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이라고는 이제 요식업계나 단순 노무직 정도뿐이다.
학교 급식 일을 어쩌다 넉달을 하게 된 이후, 남편의 극심한 반대로 요식업쪽은 기웃거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 친정에 갔는데 엄마까지 그 쪽 일은 몸 상한다며 아예 생각도 말라고 못을 박았다. 난 일이 힘은 들었지만 즐거웠고 보람도 있었다. 물론, 내 체력의 한계를 매일 경험해야 하는 아찔함이 있었고 처음 발령받은 곳이 억세게 식수가 많은 곳이어서 된통 혼쭐이 났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최전선에서 감내하며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하고 있을 언니들을 생각해서 부족한 체력과 강단없는 감정들에 휘둘린 내 탓뿐 이제 그만 얘기 해야겠다. 어쨌든 중소기업에 들어오게 된 것도 급식실 취직만큼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중소기업이라고 어디 이 아줌마가 일할 만한 마땅한 보직이 있겠냐마는 사무직도 단순 노무직도 아닌 그 어디 중간쯤의 적당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터에는 동갑내기 사장님이 있다. 참으로 어렵다. 차라리 나이가 나보다 많았으면 존대하는 것이 당연하니 군말없이 했겠고 어려운 것이 당연하니 어려우려니 했을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살았는데 누구는 사장으로 누구는 말단 직원으로 이 나이에 만난 불편한 진실과 조우할 때면 나는 군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월의값을 누가 따질 수 있을까. 나도 대충 산 인생이 아니고 매 순간마다 쥐어짜는 최선으로 살았는 것을.... 아무튼 을은 을이니 자존심이고 뭐고가 없다. 90도로 인사를 아침마다 하고 있다.
두번째, 동갑내기 14년차 과장. 과장님도 하필이면 동갑내기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을 하면서 계속 부딪쳐야 하는 사람이고 유통하는 물건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수천가지는 되는 것 같은 작은 부품들에 관해 물어보려면 과장님을 안 거칠 수가 없다.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어디 그건 그 사람 입장이고, 직원들 보는 눈에 듣는 귀가 몇 개인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담배 피는 무서운 언니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감히 입에서 짧은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세번째, 고양이. 난 전생에 쥐였는지 고양이가 그렇게 무섭다. 그 눈도 싫고, 울음 소리도 싫고, 그냥 다 싫다. 그 고양이란 녀석은 도통 친해지질 않는다. 동갑내기 사장님과 과장님 만큼이나 불편해 죽겠다. 그런데 그 회사에 고양이가 서너마리 있다. 항상 상주하는 아니, 동갑 과장님이 돌보는 녀석들이다. 길 고양이인데 과장님이 어르고 달래서 키우다시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영양 캔으로 밥 먹는 고양이 팔자가 몇이나 될까. 그 고양이는 충성스러운 개 처럼 주인을 잘 따른다. 배를 까 뒤집고 벌러덩 벌러덩 하고 눕는데 지가 개인지 고양이인지 모르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녀석이 하루 종일 회사 앞을 지킨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회사 정문에 들어 앉아 있다. 어디 가나 성실이라고는 달고 사는 성격탓에 일찍 출근하다보니 회사에 도착할 때마다 그 불편한 사장님 차와 고양이를 마주하게 된다. 대략 난감과 절망사이에서 차에 벌러덩 누워 5분 정도 기다리면 동갑 과장님 차가 들어 온다. 그 고양이는 나 따위가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종자가 아니다. 과장님이 오면 오래 앉아 기다렸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고는 주인을 맞으러 나온다. 무 섭 다.
마지막 하나 더. 담배. 그냥 절여졌다. 담배냄새와 연기. 사장님이나 과장님이나 이리 스쳐도 저리 스쳐도 니코틴이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지는 볼펜, 매직, 문고리 모두 담배냄새여서 아버지도 남편도 비 흡연자 속에서 담배 연기가 뭔지 모르고 살던 사십년 인생에 생명을 위협하는 최대 위기였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또 사표밖에 없는가 하며 일주일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적응의 동물이라고 담배피는 사람들이 짐승같이 여겨졌던 편견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장님과 과장님이니까.... 이것도 내가 을이니 뭐 사직서를 또 던지고 이력서를 또 넣는 것이 이제 피로하니 참아볼까 하다보니 참아진다.
두 달. 내일이면 두 번째 월급날이다. 200만원에 사무보조직. 마흔 넷에 취직이라 딱 거기까지 내가 더 바라는 건 없다. 동료라는 것도 애사심이란 것도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불편한 것들이 더 불편해지고 있다. 고양이 엄마인 과장님은 계란을 삶아오거나 오다가 꼬마김밥을 아침 먹으려고 사왔다며 자꾸 준다. 사장님은 아이들 얘기며 고향 얘기며 자꾸 사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다 못해 그 고양이는 내가 일하고 있는 자재 창고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말이다. 그래서 .... 더 불편하지만....
출근길이 조금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