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훌쩍 넘어버린 키의 아이가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잠을 청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열이 조금 떨어져 잠이 들었다
쌔근쌔근 자는 모습에서 두살 적 얼굴이 보였다.
만져보았더니 찌푸린다.
독감에 걸려 엄마를 의지하고 붙드는 아이에게서 삶에 대한 본능이 느껴졌다.
열이 치솟아 온 몸이 불덩이 같았다
아이는 젖은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았다. 살려고 얼음팩을 머리며 목이며 갖다 대었다.
원래 잘 안아픈 아이다. 웬만해서 병치레가 없는데 일년에 한 두번 아플 때 호되게 아퍼 나를 긴장시킬 때가 있다. 긴장감이 높아 민감한 성격임에도 입맛은 그렇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뭐든지 해주면 잘 먹었다. 막둥이 녀석은 세살 터울인 언니를 따라 군것질을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언니만큼 먹성이 좋지 않다. 큰 아이의 입맛은 어른 입맛이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생마늘을 쌈장이 찍어 먹는 정도였다. 그러니 밥상을 차릴 때면 늘 큰 아이를 염두해두고 준비하는 터라 별로 거리낄 것이 없었고 잘 먹는 걸 생각하면 신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큰 아이가 입맛 없어 하는 탓에 요며칠 저녁은 대충 준비했다.
큰 아이의 고열은 2025년 새해 첫날 시작되었다. 목이 아파 끙끙대더니 밥을 잘 먹지를 못했다. 어수선한 때에 조용히 새해맞이를 하고 있는 모두의 분위기를 따라 우리 집도 집에서 만두나 해먹을 참으로 전날 돼지고기 간 것과 부추와 만두피를 사놓았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소고기 한덩이를 넣어 파뿌리랑 무와 함께 푹 끓여 만둣국 육수를 만들었다. 고기는 밑간을 해서 부추만 넣어 속을 만들어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요리를 할 때면 꼭 와서 뭐라도 한 번 해 보려고 어슬렁 댔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 장난을 치는 것인지 호기심이 많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부엌을 어지럽히기가 일쑤였는데 단단히 아픈 모양인지 안방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둣국도 어렵사리 몇 수저 입에 밀어 넣었고, 심지어 만두도 만두소가 남아 계란물을 입혀 부친 동그랑땡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진짜 아픈 거였다.
새해 첫 날이 지나고 목요일. 학교를 가지 못했다. 출근을 한 터라 아이의 상태를 잘 몰랐기에 질병으로 인한 결석 증빙서류를 떼기 위해 병원 진료를 받아야만 해서 병원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39도여서 제 몸도 잘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짓궂게 교정기를 보이면서 장난치는 아이의 얼굴은 사라졌다. 눈빛에 힘이 없었다. 독감 진단을 받고 집에 도착한 후부터 아이는 거의 기절을 했다. 그리고 밤을 새서 아팠다.
몇 차례 물 수건을 빨아 이마에 얹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얼음팩이 몇 개가가 다 녹을 정도로 몸이 뜨거웠다. 힘들어 하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나보다 커버린 아이라 내 품이 불편하게 느껴져도 엄마 품이 좋다고 안겨 있다. 내가 다리도 짧고 팔도 짧으니 내가 안고 있는게 아니라 나를 두른 긴 아이의 팔로 나를 안아주고 있는거나 다름 없었다. 어른들은 크려고 아픈다고 말하곤 한다. 발도 키도 나를 훌쩍 넘어버려 입학한다고 맞춘 교복도 체육복도 작아져버렸는데 더 크려나보다.
나이가 들었는지 잠도 없어지는 것 같더니 아이가 아플 때는 눈커풀이 천근만근이다. 열을 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때 5시 반 알람이 울렸다. 아이의 열은 조금 떨어졌다.
출근을 했다. 정신없이 오전 근무가 끝나고 밥을 먹으니 피곤이 몰려와 잠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큰 아이는 전화를 해서 보고싶다고 말했다.
어른은 어른만치 자란 아이를 보고는 어른다워지길 바란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부모의 바람은 육아의 귀찮음으로 인해 벗어나고픈 욕심이 아닐까. 아이는 아이다. 더 안아주고 더 보살핌을 바라는 아이에게 사춘기라 이렇다 저렇다한 편견으로 잘못된 자아상을 주고 있는지나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