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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by MAMA

박대리님은 2주 뒤 결혼식을 올린다. 대리님이 맡은 거래처의 물류를 담당하고 있다보니 이래저래 마주치며 소통할 기회가 상당히 많을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일에 워낙 서툴다보니 대화라고 할 것 까지도 없었고 업무 지시외에는 소통이라 보기에 초라한 대화였다. 두 달이 지났고, 차츰 일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회사 내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물류 창고 3층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3층은 섬이다. 업무시간에 일부러 3층까지 올라오는 이는 박대리님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가끔 동갑내기 사장님이 와서 알 수 없는 솔벨브를 조립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5일 근무 시간에 겨우 하루 몇 시간 정도뿐 3층은 독도나 다름없다. 뚝 떨어져 오고가는 이가 없는 외딴 섬에 박대리님은 유일한 방문객이다.


"안녕하세용!"


3층 물류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대리님은 경쾌하게 인사를 한다. 서른 두살의 대리님은 천상 영업부다. 거래처와 통화하는 대화 몇 마디만 들어봐도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런 대리님이 나한테도 거래처 직원에게 대하듯 서글서글 잘 대해주신다. 고양이 엄마인 박과장님은 사실, 박대리님을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싫어하기도 하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 섬을 방문해주는 유일한 말 벗 상대이다보니 말이 번지르하건 청산유수건 거미줄 치기 일보직전인 형편에 말 몇 마디도 그저 고맙기만하다.


오늘은 오전에 발주선 한 두 건을 처리하고 오후에는 사장님이 시킨 에어실린더의 나사를 육각렌치로 풀어 다른데로 조여 끼우는 작업을 했다. 우리 회사의 어떤 언니는 사장님이 이런 일들을 시킬 때, 이런 일까지 하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고 푸념을 했다지만 나는 원래 공대를 가려던 이과인으로서 그 정도 일은 기꺼이 재미로 할 수 있어 거부감이 없었다. 그래도 단순한 일을 꽤 오랜 시간 하려면 노래 정도가 조금 뒷받침 해줘야 흥이 난다. 때마침 박대리님도 나와 비슷한 단순 노동을 하러 올라 오셨다.


"대리님! 노래 좀 틀고 할까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저는 옛날 음악 좋아합니다. 발라드요. 8,90년대 노래."


응답하라 OST. 딱이다.


"대리님! 결혼식 준비는 다 되셨나요? 신혼 여행은 발리로 가신다고 했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어요?"


대리님이 웬만해서는 말을 먼저 거는 법이 없기는 해서 적막하고 딱딱한 분위기에 몇 마디 대화를 시작해보려고 내가 먼저 운을 떼었다.


"결혼식 준비랄 것도 없어요. 아예 살림을 합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대신 건조기랑 세탁기를 샀는데 냉장고보다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발리가는 경비는 한 8-900 정도 들었어요. 저희가 갈 때 비즈니스 석으로 비행기 좌석을 예약했더니 가격이 비싸더라고요. 이때가 아니면 그 비싼 자리를 타볼 일이 있겠나 싶어서요."


대화는 발리로 가다가 일본으로 갔고, 진도가 고향인 내 친구가 올해 여름에 갔다던 울릉도로 갔다가 전에 살던 동네 부천의 아이들 학교를 찍고는 요즘 아이들 요즘 선생님 요즘 학교까지 갔다.


"그래도 우리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얘들도 많고 북적대고 선생님도 완전 무서웠는데.....그때가 좋았죠."


"대리님이랑 나랑 나이차이가 열살도 넘는데 별로 다른 시대를 산 것 같지 않네요."

"그럼요. 저 군대 제대할 때 즈음 스마트폰이 나왔어요. 그 뒤로 시대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입사 초기에 날 경계하고 못 미더워했던 의심은 사라진듯 하다. 박대리님은 의욕이 없는 와이프 이야기며 제대 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던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했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병원 마당발이자 검진팀의 터줏대감 새롬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생각해 보세요. 하루 종일 누굴 제일 많이 보는지. 남편보다도 회사 동료를 오래 본다구요. 회사 동료가 남편보다 더 친하다니까요."


대리님은 히터를 틀어 놓으나 마나한 3층 창고를 나서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주임님! 여기 많이 건조하네요. 회사에 얘기해서 가습기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3층이 원래 많이 덥고 많이 춥고 극한이잖아요. "


히터를 틀으나 마나한 찬 공기, 차디찬 물 밖에 나오지 않는 화장실, 누구도 오고가지 않는 외딴 곳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일을 하러 온 곳이기에 일을 했다. 피고용인으로 고용인과 계약서로 약속을 했고, 근로의 성실성으로 신뢰를 쌓아야 했다. 계약서에는 노동의 시간을 금액으로 환산한 숫자만이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숫자가 증명할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숫자만큼의 일을 하려 했다면 진작에 이 일은 내가 측정한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미달의 일이 었다. 그러나 언제나 숫자를 넘어서는 내 지나친 성실은 신뢰가 되어 돌아왔다. 다음주면 세번째 월급. 진짜 극한 직업인 급식실에서도 딱 석달이 걸렸다. 외딴 섬같아 수습이 되질 않던 먼지 가득한 창고는 탈바꿈했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누구나 와도 쾌적한 공간이 되었다. 동료들은 나를 믿고 많은 일들을 당연한 것처럼 맡기기 시작했다. 일이 늘어났고,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났으며, 천개가 넘는 품목들의 위치를 외웠다. 내가 나를 증명할 길은 일의 결과만 보는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반기들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동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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