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2024년 7월 22일 맺음에 대하여
마무리 : 일의 끝맺음
모든 일은 시작보다는 끝맺음이 좋아야 한다. 삶의 열매는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교 1등, 유학과 10년의 미국생활, 그보다 못한 지금의 생활을 비아냥 거리며 명품을 휘두른 지인이 나한테 삶에서 필요한 게 뭐냐는 이미 정해 놓은 대답을 듣고 싶어 싸구려 질문을 했다. 그때 나는 주저했다. 웃픈 현실에 도망치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인정하기도 싫었다. 내가 간절히 사고 싶은 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불혹이 훌쩍 넘어버린 나이에도 글을 쓰면서 꾸는 꿈,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내 삶의 온 힘을 다해 전해 주는 지식과 지혜를 통해 후회 남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열망, 혹은 남편이 내가 젊은 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처럼 따뜻하게 친절하게 열정적으로 한결같이 연애할 때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것들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남편은 유학 막바지 공부 중이었다. 음악을 전공했던 남편은 레슨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빠듯한 살림살이, 공부, 육아까지 그 누구도 그처럼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때, 우리는 아주 작은 교회를 다녔다. 교회라는 조직이 아니라 우리에게 교회는 곧 가족이었다. 교회 언니와 오빠들은 우리보다 살림이 더 나은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들도 각 가정마다 셋 또는 넷 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경제 사정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정의 대소사에 물질적으로 마음적으로 늘 넘치도록 사랑을 주었다. 한 번은 첫 아이 돌 때, 천 불 정도를 받게 되었다. 물론, 그것만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돌잔치 상이며, 꽤 비싼 카시트며 갚을 수 없을 은혜로 선물을 받았다. 그때, 그들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제일 쉬운 것이니 부담 갖지 말아라’라고 말해주면서 우리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하였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유학생에게 그 말은 이해라고 와닿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 내가 그들의 나이쯤 되어보니 켜켜이 쌓아진 삶의 연륜이 주는 지혜의 말 한마디였다는 것을 이제 와 깨닫게 되었다.
가끔 내가 바랐던 나와 현실의 나와의 격차가 상당하여 불만족과 위기감이 덮쳐 삶이 송두리째 후회로 남는 어떠한 순간이 있다. 학창 시절 철없이 놀았던 어떤 지인은 철마다 해외로 골프 여행을 가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시집 잘 가서 사모님 소리 듣고 진작에 서울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이도 있다. 뭐, 돈이 인생의 결말이라면 그들과 나는 견줄 수 없지만, 삶을 그 사람이 지금 갖고 있는 많고 적음으로만 판단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아직 맺음에 대한 과정이고, 나는 그 맺음을 앞으로도 여러 번 수차례 하지 않을까. 그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평가받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기준인지 또는 절대 지불로 인하여도 소유할 수 없는 기준으로.
퇴직이 코 앞이다. 퇴직이라고 하기에 너무 짧았던 이력. 대체 근무직으로 들어와 얼렁뚱땅 정직원에 지원을 하고 아무 이력서의 조건도 요구하지 않는 그저 헌신과 봉사정신으로 무한 희생을 무기계약직이라는 포장과 공무원의 혜택에 강요당하는 조리실무사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지 4개월. 일보다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 던져 버린 사직서가 영양사의 실수로 책상 서랍 속에 한 달간 보관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달 더 발목이 잡혀버린 4대 보험 넣어 주는 직장다운 직장.
불만을 얘기코자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급식실에서의 4개월의 경험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과 반목함에도 호탕한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 웃음 뒤에는 압축 노동의 직업이 말해주는 강도 높은 노동과 위계질서가 내재되어 있었고, 언제 어디론가 튈지 모르는 원망과 불평의 대상을 굶주린 사자처럼 찾고 있는 사람들의 거친 입김이 늘 산재에 포함되어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7월 한 달 정말 퇴직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건만 퇴직을 일주일 남긴 사람한테 조차도 산업재해교육은 의무였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이며 아동학대예방교육, 4대 폭력예방교육까지. 날 평가하는 끝맺음은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자들의 수고가 귀찮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나에 대한 그리움 정도면 직장에서는 호평이지 않을까.
오늘은 안동찜닭을 만들어야 한다. 닭 요리는 급식메뉴 중 뒷다리 돼지불고기만큼이나 제육볶음, 고추장 불고기, 간장불고기 등등으로 이름만 바뀌어 자주 등장하는 메뉴이다. 지난번에 짜장 찜닭을 해보았는데 오늘은 안동찜닭이다. 얼마 전, 휴가 때 경주에서 출발하여 집으로 가는 길 하룻밤 안동에서 머물었던 적이 있다. 관광을 계획하고 간 곳이 아니라 무리한 귀갓길에 잠깐의 쉼으로 지나치기로 한 곳이어서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저 시장통에 가서 저녁식사로 유명하다는 안동찜닭을 먹어 보자고 합의한 정도의 그뿐인 곳이었다. 여행의 막바지 발걸음에 집이 그리워 그랬는지 줄 서서 먹는다는 찜닭의 맛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단, 특이한 점 한 가지는 닭이 어떤 처리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할 정도로 탱글탱글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게 핵심포인트였던 듯하다. 닭을 닭볶음탕 하는 식으로 지지고 볶고 끓이다 보면 살이 퍼석거리면서 결국 흐드러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안동찜닭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닭을 따로 삶지 않고 말 그대로 찌는 것 같았다. 양념이야 우리네 양념에 그리 특별할 것이 없지 않은가. 매우면 고추장이요 달달하면 물엿이나 조청, 설탕이요 짭짤하면 간장인데 그 사이사이 빈 맛을 메우기 위한 각종 비법 양념은 육수일 수도 있고 msg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던 그런 비슷한 맛을 주부라면 누구나 낼 수 있는 비법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니 누구나 다 그 정도쯤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안동찜닭의 맛을 급식실에서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닭을 찌는 번거로움은 조금은 사치가 아닐까. 그러니 안동 찜닭도 볶음탕처럼. 그래도 담당을 맡은 이가 미현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역시나 미현이는 더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기차화통 삶아 먹은 목청은 또 어찌나 큰 지 뜨거운 솥단지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때면 미현이가 “혜성아!” 부르는 소리에 부산정도까지 가고 있는 정신이 바다를 건너기 전에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오늘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땀방울에 눈이 따가운데 미현이는 주방을 호령하며 양념을 이것저것 가져다가 찜닭에 넣는다. 나와 혜진언니는 어제처럼 삽을 들고 솥단지 옆을 지키는 군인처럼 명령에 복종하며 최선을 다하느라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후훗’
주방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미현이를 보고 있으니 마치 '라따뚜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피식 나왔다. 긴 앞치마에 가려진 작은 체구로 양념통을 들고 여기저기 누비느라 바빠 보였고, 눈빛에는 뭐랄까 또랑또랑함과 약간은 조리장이라 하기에 모자란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현이는 주방 전체를 향해 레이더를 켜고 있었고, 눈짓하나 손짓하나 허투루 낭비함 없이 주방 곳곳을 적시 적 때에 누빌 수 있을 만큼 노련함을 갖추고 있었다. 대단한 녀석. 미현이의 명령하에 오늘도 솥단지 옆은 최전방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엎어!”
잘 삶아진 닭을 식힌 후, 부글부글 끓는 양념에 부었다.
“져어! 살 부스러지지 않게!”
일사불란.
“고추! 빨간 고추로 마무리!”
“지금이야! 빼자”
안동찜닭의 핵심은 마른 고추. 매콤 알싸한 고추향의 찜닭은 제법 그 이름에 가까웠다. 마파두부만큼이나 미현이는 찜닭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남다른 찜닭을 완성해보고 싶어 했다. 급식실에서 누구는 그런 미현이의 시도를 비웃는다. 그러나 미현이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4개월 전보다 더. 아마 4년 전보다 훨씬 더. 미현이는 올해 급식실 5년 차. 배우로 따지면 중견 배우요 기업으로 따지면 팀장정도는 되겠지. 미현이는 내가 사직서를 냈을 때 붙잡지 않았다.
“혜성아! 난 붙잡지 않아. 다른데 좋은 데 있으면 나도 불러.”
솔직했다. 다른 이들은 ‘나와 같이 이 힘든 일을 하면서 같은 형편의 위안이 좀 되어보자.’라는 속내를 숨기고 “왜 그만둬? 이 일만 한 게 없어.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미현이는 정직했다. 속을 숨기지 않았다. 미현이의 말과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모르면 모른다 알면 안다 싫으면 싫다 표현이 정확한 아이였다. 그리고 일을 정말 끝내주게 잘하는 녀석이라 배울 것이 참으로 많았다. 작은 키에 콤플렉스도 있을 법하건만 깊은 솥단지 속에 긴 삽을 넣고 삽질하는 게 어려울 텐데도 소쿠리에 담긴 무거운 고기의 중량을 이기지 못해 솥으로 딸려 들어갈 수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와 담당 팀원까지 지배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미현이가 그동안 겪었을 많은 일들을 내가 감히 무어라 지레짐작할 수 있으랴. 그 아이가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존경스러웠다. 미현이랑 짝이었던 이틀 동안 나는 참 미현이가 좋았다. 앓는 소리 한 번 안 하는 미현이와 함께여서 지옥 같은 세척실도 괜찮았다.
“혜성아!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했어.”
“조금만 하면 된다. 힘내!”
1600개의 식판을 다 기계에 넣고, 얼마 남지 않은 바트를 넣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식판을 받고 소독기에 넣던 미현이가 밝은 얼굴로 힘내자고 소리쳤다. 든든한 동맹군이라고 해야 할까. 그 녀석은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던진 나를 뭐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부끄럽다.
“혜성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참 아쉽다.”
장화를 씻고 나서 휴게실로 들어가면서 나의 어깨를 툭 치며 했던 굵은 그 몇 마디가 묵직했다. 나와 짝이면 가르칠 것도 많고 하라고 해야 할 것들도 많아 귀찮을 법도 하건만 언제나 나랑 해서 편하다고 해준 동갑내기 친구가 참 고마웠다. 미현이의 안동찜닭도 마파두부도 누군가는 국물이 많네 소스가 묽네 어쩌네 하며 핀잔을 준다 하여도 나는 모두 멋진 도전이었고 정말 맛있었고 훌륭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현아! 난 네가 진짜 멋있다.’
끝나지 않는 급식실의 일도 이제 이틀 후면 드디어 끝이다. 이곳에서도 참 괜찮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다. 나를 늘 응원해 주고 따뜻하게 불러준 명자언니만큼이나 고마운 친구.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맺음으로 남을까. 매듭지음이 아쉬운 오늘. 그래도 나는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