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16화 2024년 7월 23일 제발 그 뿐이다.

by MAMA


어제 폭풍이 지나갔다.

비바람에 이중창이 후덜대고 휘이 하는 바람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아이들이 전부 안방에 모여 자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부벼 대는 살갗의 냄새에 기분이 좋았다. 미국 생활 10년 동안 낸 월세만 족히 집 한 채 값은 될 터인데 거주 문제보다 우선인 신분 문제가 해결이 되었더라면 집 한 채 살 법도 하건만 빚이라고는 치를 떠는 꼼꼼하다 못해 약간은 옹색한 남편 덕에 집 한 칸 마련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학 생활에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공부에 육아에 생활비에 불법적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집보다 차가 먼저라 차는 지불완료를 하였다는 뿌듯함을 남편은 늘 갖고 있었다.


아무튼 한국에 나왔을 때는 사실, 이렇게 오래 한국에 머무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시민권자이니 당장이라도 갈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올곳이 졸업할 때까지 우린 아직 한국이다. 생각보다 한국에서 사는 삶이란 녹록지 않았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에 이민 온 듯, 다섯 살 큰아이와 두 돌이 채 안 지난 막내를 데리고 자리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했다. 누구든 먼저 선뜻 우리의 형편에 맞는 길라잡이를 해주는 이는 없었다. 형제, 자매조차도 다들 제 살기 바빴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기댈 만한 곳이 못 되었다. 유학까지나 갔다가 온 자식이 애가 둘이나 딸려서 남보다 못하게 사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러웠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에 갓 도착한 우리에게 대출이 나올 리도 없었고, 겨우 월세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월세 생활 8년, 미국에서까지 치면 월세 16년 지긋지긋한 월세 살이부터 탈출해야겠어서 넣었던 묻지마 청약이 당첨이 되었다. 설마 하고 넣어 본 건데 난데없이 당첨문자가 왔다.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른다. 마음에 드는 곳을 넣어 봤지만 예비 1264위라는 말도 안 되는 문자를 왜 보내주는지 전파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하필 이런데라도 넣어 볼까 했던 계륵의 주인이 왜 내가 되었는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쌍욕이 한 트럭은 되었을 것이다. 한창 부동산 투기가 극에 달하여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불안감이 지속되고 정부에서는 전매제한이니 재당첨제한기간이며 실거주의무 등으로 청약에 대한 투기를 막으려 했던 때여서 당첨을 포기하면 신중하지 못한 괘씸죄로 7년이나 청약을 못하게 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사방이 막힌 듯했다. 그래도 나는 낯선 도시라도 수도권이라면 내 집에 살고 싶었다. 우겼다. 매일 우겼다. 남편과의 갈등이 산맥을 이뤄 가로막힌 대화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그동안 쌓아놓은 경력과 이력으로 대출이 나왔고 우격다짐으로 이사를 올 수 있었다. 34평. 국평이라고 한단다. 넓고 쾌적한 환경에 아이들은 제 방이 생겨 이사 온 후 일주일은 좋아라 했다. 새 집 증후군이고 뭐고 사춘기가 막 시작된 아이들에게 짱 박힐 구석 하나 마련해 준 것이 흡족했다. 사실, 전에 살던 월세집은 네 식구가 부벼대며 뒹굴며 어느 곳 하나 궁둥이 한쪽 여유 있었던 적이 없이 생활했다. 그래도 워낙 유쾌한 우리 부부의 성격에 모나지 않게 자란 아이들 덕분에 그 허름하고 누추한 집이 스위트 홈이었으며 별이 반짝이는 천장에 잠을 달게 잤던 쉼 공간이었다. 거기서 우린 밤새 깔깔 웃기도 하고, 월드컵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며, 좀비게임도 했다. 아이들은 집을 그리워했다. 시간도 그리워하고 냄새도 그리워했으며 색깔도 그리워했다. 그런 아이들은 두어 달 동안 안방으로 모여 엉기기 시작했다. 같은 방 천장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잠이 드는 그때로 아이들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얘들아! 일어나야지! 아침이야.”

"엄마! 언니 방학이잖아. 오늘부터."

"엥? 그러네. 그럼 우리 막둥이만 학교 가야겠네. 엄마랑 같이."

“엄마! 어제 천둥 엄청 무섭게 많이 쳤어.”

“그래. 장난이 아니었어.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 같은 날 데려다 줄 수 있어서."

“근데 이렇게 자니까 좋다. 매일 이렇게 다 같이 자자.”

“아니, 방을 만들어 줬더니 왜 자꾸 이 방으로 모이냐?”

“엄마는 싫어? 같이 자니까 하나도 안 무섭네.”


오늘 막둥이 학교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기로 해서 출근을 늦게 하기로 했다. 비가 세차게 오는데도 녹색어머니회 활동이 취소가 되었다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차로 막둥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난 후, 학교 지킴이 교실에 가서 우비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차량통제 깃발을 들고 우산까지 받쳐 쓰고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섰다. 별거 없어 보여도 우회전 차량을 녹색어머니회 깃발이 가로막으니 공권력 앞에 차들이 정렬하며 급한 마음을 추스르는 듯 보여 뿌듯했다. 키가 자그마한 저학년 아이들이 제보다도 큼지막한 우산을 써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신호는 왜 그리 짧은지 작디작은 발걸음을 재촉하여도 빨간 신호는 금방금방 찾아왔다. 아이들한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자 저벅저벅 장화가 거추장스러워 보였지만 오랜만에 보는 그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제 잠을 설쳐대어 몽롱한 정신도 이 즈음되니 제 시계를 찾은 듯했다. 9시. 비 오는 날에도 이리도 나와 주셨구나 대접 어린 인사라도 받을 만하다 생각했던 것이 교만이었는지 30분을 빗속에 서 있다가 학교로 들어가면서 만난 교장, 교감 선생님이 감사 인사조차 없어 서운했다. 내가 서운한 게 이상한 것인지 그런 걸 기대한 것이 오만함이었는지 봉사가 말 그대로 봉사인데 욕심을 냈나 싶어 자책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애써 빗방울과 함께 털어보려 했다. 밤새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기에는 절망적인 날씨임을 감안하여 잠을 무지하게 설치기까지 했는데 여간 기분이 언짢은 게 아니었다. 잠을 설친 이유를 말하자면 단지 날씨 때문만 아니었다.


어젯밤 아이들 방에 나타난 불청객 먼지더듬이 일명, 책벌레를 소탕하기 위해 거의 입주 청소 가까운 노동을 몇 시간 했더니 땀이 범벅이 되어 다시 씻은 시각이 11시 반이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방학 전에 들어야 하는 공무직 교육들이 밀려 그때부터 1.5 배속하여 시청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잠 때를 놓쳐 피곤하고 지친 몸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 정말 고된 하루였는데 잠은 오질 않고 밤새 요동치는 날씨를 생방송으로 귀동냥하니 더 괴로웠다. 새벽 한 두시 즈음 되었을까. 요란했던 조짐만큼이나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바람에 집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내일 녹색어머니회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게 그리고 잠시 잠이 들었다.


방학이 시작된 큰 딸은 느지막이 일어나도 되건만 새벽 5시 40분 요란한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5시 반에 울리는 내 알람소리에 부스스하게 일어나니 브레인포그로 정신상태가 날씨만큼이나 묵직했다. 아직도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과연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런 날씨에도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학교에 등교를 한다. 나라고 무슨 변명을 하고 안 나갈 수 있으랴. 그런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들과 아침 7시와 8시를 함께 할 수 있다니. 그동안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과 아침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몇 달 만에 함께하니 집에서 노는 전업주부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집도 샀고 대출도 있으니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지만 남편 월급에 맞추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이들 옆에 있을까 하는 잠깐의 유혹은 참으로 달콤했다. 이런 날씨에 때맞추어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이유삼아 막둥이를 방학식에 학교에 차로 데려다 줄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냥 그뿐만이었다고 치기로 하며 나 자신을 달래었다.


급식실은 이미 일사불란. 오늘의 주메뉴는 감자탕이다. 깻잎을 데쳤는지 축축한 깨 향이 전처리실 공기를 누를 듯했다. 나는 오늘 밥 담당이라 조리사님과 함께 밥을 취사해야 했다. 먼저 일을 시작하신 조리사님 곁으로 가서 토출 된 쌀을 바트에 담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를 가장 먼저 알아본 명자언니가 손을 흔들었다.


“혜성이 왔냐?”

“응! 언니.”


명자언니는 오늘 부찬으로 온 오렌지를 썰고 있었다. 이미 초 단위로 일이 분업화되어 검수가 끝난 직후 30분 만에 이미 많은 작업들을 끝낸 조리실은 평화로웠다. 주찬 팀의 메뉴는 마늘종 어묵 볶음, 부찬 팀은 오렌지를 소독하고 썰어서 바트에 담아낸 후, 숙주맛살무침을 해야 하고, 국 팀은 감자탕을 완성해야 한다. 9시 40분 정도 되면 스멀스멀 그것들의 냄새들이 조리실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냄새로 알 수 있다. 10시 20분 완성된 메뉴들이 모습을 차츰차츰 드러내어 바트에 정갈하게 담겨 냉장고와 온장고로 이동하고 배식대로 운반되어진다. 그전에 아주 중요한 과정을 하나 거친다. 검식.


먼저는 조리사님 그 다음은 급식실의 최상관인 영양사 선생님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은 은근히 민감한 과정이다. 메뉴를 자신 있게 완성했다고 하여도 평가를 받는 시간인만큼 약간의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다. 제일 민감한 부분은 맛보다도 염도다. 초등학교 급식실인만큼 염도는 0.6에서 0.7 사이다. 이를 넘어가면 분명 맛은 있다. 국은 짭짤하고 무침은 혀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렇게 맛이 있으면 아니 될 말이다. 어른 입맛에 뭔가 밍밍한 듯 부족함이 있어야 검식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오늘 이 과정에서 국팀은 혼쭐이 났다. 염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걸 이렇게 짜게 하면 어떻게 해? 너네들 입맛에 맞추지 말라고 했지? 맛이 있는 게 중요하지만 여긴 초등학교라고. 염도 조절을 왜 이리 못해? 물 붓고 다시 끓여.”


조리사님의 언성이 높아지셨고 열심히 땀 흘린 국 팀도 짜증이 난 듯 보였다. 조율은 눈치껏이다. 짜다고 물을 더 넣으면 어렵게 맛을 잡은 음식이 또 고된 수고를 거쳐야 해서 웬만해서 조리팀들도 과하게 수정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오늘 같이 높은 언성이 오고 간 날은 수정을 위한 흉내라도 열심히 재주로 부려 보아야 한다. 노련한 미현이는 곰이 재주 부르는 듯 조리장님의 지적에 감자탕의 염도를 낮추는 자세를 취했다.


잡음은 사라졌다. 우리의 잠깐의 점심시간과 휴식시간. 이때 먹는 밥은 사실, 꿀 맛 같지 않다. 조리에 지쳐 땀범벅이 되고 나면 뜨거운 밥이 먹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나마 조리에 과한 힘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밥 담당을 한 경우라든가 조리와 관련이 없는 도우미 담당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이 시간 밥숟가락을 들 힘이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도 먹어야 세척실을 담당하든 배식대에 서 있든 남은 과정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밀어 넣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러하지만 이 시간에도 아직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평가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감자탕이 좀 짜기는 짜다. 숙주는 또 국물이 왜 이렇게 많아”

“맛만 좋은데 뭘.”


'뭐가 짜네 싱겁네 맛이 있네 없네 국물이 많네 적네' 어쩌고를 듣고 있으면 저들은 힘이 참 남아 도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보다도 상도덕이 없는 게 더 맞는 표현이지 싶다. 1600인분의 음식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서로 아는데 맛이 조금 덜하면 어떠하고 더 하면 어떠하리 까다로운 입맛의 그 입 조금만 다물어주면 예쁠 텐데. 오늘 날도 축축한데 염도가 좀 높은 감자탕은 정말 맛이 기가 막혔고, 짭짤한 숙주나물은 그야말로 흠잡을 때가 없었다. 적당히 갈색 빛이 감도는 탱글탱글한 어묵이 송송한 마늘종어묵볶음은 더할 나위 없이 밥반찬으로 제격이었다.


오늘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습진이나 걸리지는 않았나 걱정이 되고, 줄줄줄 흐르는 땀때문에 두 번 세 번 옷을 갈아 입어도 쉰내나 나지 않을까 염려스럽고, 숨이 막혀도 벗을 수 없는 마스크 안으로 침과 땀이 뒤엉켜 버린 그리고 챙이 닳아빠진 위생모자 안으로 몰골이 엉망인 젖은 머리가 숨어져 있다는 걸 우린 너무나 잘 안다. 단 한 명도 제외 없이 다 이런 상태다. 나는 음식의 맛이 어떠니 떠들면서 우리의 그 처참한 상태를 간과하고 싶지 않았다.


딱 그 맛이면 되었다. 훌륭했다. 내 칭찬받지 못할 엉뚱한 청약도 훌륭했고, 빗 속에서 아이들의 등굣길을 챙겼음도 훌륭했다. 기대만큼 아니었더라도 결과가 말해주는 최선이 있었음을 아는 이들은 적어도 따습고 고운 말 한마디로 위로해야만 한다. 내 바람은 제발 그뿐이다.


퇴근 후, 집에 와 소파에 쓰러져 누운 나를 막둥이가 꽉 안아주었다.


"엄마! 수고했어. 오늘 학교에 와줘서 고마워."


그냥 눈물이 났다. 제발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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