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놀면 일하기 힘들다고 삼일 휴일이 딱 좋다는 박차장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이번 주가 10월의 마지막주인데 연휴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연휴 후 이주동안은 시간이 꼭 멈춘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더딘 하루하루가 지나 벌써 달력이 두 장밖에 남질 않았다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현실에 입사동기 박대리와 나는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한식 뷔페에서 밥을 먹고 나면 박대리와 회사 주변을 걷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봄바람을 지나 뜨거운 여름을 나고 보약인 가을 햇볕을 맞으니 일 년이 훌쩍 가버렸다.
늘 그러했듯 우리의 대화는 시답잖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나눔이 태반이었다. 지난 주말 원주 만두 축제를 다녀온 박대리는 김천 김밥 축제를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고, 월요일과 화요일 LG트윈스에게 패배한 한화이글스 탓에 내 몰골과 정신은 초췌했다. 또 박대리는 아침나절에 있었던 자재부 정대리와의 일로 열변을 토로했다. 전 회사에서 8년 동안 근무하다 막내를 벗어날 수 없어 이직을 결심했는데 이번 회사에서도 그녀는 또 막내였다. 더 서글픈 현실은 기약이 없는 막내라는 것.
작은 소기업들의 경우 신입들이 매년 입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10명 내지 30명 내외로 구성되는 조직에서 보통 영업직이나 연구직등 경력직들의 변동이 잦은 반면 신입들은 입사 후 임금이나 처우등을 이유로 입사 이 년 차나 삼 년 차의 경우 이직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신입들의 지위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막내는 거의 계속 막내로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재실의 담배 무는 언니들은 아르바이트라 해도 연차로 따지면 적으면 3년에서 5년 차까지 나이로치면 50대들이다. 박차장은 14년 차 노련한 아줌마, 김과장은 타회사 5년 경력으로 영업부 담당자로 입사했고, 올해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한 박대리 옆자리 김과장은 입사 3년 차다. 입사동기 박대리가 아무리 전 회사에서 8년을 근무했다고 해도 영업부 경력직이 아니고서야 이 분야 생판 모르는 신입으로 입사한 터라 어디다 내밀 명함이 없다.
그런 그녀는 온갖 일에 떠밀려 있었다. 탕비실 얼음을 얼리는 일, 분리수거, 박차장과 김과장의 잔심부름, 거래업체에 택배를 보내는 일 등등 구매부 업무에 어울리지 않는 허다한 잡일을 당연히 막내가 해야만 한다는 구시대적인 조직의 발상에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나야 3층에 홀로 있는 독거노인이다 보니 아래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무지 알 리가 없지만 이렇게 점심시간 그녀의 울분에 동조되어 격분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날이 가끔 있다. 오늘은 자재부 정대리가 박대리가 얼음을 얼리지 않았다며 잔소리를 했다고 해서 난 ‘나잇값도 못하는 구시대적인 노인’이라며 욕을 한바탕 해주었다.
“아니, 잠깐만! 나 진짜 이런 미친.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얼음 통에 얼음이 없으면 지가 얼리면 되지. 누가 누굴 보고 얼음을 얼렸네 말았네 하는 거야?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지가 먹을 얼음을 누구보고 얼리라는 거야? 정신이 나갔네 나갔어. 어디다가 나이 먹었다고 자랑하는 건지.”
정말 요즘 말로 개가 박을 빡하고 치는 어처구니로 쌈을 싸드신 상황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 그러다가 박대리는 나를 진정시키면서 갑자기 철이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그런데 주임님! 요즘 철이가 안 보이지 않아요? 요 몇 주 못 본 것 같아요.”
“철이? 그러게. 우리 철이 어디 갔나? 요즘 못된 사람도 많던데 개장수가 보따리에 넣어서 잡아 간 거 아니야?”
“에이! 설마요. 도망갔나?”
“도망갈 아이는 아닌데. 이 동네 회사 사람들이 그 녀석을 얼마나 예뻐하는데 도망을 가겠어?”
“그렇죠?”
“안 되겠다. 그 녀석 잘 가는 옆 회사 사장님이나 직원들 보면 물어보자.”
정대리를 향한 격렬한 분은 철이에 대한 화제로 전환되어 급하게 가라앉았다. 참고로 철이는 논두렁 밭두렁이 즐비한 우리 회사 단지 내 한 곳에 적을 두고 있지만 시바견 특유의 워낙 귀여운 외모로 온 동네를 누비며 예쁨을 받는 개다. 그 아이 이름이 ‘철’이다. 앞 회사는 양파공장인데 하얀 개를 키우고 그 개 또한 묶음줄에 구애받지 않고 풀어놓아 여기저기 제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닌다. 여하튼 매일이 똑같은 지루한 회사 생활에 드문드문 놓아주는 철이의 발자국에 달콤 짭짤한 간식을 먹는 듯 가끔은 출근길 매일의 점심시간에 미소 지어지는 날이 많았다.
때마침, 옆 회사 직원 한 분이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사장님! 어르신!”
호칭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마구 던져보았다.
“그 개 어디 갔어요? 노란 시바견 있잖아요. 많이 예뻐하시던 개요.”
“아! 철이?”
“네! 맞아요. 철이요.”
“죽었어.”
“네?”
“좀 됐는데...... 추석 연휴 끝나고 금요일. 그러니까 10일에 출근하니까 우리 회사 처마 밑에 누워 있는데 배랑 허벅지 쪽에 심하게 물린 자국이 있더라고.”
“예? 뭐라고요?”
“우리도 이야기를 들으니까 연휴 때 저 식당 앞에서 개들끼리 싸움이 났었대. 무서워서 아주머니가 말릴 수도 없었다고 하네. 하얀 개가 철이를 물었다고 하는데 그 하얀 개가 어떤 개인지 알 수가 없네. 저 양파공장 개는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러고 나서 우리 회사를 찾아온 거야. 벌써 며칠 된 것 같은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더라고. 뭘 줘도 먹지 못하고. 병원을 데려가려는데 죽었어.”
“말도 안 돼요. 철이가 죽었다고요? 어떻게 해요. 그 귀여운 아이를 누가 물어 죽인 거예요?”
“아이고! 말을 하면서도 눈에 선해. 우리 회사 사람들이 그 녀석을 많이 좋아했어. 우리 여직원들은 다 울었어.”
“저희도 그 녀석 많이 좋아했는데..... 보고 싶었는데.....”
박대리와 난 말을 잇지 못했다. 철이를 마음에 묻은 사장님은 말씀을 이어 나가시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다. 어쩐지 식사 후 종이컵에 철이에게 줄 고기를 담아 나오는 직원들도 보지 못한 지 꽤 되었다. 옆 회사 앞 주차장 벤치에 직원들이 모여 철이를 쓰담쓰담하는 모습도 연휴 전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상실감. 이런 게 상실이란 감정이었다. 순간,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별 거 아닌 '동네 개'인 줄 알았는데 내게 이런 상실감을 준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보고 싶음에 눈물이 났다. 먹먹함이 자꾸 울렁댔다. 정을 주며 키운 개도 아니고 회사 산책 길에 보며 눈길 주었던 그 개가 내 마음을 이렇게나 차지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정말로 난 슬퍼했다.
큰 아이와 통화를 했다. 큰 아이도 철이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화상 통화로 보여주었는데 제 멋대로 철이를 치즈라 불렀었다. 큰 아이에게도 철이의 죽음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이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를 잃고 말았다.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들이 생계유지 같은 대단한 이유인 것 같아도 별거 아닌 하찮은 것들이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게 한다. 가령, 입사동기와의 수다, 혼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화장실, 맛있는 점심밥, 멀지 않은 출퇴근 거리, 모나지 않은 사람들, 논두렁 밭두렁 사이에서 보는 동네 강아지들......
철이.
귀가 쫑긋하고 노란 치즈 색 털의 귀여운 아이. 보고싶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