. 가뜩이나 신경 쓸 거 많은 업무에 사장의 혼잣말에도 반응을 할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움의 사회성까지 탑재해야 하다니 플로레타리아의 숙명이 참 안쓰럽다.



“저희 부부는 간단하게 기념합니다. 저녁식사 한 끼 정도. 결혼 초반에는 살뜰하게 챙겼는데 이쯤 되니까 챙겨야 할 날들이 많아서….”



결혼기념일?


올해는 18년 차다. 큰 아이를 결혼 3년 차에 낳았으니 중2병을 대단히 앓고 있는 큰 아이의 나이에 3을 더하면 된다.



“박태환! 박태환 금메달입니다.”



아직도 귀에 생생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박태환이 금메달을 땄던 날. 결혼식이 끝나고 갈 데가 없었다. 신혼 여행지도 정하지 않았다. 결혼식 직전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있어 타고 다닐 차도 마땅히 없었고 일주일 후면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야해서 딱히 신혼여행을 가려고 계획하지 않았었다. 식 직후, 덩그라니 남겨진 우리에게 남편의 후배가 부모님이 대구에서 하시는 식당에가서 벌집 삼겹살을 먹자길래 그렇게 했고, 그 근처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이틀 정도 뚜벅이로 어딘가를 가볼까 하다가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에서 흘러나 온 흥분된 중계석 목소리였다.


그 박태환 금메달 소식 이후로 참으로 많은 소리들이 있었다. 갑자기 터진 리먼브라더스로부터 시작된 달러 급등 소식, 한국에서 날아온 어머님의 한숨 소리, 드러머임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들린 남편의 건반 소리, 아이들의 울음 소리, 단칸방에서의 행복했던 하하호호, 아버님 장례식에서 남편의 흐느낌, 밭에서 들리는 온갖 새와 풀벌레의 지저귐, 미국 지인의 부고와 오늘 아침에 들리던 사춘기 소녀들의 짜증까지….


18년이 거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음 달이면 한여름 무지하게 더운 날, 결혼기념일이다. 카톡창에 만난지 며칠 태어난 지 며칠 세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만 호흡이 날 수에 있지 않음에 그러한 것들이 뭣이 중한가 싶다. 결혼 초에는 멋들어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옷차림에 쥐똥만큼 나오는 고급요리를 먹고 한가로이 걸으며 중하고 번쩍거리는 선물을 받고 싶었다. 내 삶에 그런 고급스러운 아날로그 시계같이 멋들어지지만 멋진척하지 않는 평범해 보이는 그러한 선물 같은 날이 그날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신혼 첫 해부터 맞은 보스턴의 찢어질듯한 찬바람이며, 한국에서 맞은 모진 된소리들에 결혼기념일도 생일도 뭐 대수냐 싶은 마음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남편에게 한 번은 왜 이러한 날들을 잘 안 챙겨주냐고 푸념을 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날만 왜 특별한데? 어차피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매일이 특별한 날이야.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그때의 남편의 변명은 진심이었음을 난 이제야 깨닫는다. 그땐, 남편이 진짜 남 같았는데 나보다 찬바람을 앞서 맞던 방패막이인 가장이 느꼈을 무게와 현실감을 난 육아 10년 후 사회에 나와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을 자랑할만하게 보내지 않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매일이 특별한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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