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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

by MAMA

차가 아프다.

우리 집에는 두대의 쉐보레 자동차가 있다.

한 대는 하얀색 8만키로를 향하고 있는 뉴스파크, 다른 한 대는 고령의 15만키로 은회색 올란도.

두 대 모두 빚이 없는 차다. 모두 시댁에서 주신 차량들이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뚜벅이로 살다가 아버님께서 아들 고생한다고 올란도를 타라고 내어 주셨고, 제작년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어느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시댁에 차를 두어도 운전할 사람이 없어 관리가 되질 않다보니 어머님께서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시댁에서 타던 두 대의 차량을 우리가 타게 되었고 빚이 없다보니 관리만 잘 해서 타면 되기에 때 되면 엔진오일 잘 갈아주고 바퀴 잘 바꿔 주면서 탔다. 그렇게 별 문제 없이 큰 돈 안들이고 10년이 흘렀는데 올란도의 주행거리가 15만키로가 넘자 제법 수리비용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부동액이 터져서 50만원, 얼마 전 바퀴 쪽 쇼바 교체 포함 하체 수리비용으로 120만원, 바퀴 교체 50만원. 그러고 나니 또 덜덜 거리는 소리가 엔진에서 나는데 날씨가 추워진 탓에 더욱 심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우리가 바라는 바는 집 대출로 인해 지금은 경제적 부담이 심해서 또 다른 할부를 만들 수 없어서 한 3년만 올란도가 잘 버텨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3년 후라고 해서 그 때 경제적 부담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뭔가 미뤄둘 수 있으면 연기하고 싶은 그 마지막 날을 3년후 즘이면 조금 괜찮아질까 싶은 막연함으로 소망하면 조금 위안이 될때가 있다.

엔진의 소리로 인해 남편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두 차례 정비소에 들렀지만 이 녀석은 정비소에 갈 때마다 멀쩡해서 환장할 노릇이다. 정비사는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나질 않으니 고장나면 오라고 남편을 돌려 보냈다고 했다. 이 녀석이 진료실은 관심없고 기어코 응급실로 가려는 모양이다.


엄마가 아프다.

엄마의 연세는 올해로 일흔 넷. 125살까지 늘 살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올해 초, 담낭의 담석으로 인해 담낭염으로 고생하시다가 담낭제거 수술을 받으셨다. 의료파업으로 병원방문과 응급수술이 어렵다는 뉴스가 여러차례 전해질 때라 선택의 여지 없이 동네에 있는 2차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께서 수술을 받으시기 몇 달 전, 같은 병증으로 병원에 가셨던 엄마랑 친분이 두터운 교회 권사님께서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출혈이 심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던터라 병원선택에 고민이 무척 되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응급실로 실려가셨던 엄마의 상태는 위중했고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의 긴급함으로 인해 퇴원을 시켜주지 않았다. 하나님께 맡기는 수 밖에는 달리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주께 모든 걸 맡기고 수술을 했다. 3년전 즈음에는 갑자기 뇌졸증이 왔었고, 한 쪽 입과 한쪽 얼굴의 마비가 스치듯 지나갔지만 여전히 손저림 증상이 남은체 아스피린을 복용하시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고혈압으로 약을 드신 지 십수년이지만 올해는 당뇨초기라 진단 받으셔서 당을 관리하셔야 하고, 척추 측만증과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과 허리는 늘 아프고, 기침과 감기를 달고 사셔서 목 폴라티셔츠와 양말을 주무실 때도 벗지 않으신다. 이 쯤 되고 보니 관리라는 말은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엄마에게 하루 하루는 생사의 고비를 생활의 일상따위로 인을 박은 체 살아가다보니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또 하루를 살게 하신 감사함의 은혜다.


자식이라고 셋이나 있지만 노모의 앓는 소리를 너그럽게 들어줄 만한 효자 효녀가 없음이 쓰디쓰고 나 또한 그 불효가 반복되어 이제 그만 나 자신을 탓하고 싶고 어떨 때는 자책에서 도망치고 싶은 1인이다. 일에 치여 경제적 부담에 치여 마음의 여유 없이 몇 년을 살다보니 정서란 것이 메말라 변명이지만 부모도 돈 있는 자식을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고 싶은가보다. 언니는 아이가 넷이나 있어 엄마의 요청이나 부름에서 늘 제외되었고, 남동생은 장가가고 나니 며느리 눈치 보여 속에 있는 말도 다 못하신다. 그러다보니 만만한 내가 엄마의 푸념이며 아빠에 대한 불만이며 잔소리의 대상이다. 언니는 사업가 남편을 잘 두어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얼마전 온 가족이 포루투갈로 여행을 다녀올 정도의 재력이 있고, 남동생은 대기업에 다녀 당장 그만둔다 하여도 퇴직금으로 노후 정도는 거뜬하겠지만 엄마는 두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온갖 어려운 이야기를 다 내게 한다. 내 지갑은 엄마의 모든 형편을 도와주기엔 너무 얇은데 말이다. 예전엔 나의 초라함과 무능력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원망하고 싶었던 현실에 대해 이제는 그러려니 해지는 불혹을 넘고보니 부모가 나를 의지함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 복인가 싶다. 아무튼 엄마는 이제 가까운 내과를 갈 정도가 아니다. 얼마전부터 나타난 증세는 심근경색의 초기 증상과 비슷하다. 가슴의 통증과 함께 식은땀이 비오듯 난다고 하셨다. 어느 날, 불쑥 또 내게 말씀하시기에 큰 병원 예약을 해드렸는데 체해서 토하고 나니 괜찮아 진 것 같다고 취소하셨다. 이런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엄마도 심각성을 잘 모르시는 건지 응급실을 기어코 가실 모양인지. 나는 엄마에게 정말 숨을 못 쉴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언젠가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면할 때가 오겠지. 겁이 나지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님에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고 위안삼는 지금 준비를 해보려한다. 마음의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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