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준비하다
소슬바람 불더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 간다.
정원은 여름의 화려함을 내려놓고
단풍으로 물든다.
마른 잎새 떨어져
밤 되면 창밖에서 바람에 사운 되고
어느새 여름꽃 대신하여
가을 국화 봉오리를 맺었다
마지막 버티는 잎새에 찬 이슬만 영롱하다.
계절이라는 것이 뻔뻔하여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감나무는 여름에게 푸르름 모두 주고
잎대신 빨간 열매를 내어 놓았다.
고마움에 떨어진 나뭇잎 주워 담아
정원의 부산스런 마른 잎들과 함께
불 지펴 하늘로 보내준다.
추수 끝낸 짚으로 화단을 덮어주어
올 겨울 북풍한설에 잘 견뎌 내어
내년 봄 꽃피는 춘삼월에
아름답게 피어나길 기대한다.
겨울 삭풍(朔風)이 나뭇가지 흔들기 전에
잘 익은 감 몇 개는 새 먹이로 남겨두고
반은 곶감 만들어 처마 밑에 걸어 둔다
남은 반은 깨끗이 꼭지 따 정성 들여 얼려 두고
차가운 눈 올 때 얼린 홍시 시리게 먹자
정원 한편 절개 있게 피어 있는 국화
소국(小菊)은 만개 전 미리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대쳐 채반에 널고
바람 잘 들고 해바른 곳에 말려둔다
대국(大菊)은 꽃잎 지도록 두고 보며
꽃구경으로 운치를 더 해보자
여름 내 걸었던 발은 먼지 털어 말아 두고
내년여름 다시 내어 걸자
올 겨울은 이만치 준비하자
차가운 바람 불 때
따뜻하고 맑은 차 우려내어 말린 국화 한 잎 띄워
꽃잎 피어나는 모습 보며 국화향을 맡는다
곶감호두말이를 차와 함께 맛있게 먹자
생각만으로도 입안이 즐겁다
올 겨울 좋아하는 당시와 책 몇 권 읽으며 한갓 지게 지내자
하얀 눈 소복소복 소나무 가지에 이불 덮을 때
행여 지나던 학이 내려앉아 청송백학루가 되려나
흐뭇한 생각 하며
화로에 불 피워 찻주전자 올려 두고
맑은 차 우려낸다.
이제 여름정원을 지나 가을정원 정리하였으니
대문 걸고 창문 닫자
가을 정원은 조용히 문을 닫는다.
2024.10. 9, 한로를 지나서 쓰보았다.
죽림헌
*삽화출처 제가 차 끓일 때 사용하는 화로와 무쇠주전자, 다기로 글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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