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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n 12. 2024

#11, 검사의 나날들

 산사람은 산다, 어머니의 사랑

검사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이 가늘고 서늘하게 내 눈앞에서 기다렸다.

병원비청구는 하루도 연기되지 않고 1주일마다 2주일마다, 검사 때마다 청구되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흡입하듯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나는 먼지도 아니건만 그 흡입하는 기세가 사나웠다.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는 흔적 없이

폐허만 남는다더니 우리의 삶이 그랬다,

폐허가 된 것 같았다. 친정어머니가 주신 돈도 바닥이 보여간다.


아이는 병원비와 상관없이 검사는 계속되었고 실험적인 약도 계속 투약되었다.

친정어머니 말씀이 그 병은 돈 잡아먹는 귀신인가 보다, 고 하였다.

정말 그랬다. 돈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돈 빨아들이는 귀신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생활비 걱정을 하면, 친정어머니는 내게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산사람은 어째도 산다. 아이나 살려라'

살려야 하지 않을까, 불임수술까지 당차고 용감하게 하였는데,


맞았다. 산사람은 산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연도순 시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미안하다 월급을 올릴 수가 없다 여러분이 박봉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안다. 하지만 여러분의

월급이 올라가면 물가도 따라 오른다. 지금 상황에서 여러분의 월급을 올릴 수가 없다'

고 하셨다. 이 무슨, 우리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모든 선진국의 제도들을 차례로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진국만큼은 못해도 앞으로 나아갈

초석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모든 복지제도가 그때 기초가 시작되었다.

의료보험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보험의 적용이 미미하였다. 특히 중병, 희귀병, 암, 만성신장병

등은 대부분이 비보험이 이었다. 보험적용자체가 되지 않았지.

그러니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옳다 큰 병나면 집 말아먹는다. 그래도 안된다. 돈 잡아먹는 귀신.


여하튼 결론적으로 월급을 올리지 못하니 참아라는 거였다.



월급은 일찌감치 들어오자마자 병원으로 들어갔다. 원무과로, 돈 잡아먹는 귀신처럼 빨려나갔다.

아이는 계속 검사를 해야 하고 수입약은 계속 사야 하고 이제는 검사지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보스턴백안에 차곡차곡 급여봉투와 함께 들어갔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혈액을 거부한 것이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나의 피를 수혈하면 된다. 이 소문도 병원에 났단다.

저러다 아이엄마부터 먼저 죽겠다고 어쨌든 혈액구입비는 내피와 퉁쳤다. 세이브가 된 것이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가면, 친정어머니가 유리잔에 빨간 물을 주셨다

'마셔라 마셔야 니도 살고 아이도 산다'라고 하셨다.

마시니 술도 아닌 것이 맛있었다.

어머니께서 포도를 설탕에 담가 놓으셨다. 딱 1주일 정확히 일주일 되었을 때 건져내셨단다

술이 아니었다 삼투작용에 의해 그때까지가 포도의 모든 영양성분 진액이 나온 것이란다.

하루라도 넘기면 발효가 시작되므로 7일 만에 건져서 주시는 포도액이었다.

나의 면역괴 혈액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아이도 살리고 너도 산다는 말씀이셨다.

지금 나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 눈물 짜낼일도 없다

가감 없이 기억이 나고 몸이 기억하고 뇌의 기억장치에 기록된 것을 끄집어낸다.


겨울에는 피조개를 직접 수산시장에 가셔서 사 오셨다.

생으로는 못 먹으니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어머니 특유의 요리방식인 옅은 간장물에

장조림처럼 담가두셨다가 주셨다. 처음에 생으로 먹으라 하였다.

나는 비위가 약해서 그러지 못한다. 식성도 까다롭고 별났다.

평생을 한의원에서 약 지어먹고 공부할 때나 피곤하면 링거를 맞던 내가 아무것도 나를 위해서

할 수없으니 어머니는 안타까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주셨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땅팔아 돈주시고 나를 살리고 아이를 살리기위한 방법을

어머지의 방식대로 하셨다. 이제 곧 돈은 동이난다.


남편은, 남편은 아이가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남부끄럽다고 시골집으로

들어가자고 들어가서 살자고 하였다. 본인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누군가 영향력을 부렸는지

수없지만  대충 집팔아 아이에게 다 집어 넣으려고 그러냐고 하신분들의 영향이리라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럴수록 나의 의지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나는 그런 사람이다. 돈과 자식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어느날

어느 해좋은 날

바람이 산책을 나왔다.

어느집 작은 창문안을 들여다 보았다.

창문안으로 보이는 따뜻한 모습에

바람은 마음을 빼앗겼다.     

가만히 창안을 들여다보니

따뜻하고 아늑한 방안에 아기가 자고있다

햇살도 조심스레 잔잔히 흐르고 있다.     

아기는 새근거리며 소록소록 잠들어 있고

아기재우던 엄마는 아기 옆에서 여우 잠을 잔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아기가 입을 오물거리며

꼭진 고사리손을 꼬물거린다.

아마도 아기는 맛있는 것을 먹는가 보다.

무엇을 놓지 않으려고 손을 꼭 쥐고있을까     

지나든 바람이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에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구나.

아기엄마 놀라 여우 잠에서 깨어나

문틈으로 들어오려는 바람을 흘깃 나무란다.

바람, 무안한 마음에 얼굴 붉히며

조용히 물러간다.           

#친정어머니 #무서운병원비 #사랑과헌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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