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꾸려 떠날 준비 하였네
그대여 나를 붙들지 마시게
바람 불고 해는 저물어 가니
나를 붙들지 마시게
이미 행장 꾸려 편한 신 내어놓고
길 떠날 준비되었다네
그대는 무슨 미련 있어 나를 붙드나
아직도 나에게 부여한 몫이 남았나
무슨 미련이 있어 나를 보내지 않는가
아직도 인생 빚이 남았나
바람같이 한바탕 휘감으며 흐드러지게 놀았으니
잘 가라고 격려는 못해주고 자꾸 치맛자락 붙드나
그럼 그대와 함께 해온 정을 생각하여
올 겨울 백설 한껏 내려
청송가지 끝에서 출렁이는 모습을 보겠네
그도 모자란다면,
한 설에 곱게 핀 홍매화, 백매화 피고 지는 것 보며
매화꽃잎 떨어져 바람결에 흩날려
눈인 듯 꽃인 듯 봄바람에 아련한 모습도 보겠네
나는 이미 마지막 타는 희나리 같고
나의 숨은 나날이 사위어 가지만
마음은 아직도 처음 그때의 아련한 소녀라네
그래, 그대여
정녕 나를 보내기 싫다 하니
문 닫힌 오래된 정원 문 열고
여름정원 아름답게 꽃피는 것 보고 갈 테니
그때까지만 같이 있게나
또 나를 일없이 붙들지 말게나
행여, 이승에 미련 남을지도 모르니
24. 9.20 밤에 문득 생각이 나 쓰보았다.
죽림헌
대문 그림 : 맹호연이 눈 오는 날 첫 매화 찾아가는 길, 중국 고서화
당대 맹호연의 글을 해석하여 올리며 조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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