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닥

by 문혜성 Nov 21. 2024

얼마 전 수능을 본다고 전국이 들썩거리는 날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그 들썩거림에 대하여 난 그저 '어느 19살 누구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겠거니'하며 지나갔을 하루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따라 아침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든 멘트가 귀에 거슬렸다. 


'수능이 뭐라고 이 나라가 다 난리인가. 그 시험 하나 때문에 회사들도 출근 시간을 다 늦추고, 전국이 그 수능 하나만 바라보고 라디오도 난리, 뉴스도 난리....' 


수능 전 날 퇴근길,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오늘이 제법 날카로운 생각으로 시작된 하루가 되었다. 음악캠프의 오래 된 배순탁 작가는 오프닝에 조선시대 과도한 시험과 부패에 대한 '박제가의 비평'을 현실에 투영하여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과한 시험 준비에 학문에 대한 정진이 없어진 그 때와 지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수능 시험만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부모들. 아마도 12년이란 시간의 목표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요즘은 하늘 볼 일이 없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제조 또는 조립하거나 그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파는 작은 회사에 다닌 지 한 달 남짓. 천 가지가 넘는 작은 부품과 하루 종일 씨름하다보면 하루 8시간이 금세 갔다. L자인지 H자인지 구멍이 6MM 인지 4MM 인지 볼트가 두개인지 하나인지 그런 비슷비슷하게 생긴 작은 부품들을 지퍼백에 넣고 또 넣고 박스에 넣고 또 넣고 하다 보면 눈이 빠질 정도로 피로했다. 더군다나 시시 때때로 창고에 어떤 재고가 있는지 물어 오는 카톡에 답해야 했고, 난생처음 뭔가 희한하게 생긴 제품을 조립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내 실수로 거래처에 잘못 전달 된 부품들로 인해 동갑내기 사장님은 여러차례 발걸음을 다시 해야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한 번 뭐라 한 적이 없었지만 그것이 더 눈치가 보였다. 참! 동갑내기 사장님은 이 분야에서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동갑내기라 사장님은 나를 편하게 대하고 싶었을 것 같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했지만 나는 도통 편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월급 주는 사람은 늘 나를 평가하는데 내가 그 사람이 편할리가 없지 않은가.


여하튼 그렇게 나의 정체성따위와는 수천 키로나 떨어진 일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씁쓸한 현실도 이제는 무뎌졌다. 정신없이 일어나 새벽에 성경말씀을 읽고, 온라인으로 신학 수업을 듣고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 밥을 먹는 것을 보고나서야 출근길에 나섰다. 그리고 8시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질 것 같은 시간으로 다시 집으로 부랴부랴 출근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저녁 밥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학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집안 일을 하다보면 어느 덧 9시. 잠깐 나가서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들어오면 10시였다. 한 달을 이렇게 살다보니 눈이란 것은 그저 떠 있기만하고 뇌는 아무런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기계처럼 반복된 똑같은 일상에 절여진 곤한 내 영혼.


엊저녁 밥을 먹고 막둥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지금 방금 들었던 노래. 그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있어. 바닥이라서 좋은 이유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서 올라갈 일만 남아서래."


그러자 내 입에서 속 생각이 튀어 나와 버렸다.

"내가 지금 바닥이야.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응?"

"아니야. 그래. 좋은 노래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어떻게 연세대학교를 갔어?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엄청 공부 잘해야 한대."

"엄마는 서울 신촌에 있는 연세대학교를 간 게 아니야. 같은 연세대학교인데 원주에 있는 분교에 들어갔어. 공부를 못했나봐."


당황한 듯 혼란스러운 듯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막둥이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나는 본래 공부를 그것 밖에 못했었다. 나는 나를 항상 과대평가하고 살았었다. 지금 내가 하루를 서 있는 그 곳이 나의 전부를 말해주진 않아도 나는 그곳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특별할 것이 없었던 그저 평범한 누군가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12년의 학창 시절 나는 목표를 잘못 조준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잘 들여다 보는 사람은 낮은 곳에서 출발할 줄 알며 그들은 시간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겸손함이 있었다. 그리고 단순이가 무식하다고 그 단순함과 무식함은 우직함을 만들어냈고 다른 곳을 곁눈질할 겨를이 없어 더욱 한 길을 고집하다보니 그 고집은 장인을 만들었다. 지금 내 나이의 사장님도 과장님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스펙을 기준삼자면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내공은 어설픈 이들의 입담으로 따질 만한 것이 못 될 정도로 깊다. 


아이들의 방향이 올바른 곳을 향하길 응원한다. 내가 도달하지 못했던 저 높은 곳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을 잘 할 수 있도록 시선의 방향을 잘 맞출 수 있도록 .....


 "얘들아! 시험은 잘 못 봐도 돼. 그 좋은 학창시절에 뭐라도 깊이 있게 해보렴. 시간이 정말 아깝지 않니? 그 시험만 보고 달려가기엔......"      


목요일 연재
이전 07화 복 많이 받으세요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