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2024년 7월 19일 프로의 품격 마 파 두 부
추적추적. 장마. 이제 시작인데 롤러코스터 같은 변덕에 올해 여름 날씨가 어떨지 기대된다. 두려움일지도 모르는 기대.
엊저녁은 우리 집의 전통처럼 우격다짐하여 만들고 있는 가정예배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불타는 금요일 설레는 아이들이 주제가 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또 꼰대가 되었다. 라테는 왜 그리 찾는지 사실 요즘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자꾸 어른 행세를 하고 싶은가 보다. 아이들의 눈에는 벌써 지리멸렬함이 느껴지는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엄마 때는 불금이 뭐대? 토요일까지 학교 갔지. 토요일 4교시까지 해야 겨우 반나절 하고 일요일에 놀았어. 일요일도 뭐 놀았냐? 교회 가야지 그러다 보면 간신히 토요일 반나절 쉬는 건데 그 토요일이 얼마나 신이 나던지. 학교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TV 켜면 CSI 과학수사대 했거든. 그거 보면 토요일 같았지. 아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버스 타면 버스는 왜 그리 미어터지던지. 낑겨왔어. 손잡이에 매달려서. 집에 와서 짜파게티 끓여 먹으면서 TV 보면 그게 불금이지.”
속사포같이 거품 물고 쏟아내는 라테는 나만 맛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내 나이 40 중반 습기 가득한 학교 급식실에 있게 될 줄 어찌 알았겠냐마는. 급식실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금요일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아주 손꼽아 또 손꼽아 매일매일. 직장에서 상사에 고객에 또는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마음을 백번 천 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전혀 피곤하지 않은 듯 몸이 날아갈 것 같았는데 비가 꼭 씻어도 씻어도 미끄덩거리는 미역줄기의 뭐 그런 끈적거림으로 추적거리니 여기저기 불쾌하게 피어오르는 공기 냄새 때문에 급식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수구 뚜껑하고 채랑 가림막들 다 꽂아놔야 해. 아유! 그거 안 해 놓으면 쥐 기어 올라와.”
“예? 쥐요?”
“그려! 쥐가 막 올라와서 안돼. 냄새도 많이 올라오고.”
“안 그래도 냄새 요즘 너무 한 것 같던데.”
“이제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아. 세척 다 끝나면 락스 부어놔야 해.”
선미언니는 베테랑이니까. 언니의 말은 무조건 맞다. 괜히 7년이 아니다. 급식 밥만 7년. 언니는 급 식실 일이 끝나면 스피닝, 수영을 하러 체육관으로 향한다. 체력관리 차원으로 다니는 운동인 것 같지만 꽤 오랜 기간 다녔고 그 덕에 몸에 군살이 하나 없고 똥배도 없다. 부럽다. 166.9CM 라는 키는 170CM도 훌쩍 넘어보이는 듯한 소두에 긴 팔다리. 거기에 소문으로 듣자 하는 건물주라는 부러움까지. 언니는 성격도 아주 좋다. 급식실 일이 끝나면 일주일 내내 약속으로 바빴다. 언니에게 급식실 일은 취미일까 생계일까.
에어컨을 아무리 켜놓아도 환기를 잘 시킬 수가 없다. 먼지나 벌레라도 들어와 음식 조리 시에 바트나 솥단지로 들어갈까 싶어 창문이 있어도 열지 못하고, 아이들이 밥을 먹는 급식실도 시원케 한다고 에어컨을 바로 켜고 또 퇴근 시에는 1층 낮은 창문으로 누가 들어올까 싶어 바로 단속하다 보니 찬공기의 무거운 습기는 벽이며 바닥이며 하다못해 아이들의 밥상 곳곳에 무섭고 지독한 곰팡이 손님으로 둔갑하여 무심코 급히 찾아왔다. 그리하여 꿉꿉한 설명할 수 없는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차가웠다 뜨거웠다 하던 공기의 눅진함들이 켜켜이 쌓여 밥상 안쪽이며 급식실 타일 벽이며 숨을 수 있는 곳곳에 형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리 잡은 곰팡이 녀석들은 장마전선의 지지를 받아 더욱 기세 등등 하게 퍼져 나갔다. 12명의 조리실무사들이 뒤엉켜 사용하는 휴게실과 화장실 겸 샤워실은 아무리 청소를 한다 해도 쾌적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몇 시간 궁둥이 붙이는 공간이니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깨끗했다. 그곳마저도 락스의 힘이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우와! 금요일이다.”
“혜성아! 공부 좀 해왔어? 나는 이거 오늘 진짜 잘하고 싶어. 맛있게 할 거야.”
“두부는 어쩔 거야?”
“데칠 거야. 데쳐서 소스에 버무릴 거야.”
“네가 말만 해. 내가 다 해줄게.”
“알았어. 혜성아!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오늘의 메뉴는 마파두부. 미현이의 몇 주의 고민이 어떻게 실현될지 궁금했다. 몇 달 전 누군가가 만들었던 마파두부는 전분을 묻혀 오븐에 구운 두부가 소스를 만나면서 떡이 져서 마파두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맛만 좋으면 되는 건 아니다. 눈으로도 맛있어 보여야 호기심에 하나라도 더 받아간다. 그렇기에 지난 시뻘겋게 전분에 떡이진 마파두부는 비주얼 점수는 거의 낙제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심기일전해 보고자 유튜브를 보면서 완전 다른 마파두부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미현이는 이 시간을 벼르고 별렀다.
부모님과 봄에 갔던 어느 중국음식점에서 보들보들하고 매콤 짭짤한 마파두부를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딱 급식실에서 망친 듯한 전분에 떡진 시뻘건 마파두부가 나왔더랬다. 이런 마파두부를 먹으려고 한 게 아니데 낯선 메뉴에 별다른 성과 없이 실망만 하셔서 다시는 마파두부를 안 시켜 먹을 거라 장담한 부모님 때문에 마파두부는 더욱 나를 긴장시켰다. 앞선 두 번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번 마파두부엔 개혁이 필요했다. 전분 옷을 입고 떡이 져 버린 두부를 만들고 싶지 않은 미현이의 굳은 의지로 조리 방법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혜성아! 두부 데치자.”
“그래!”
소쿠리에 담은 두부를 물이 끓고 있는 솥에 넣었다가 뺐다. 여기서 익힌 두부를 한 번 씻었어야 했다. 두부는 소포제, 응고제, 유화제로 단단히 만들기 때문에 두부를 조리할 때 따뜻한 물로 잘 씻어주라는 어느 요리사의 충고가 그때 생각났다면 좋았을 텐데.... 뜨거워진 두부가 서로 붙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떡국 떡이나 조롱이떡, 떡볶이 떡이었다면 당연히 붙게 하지 않기 위해서 물을 한 번 뿌려 잘 씻어 놓았을 텐데...... 두부는 다루기 힘든 재료임에 분명하다. 가지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혜진언니! 언니 고기 넣어요.”
“네!”
“혜성아! 삽질해. 잘 볶아. 타지 않게”
“그래!”
우리는 미현 대장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부하들 같았다.
“뭐야! 하하하! 솥단지 옆에서 둘이 그러고 있으니까 웃기다. 솥단지 지키는 거야? 군인 같아.”
명자 언니가 지나가면서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러게! 오늘 미현이 말 잘 들어야지. 마파두부를 몇 달 동안 공부했는데..... 잘 도와줘야지.”
“잘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혜진언니와 나는 미현이 말을 토시하나 놓치지 않고 들었다. 간장을 넣으라면 넣고, 삽으로 저으라면 젓고, 볶으라면 볶고. 우스운 것 같아도 이렇게 미현이처럼 허투루 음식 하는 법이 없는 아이가 있는 것이 학교 급식실이 폐업하거나 하청을 준다거나 외국인 노동자가 넘보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여타 회사나 규모가 큰 공장의 급식은 업체 선정을 통해 하청을 주고 하청을 받은 업체는 싸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인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관리가 잘 되지 않기도 하고 재료를 좋은 걸 쓰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급식의 질은 당연히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내내 먹은 점심에 냉동만두와 탕수육이 빠지지 않는 것, 제육볶음에도 한돈 앞다리가 아닌 뒷다리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외국산을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것,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게시판에 불만을 토로하는 병원 직원들에게 원가를 핑계로 도저히 메뉴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하다고 맞서는 급식업체에게는 다 이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물론,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공기관인 학교 급식실에서는 피해자가 없다.
“오이지 지난 번 꺼 맛있던데 네이버에 한 번 찾아봐봐.”
“찾아봤지. 그거 비싸. 1킬로인가 2킬로그램인가. 2만 원 넘더라.”
“아! 학교가 봉이라니까. 학교에 들어오는 재료들은 왜 그렇게 비싸. 식자재 업체들도 따박따박 나라돈 들어와 돈 떼일 염려 없지. 아이들 생각한다고 좋은 것만 쓰지. 심지어 깎아 주지도 않아. 더 받으면 더 받았지.”
“난 포기. 오이지 무친 거 아직 남았지? 그거 점심에 먹고 말래.”
“그래도 그 만한 게 없더라. 아삭아삭하고. 시중에 파는 거 진짜 맛없던데.”
“그럼! 언니 사실래요? 근데 하나는 안 팔걸요?”
현주선생님은 오이지 사는 것을 포기했다. 나도 포기했다. 비싼 건 급식실에서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교 급식은 최고다. 대한민국 엄마가 신선하고 비싼 대한민국 국산 재료로 며칠 씩 고민하며 정성껏 만든 명품 중의 명품.
두부를 데치고 고추기름을 냈다. 기름을 부글부글 끓여서 고춧가루를 부은 채에 부어 걸러주니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채 밑으로 빠지는 새빨간 기름은 식욕을 돋우어 주었다. 고기와 다진 야채를 볶았다. 그리고 거기에 물을 붓고 한 소금 끓인 다음 두반장과 굴소스, 간장, 청주 등으로 간을 맞춘 다음 농도를 맞추기 위해 전분가루를 넣어 주었다.
“와우! 진짜 맛있는데?”
“두부를 넣으면 좀 싱거울 수 있어.”
“그래도 지금 진짜 맛있다.”
그 때라도 두부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렇게 엉겨 붙고 있었는지 몰랐다. 원래 밥에 비벼 먹는 게 마파두부인데 좀 엉겨서 모양이 헝클어지니 그게 어떠할까 싶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대로 나오지 않자 미현이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두부가 이게 뭐야. 다 붙었어. 어떡해.”
“내가 떼려고 해 봤는데 다 붙어서 안 떼지고 모양이 망가져.”
“소스 붓고, 살살 어떻게 해보자.”
“미현아! 괜찮아.”
“그래! 뭐 어차피 비벼 먹는 건데. 그래도 아깝다. 공부 많이 했는데.”
그런데 문제는 엉겨 붙은 두부만이 아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스의 농도였다. 배식이 3차로 갈수록 두부에서 물이 나와 점점 묽어져 바트에 담아 놓은 마파두부에서 국물이 넘쳐흘렀다는 소문을 세척실에서 듣게 되었다. 남다른 시도로 마파두부의 참맛을 재현했던 우리의 노력은 반정도의 성공으로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새롭게 도전한 조리법으로 맛은 확실히 좋아졌다. 물론, 비주얼을 상상했던 대로 재현해 내려면 더 많은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누군가는 이 기회를 힘입어 우리가 재해석하려 했던 그 마파두부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급식실은 단지, 우리 아이들 점심밥에 관심 많은 아줌마들의 품앗이로 운영되는 장소가 아니다. 누군가는 미슐랭 맛집 셰프에 버금가는 메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며 대량 조리라 어쩔 수 없음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품격 있는 맛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K-FOOD의 힘은 미셀 오바마 영부인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탐내며 벤치마킹하고 싶어 했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엿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미현이는 나의 기대에 부흥하였다. 그녀석의 프로근성은 정말 나를 자극한다. 그까이꺼 대충하면 되지 않냐하는 아마추어 틱한 실무사의 군중 심리를 부끄럽게 만든 고급진 프로의식. 150CM 작은 키를 훌쩍 뛰어 넘는 그 녀석의 실력에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