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내 생애 최고로 좋은 집에서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한다.
해가 떠오를 때가 되면 집 창문 사방에서 멀리 산등성이에서부터 일렁이는 일출을 볼 수 있고, 드넓은 거실 창으로 물감을 쏟은 듯 조물주의 손으로 그린 그림같은 보라색도 핑크색도 아닌 현란한 빛으로 물드는 구름 평원이 넘실대는 일몰도 볼 수 있다. 거실에는 네명이 누워도 좁지 않은 소파가 있고, 안방에서 아이들방까지 열걸음도 넘는 긴 복도가 이어진다. 내 평생 처음,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나의 첫번째 소원은 아이들의 방이 있는 집이었다. 나는 삼남매 중 둘째이고, 어릴 때 스물 일곱평 방 세칸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아버지가 친할머니를 모시고 오시면서 우리 삼남매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무살이 넘을 때까지 개인의 방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엄마 아빠의 안방, 할머니방, 그리고 우리 방. 우리 방은 장롱에 책상까지 독서실같은 느낌이었다. 빼곡히 일자로 붙여서 놓은 책생과 의자 그리고 장롱까지. 그게 우리 방이었다. 잠은 늘 거실에서 잤다. 그 뒤로 방은 고사하고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월세 집을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여하튼 늘 오픈 형 공간에 있어 감추고 싶은게 많아도 감출 수 없던 나의 청소년 시절과 같은 삶을 아이들에게 주기 싫어서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청약을 넣었다. 사는 거야 어디가든 다 똑같지 싶기도 했고, 수도권이면 출퇴근 할 수 있지 싶었다. 그런데 설마 여기가 되겠나 싶었다. 엉뚱한 동네. 비록 변방이고 생뚱맞기는 해도 전혀 낯선 동네는 아니다. 언니가 아이 넷을 키우며 17년을 산 동네다. 서로 아이 키우는 게 바빠 가끔 일년에 두어번 와 본 동네라 이사를 오고 보니 길을 익히는데 그 경험이 꽤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은 난생 처음 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두번째 소원은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집에 화분을 키우는 취미가 있었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아버지가 키우는 화분들이 베란다에 가득하다. 아버지는 식물을 키우는 데는 도가 트신 분이다. 보통,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포인세티아나 어버이날에 받는 카네이션등은 관상용이지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물어 그 시즌이 지나면 자연스레 폐기처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조차에게도 정성을 다하셔서 생명의 연속성을 증명하신다. 친정에 가면 몇 년 된 포인세티아가 장대처럼 자라고 있다. 그러다보니 집에 꽤 장신인 화분들이 많다. 십여년 된 파키라는 천장에 키가 닿는다. 아버지는 그 화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신다.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를 정말 갖고 싶었지만 우리 집 트리는 늘 행운목, 뱅갈 고무나무, 군자란이었다. 그래서 올해 소원성취를 위해 거금을 썼다. 2m가 넘는 트리를 샀다. 6m짜리 지네 전구도 샀다.
그러나 이 큰 집은 하루 종일 비어있다.
이 큰 집과 크리스마스 트리는 공짜가 아니었다. 대출금 날짜는 어김없이 돌아왔고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 학원비나 벌자고 월세집에서 살던 생활은 끝났다. 그 때는 돈이 남아 일 이십만원씩이라도 여유가 생겨 저축을 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내가 경제활동을 해서 적어도 200만원 이상을 벌어야 마이너스를 면할 수 있다. 급식일은 세시 반에 끝나서 아이들 학교와 학원 픽업 시간, 그리고 저녁식사 준비시간까지 지장받지 아니하고 마무리 할 수 있었지만 여섯시가 다 되서 집에 도착하는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하루가 마무리 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어떤 날은 저녁 식사를 여덟시가 다 되어서 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씻고 자는 시간은 11시, 또는 12시다.
죙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트리는 빛나고 있고, 일출과 일몰도 큰 창을 통해 장관을 이루고 있지면 주중에는 아무도 그것을 즐길 사람도 시간도 없다. 지금 시각은 월요일 오후 10시 55분. 홀로 따스하게 빛나는 우아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있자니 서러워졌다.
'내 소원은 이루어 진 게 맞을까?'
오늘도 나를 우습게 여기는 고양이와 맞서질 못해 대리님들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렸고, 히터를 틀어도 열기가 훅 날아가 버리는 사무실에서 핫팩을 실내화에 붙이고 일하다 핫팩이 실내화에 눌어 붙어 떼다가 터지고 말았다. 내가 포장한 물류가 잘못되었다고 거래처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았고 나는 잘리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이다 보니 퇴근시간. 집에 오자마자 내일이 기말고사라고 신경이 곤두서있는 큰 딸을 위해 소고기를 볶다가 막둥이를 데리러 학원 앞에 가서 30분을 기다렸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게고, 막둥이가 내년에 전교회장 선거를 나간다면서 선거공약을 들어보라며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다보니, 수요일 밤 10시 55분. 크리스마스 트리.
내 소원은 이루어 진 듯 하다. 고되고 힘든 하루였고 삶이었지만 나이듦에 대한 합리적인 타협과 욕심을 내려놓음으로 얻은 작은 직장, 그리고 쉼의 달콤함, 따뜻한 집. 또 바랄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