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다시

by MAMA

6:55PM


“어머니! OOO입니다. 통화 가능하실까요?”

“아! 네, 안녕하세요. 통화 가능합니다.”

“어머니! ㅇㅇ가 10월에 5번 밖에 학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저녁 6시 55분. 막둥이가 학원에서 전자출석체크를 찍고 나왔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울린 전화였다. 아이가 저녁 밥 먹으려고 학원에서 달려오고 있을 생각에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그 때부터 앞치마를 두르자마자 분주하게 준비를 하면 막둥이가 영어학원에서 올 7시 즈음이면 식사 준비를 마친다. 스팸을 넣고 양파, 어묵, 호박, 잔멸치 등어울릴 듯 말 듯한 온갖 것을 다 넣고 김치볶음밥을 하고 있었다. 막둥이가 엎어지면 코 닿을 아파트 단지내 영어학원에서 출발했다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마무리 단계에 돌입하여 김치볶음밥의 대미를 장식할 계란 후라이를 부치고 있던 중 학원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우리 ㅇㅇ가 10월달에 학원을 다섯번 밖에 가지 않았다고요? 매일 출석체크 문자가 오는데 그럼 이건 뭔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 막둥이가 나를 속였다고?’라는 의심이 머릿속에 푹풍같이 몰아쳤다.


10:05AM


“문주임!”

“네!”

“요새는 왜 DM발송을 하지 않나?”

“네?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의욕이 떨어진 것 같아서.”

“제가 한 백 여 군데 거래처에 이메일을 보내보았는데 전혀 입질이 오지 않습니다.”

“영업이 그렇게 쉬우면 다 하지. 영업은 원래 끈기 있게 해야 해.”


회사에 불량재고가 있다. 자동화 장비에 들어가는 일제 회전실린더라는 제품인데 몇 년 전 고객사에서 800개 발주를 했었다. 2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발주 요청을 한 거라 회사 측에서도 상당한 양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까봐 직접 일본 본사를 오가면서 원활한 공급을 위해 노력을 기했다. 이미 제품 비용을 본사에 선지불하고 나서 거래업체에 납기일에 따라 공급과 결제만을 남겨둔 상황에 고객사에서 200개만 구매완료를 했다. 나머지 600개는 재고가 되었다. 그 일로 인해 많은 잡음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회사 설립 동시부터 있어 대소사를 모두 알고 있는 박차장과 김차장도 그 내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고, 더욱이 불량재고 건에 대해 물어 본다고 해도 이제 갓 입사한 내게 회사의 손실에 관해 말해줄 연유도 없었다.


몇 달 전, 어느 날 회사의 오너이신 큰 대표님이 3층 자재실에 올라오셨고, 불량재고를 쌓아 둔 창고를 훑어 보시다가 내게 장난처럼 제안을 하셨다.


“문주임! 이거 팔아볼래? 팔면 50% 줄게.

“네? 제가 팔아도 되나요?”

“그럼! 팔아봐. 팔면 50% 줄게.”


DEAL.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장난처럼 말씀하셨지만 그간의 신뢰로 내게 큰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팔아보겠습니다.”


회사에 손해를 안겨주었던 아픈 손가락이었던 수 백 개의 불량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라…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내가 회사의 영웅이 될 수 있다라는 흥미진진한 상상이 욕심을 자극했다. 말단 지위가 상승함과 동시에 대표님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목돈까지 보너스로 생기는 기회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 몇 주를 몇 달을 시간이 날 때마다 판로를 개척해 보려고 노력했다. 제품을 잘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지면서 제품 공부를 했고 Chat GPT도움까지 받으면서 온갖 거래처에 메일을 무작위로 발송했다. 중국, 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지의 자동화 설비 업체 및 식품 공장 설비업체, 로보트 제작 회사 등으로 수 십, 수백의 메일을 보냈다. 팔리기만 하면 아이들과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고, 우리 남편 차도 사주려고 했다. 꿈에 부풀어 매일 설렜다.


그런데 그렇게 쉬이 팔릴 거였으면 그 몇 년 동안 뿌옇게 먼지도 쌓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벌써 해결을 했을 일이었다. 내가 정말 순진한 거였다. 의욕은 점점 떨어졌고, 바쁜 주요한 업무 외에 그 일에 에너지를 쏟을 시간도 힘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 대량 매도를 할 생각을 바꾸어 한 개라도 팔아볼까 하여 중고매매 사이트에 판매자로 등록을 시도했었다.


의욕이 떨어진 것을 어떻게 알게 되셨을까 모르겠지만 괜히 내게 쌓인 그 분의 신뢰에 금이 갈까 우려되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의 끝맺음이 흐지부지 하게 되고 그것이 나에 대한 또 다른 평가가 될까봐 한숨이 나왔다. 기대로 맡겨 주셨던 믿음이 그러면 그렇지 라는 포기로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건 정말이지 용납이 안 된다. 불안해진 감정은 의심을 낫고 마는 법이니까….



“어머님! 모르셨나봐요. 문제가 있네요. ㅇㅇ이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시네요.”

“그럴리가요.”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와 동시에 '막둥이가 학원에 출석 체크만하고 친구들과 나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매일 이 엄마를 속였다는 것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그것밖에 되질 않았다. 불안이 기습을 하는 순간 12년동안 누구보다 바르게 키웠다 자부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던것인가 싶었다.


“어머니! OO가 중학교 1학년 연극반에 들어간다고 하더니 이렇게 결석이 늘었..”’

“잠깐만요! 원장님!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연극반이라니요?”

“네? 잠깐만! 어머어머어머머머!!!!!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중학교 1학년 손OO 인데 OO이와 이름이 같아서 이런 실례를 범했어요.”

“우리 아이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않지만 매일 성실하게 학원에 갔습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불안감에서 해방되더니 아이를 아주 잠깐 의심했던 그 몇 분에 대한 변명처럼 막둥이에 대한 옹호를 속사포처럼 하기 시작했다.


“우리 OO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OO는 학원에서 제일 성실하고 인사도 잘하는 예의가 정말 바른 착한 학생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찰나라면 찰나 같은 시간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그 사이 김치 볶음밥은 완성되었고, 조금 못나 보이는 계란 후라이를 덮어 상을 차렸다.


“다녀왔습니다.”


하얀 패딩을 입고 발개진 볼이 더욱 발개 보이는 막둥이가 씩씩하게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우리 막둥이 왔어. 아이고 우리 예쁜 막둥이 왔어!”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그 원장의 전화가 보이스피싱이라면 나는 완벽하게 낚인 것이었다. 끔찍하지만 아이를 믿지 못한 죄로 벌어질 대가는 상당히 컸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우리 막둥이를 믿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바다 같은 넓은 아량으로 자기를 믿지 못한 엄마를 김치볶음밥 한 그릇에 용서해주었다. 맛있다면서 밥 수저를 쉬지 않고 이 기막힌 해프닝을 호탕하게 웃으면서 넘겼다. 재차 괜찮다고 말하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그 따뜻한 품이 내가 그 아이를 안아줌보다도 더 온기가 느껴졌다. 다시 나는, 또 다시 반성을 거듭하며 엄마의 자리에 있었다.


켜켜이 쌓아 올려진 관계란 마치 만 개의 나뭇가지로 단단히 만들어진 새둥지와 같다. 그 관계에서 믿음이라는 말이 주는 큰 아름드리 나무와 같은 우직함은 감히 우리의 자잘한 감정들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으로 오는 묵직한 긍정의 눌림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깨질듯한 균열을 우리는 믿음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과 과정이라 부를 수 있다. 내가 그 불량재고를 처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 회사의 직원으로 계약에 합당한 그리고 직원과 대표사이에 합당한 성실의 과정으로 아주 열심을 다해 이 일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불현 듯 오늘처럼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순식간에 의심으로 바뀌는 실수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는 걱정은 하지 않을 거다. 믿음이란 건 쉬이 사라 질 만큼 근본 없는 감정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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