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막둥이는 참 별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8월이었다. 급식실에 취직하여 넉달 일을 하고 여름방학을 앞두고 퇴직했다. 다들 방학 때 나오는 소정의 보너스라도 받고 그만두라고 만류하였으나 바로 구직활동을 할 거라서 재직중으로 발목 잡히기 싫어 단칼에 4대보험 상실의 길을 걸었다. 꿀 맛 같은 휴식과 아이들 방학이 바로 시작되었다. 다들 아이들이 방학이라면 밥 해 먹이느라고 힘이 들다고 하지만 나는 밥 해 먹이는 일이 천직인듯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아이들과 방학 때 무얼 할까 고민하는 일도 즐거웠다. 여름이면 별 거 아니더라도 화채나 빙수를 만들어 먹고, 극장에도 한 번씩 가고 ,워터파크나 가까운 해변을 찾아 가서 한 나절 보내다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고, 서울 나들이도 갔었다. 겨울 방학은 더 바쁘다. 눈이 오면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빈박스를 펼쳐서 놀이터 미끄럼틀을 타면 롤러코스터 저리가라로 스릴있었다. 그뿐 아니라 연날리기도 하고 연말 전시나 공연도 보러가고 대형 서점에 꼭 들러 다음해 참고서랑 방학 때 읽고 싶은 책 한 두권도 샀다. 그렇게 방학이 행복할 줄 알았다.
워터파크에서 그 날따라 재미가 없었다. 분명, 작년에는 무진장 즐거웠는데 희한하게 의욕이 나질 않았다. 꾸역꾸역 두어시간을 놀았나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억지로 놀다보니 허기도 찾아 오질 않았다. 그랬으면 좀 더 놀것을 괜히 푸드코트를 갔다. 푸드코트는 에어컨을 틀어 놔서 꽤 추웠다. 젖은 체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니 한기가 느껴져 젖은 구명조끼라도 입고 있는게 나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막둥이는 시킨 라면을 받아서 테이블에 앉으려고 했는데 안으로 깊이 들여놓지 않은 라면이 놓인 쟁반이 그만 거추장스러운 구명조끼에 걸려 엎어진 것이다. 순간 비명이 들렸다. 펄펄 끓었던 라면이 막둥이의 허벅지로 다 쏟아진 것이다.
그 뒤로 한 달. 두 달. 막둥이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화상은 딸에게도 나에게도 실로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다. 입원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괴로운 시간동안 막둥이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짜증도 내지를 않았다. 그냥 덤덤히 받아들였다. 흉터도 쓰라림도 받아들였다. 화상전문병원을 갈 때마다 매일 대형 화상 반창고를 떼고 소독하고 붙이고를 반복했다. 반창고를 붙였다 떼었다 해서 화상 주변의 여린 살들도 성이 나있었다. 막둥이는 참았다.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엄마"
흉터 치료는 3주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요즘 여름방학은 참으로 짦았다. 3주밖에 되질 않았다. 아직 학교를 갈 때가 아니었다. 흉터에 감염위험도 있어서 아이들이 북적대는 학교에 가는 것은 모험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일주일은 더 집에 있는 게 현명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막둥이가 벼르고 별렀던 반장선거가 있었다.
이 엄마란 사람이 묻지마 청약으로 어쩌다 이사해서 어영부영 살게 된 이 작은 도시에 아이들은 씩씩하게 그리고 기특하게 잘 적응을 했다. 교실도 친구들도 낯설었지만 막둥이는 이사오자마자 반장선거에 출마했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아무도 막둥이의 진가를 알지 못했던 그 때.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났다. 막둥이는 2학기 반장 선거를 기다렸다.
병원 가기 전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등교를 하지 못하는 와중에 반장선거 참석이라니 선생님께서는 그저 아이가 등교라도 하고 싶은 것 뿐이라 생각하셨지 막둥이의 오랫동안 와신상담했던 결전의 날이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 하지 못하셨다. 당연했다.
"선생님, 반장선거가 몇시에 있죠? 아이가 꼭 참석하고 싶어하는데 늦지 않게 갈게요."
2교시가 끝나고 시작될 거라고 하셨다. 화상치료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악셀을 밟았다. 10시 39분. 2교시가 막 시작된 시각에 아이는 학교에 내려서 붕대를 감은 다리로 절룩거리면서 학교로 들어갔다.
"반장이 안되어도 괜찮아. 엄마가 짜장면 사줄게. 전화 해줘. 알았지?"
그리고 초조한 시간이 지났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마음까지 안 좋아질까봐 어찌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선거만하고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학교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려도 딸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차를 돌렸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반장됐어."
절룩거리는 발로 당차게 교실로 들어가는 뒷 모습.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 문이 열리는 순간 아이들이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고 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반장 선거 투표 직전이었고, 후보에 올랐던 아이들은 딸 아이의 등장으로 다잡은 승기를 놓친 듯 좌절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고 했다. 선거 공약 발표도 없이 반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바로 투표에 돌입했다. 딸은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반장이 되었다.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인지.
막둥이는 이번 겨울도 그냥 넘어가질 못했다.
감기 끝에 부비동염이 왔고, 항생제를 먹었다. 복용 5일차 되었을 때, 콜린성 두드러기가 심하게 전신을 뒤덮었다. 약을 바로 중단했다. 그러나 알레르기 반응은 중단되지 않았다. 벌써 3일째. 학교를 갈 수 없었다.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할 것 같아 시일내의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건 아이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온 몸을 뒤덮은 징그러운 두드러기는 아이의 일상을 위협했다. 하루 종일 간지러웠지만 떼쓰거나 짜증한 번 내지를 않았고, 막둥이는 먹지도 않고 자는 걸 택했다. 나는 출근을 했다. 정말 괴로웠다.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어미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밤에 기도해주려고 방에 들어가 퉁퉁 부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눈물이 나왔다. 저녁 밥상에서 막둥이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워터파크를 가자는 사람도 나였고, 그 병원을 데려간 사람도 나였다. 엄마로 노력했지만 다 그 모양인 결과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울지마. 괜찮아."
뭐가 괜찮은지 이 녀석은 또 나를 위로했다. 막둥이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이 엄마의 손에 든 무거운 짐을 먼저 들어주었고, 제 언니를 혼내고 있으면 그만하라고 막아섰고, 늘 작은 손으로 엄마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편지를 써주었다. 막둥이는 그렇게 또 힘든 시간을 덤덤하게 인내하며 위로하며 받아들이며 감내하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영화처럼 투표직전 등장하여 여타 반장 후보들을 무력화 시키고 아이들의 무한 신뢰로 공약도 없이 당선 된 우리 반장님. 반장님을 4학년 1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막둥이는 비록 완벽하게 두드러기에서 회복되지 않았지만 반장님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내일 학교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왜 반장님을 기다리는 지 알 것 같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막둥이는 진짜 반장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