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단편소설 chapter3 회상, 아름다운 시절

by 죽림헌

그녀가 행복아파트 202호에 산 세월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녀가 남편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그 남자와 헤어진 후 쭉 여기서 혼자 살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


눈을 감자 그녀의 의식이 과거로 간다.

남편은 조달청 공무원이었다. 국가직 공무원으로 다른 직종보다 좀 넉넉하였다. 모든 관공서의 물품을 구매 조달하였으니 일반직 공무원보다 좀 나았다. 한때,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급여를 쌀로 대신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부업으로 살림에 보태어 잘 극복하였다. 남편은 주로 타지근무를 하였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휴가 때 집에 오기도, 그녀가 가기도 하였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래도 각자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나름 잘 살았다.

그녀에게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은 그녀의 삶이고 세상전부였다. 아들은 건강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잘 생겼다. 오래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애타게 기다렸었다.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쉽게 아이는 들어서지 않았다.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귀한 아들이 그녀에게 왔다.

그녀는 집을 지키고 아이를 돌보며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부업을 하여 돈을 벌었다. 제법 짭짤한 수입이었다. 박봉과 급여를 받지 못할 때도 어렵지 않게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마당에 화초를 가꾸는 것 외에도 텃밭을 일구어 웬만한 것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텃밭에서 나는 푸성귀들로 맛있는 찬을 만들었다. 닭도 키웠다.

그녀는 부업으로 삵 바느질도 하였고, 예쁜 수를 놓은 장식용 손수건을 만들어 고급 양품점으로 넘겼다. 그녀의 또 다른 수입원이었다.

남편은 업무의 특성상 2년마다 근무지가 변경되었고, 새 임지로 가기 전이나, 휴가 때는 아들과 놀아주며 화목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랬다.

어느덧 아들은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에서 ROTC 학군단에 입단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베레모에 학군 단복을 입었으니, 사복을 입는 일이 거의 없어 딱히 옷값에 돈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준수하며 늠름하였다. 그리고 검소하고 성실한 아들이었다.


옛집은 산자락 밑에 있었다. 구조가 일본식 가옥이다. 파란 페인트칠을 한 철 대문을 열고 두어 계단을 오르면 앞마당이 나온다. 왼쪽으로 화단과 텃밭 그리고 뒷마당으로 연결된다. 앞마당 오른쪽 끝에 닭장이 있었다. 현관문은 미닫이문이었다. 오른쪽에 제법 큰 안방이 있다. 방안에는 그녀가 사용하는 반짇고리와 인두, 다리미, 화로가 있고 그녀가 앉는 자리 앞에는 재봉틀이 놓여있다.

한쪽 벽은 미닫이문으로 된 긴 벽장이 있었다. 아랫목 벽에는 대나무로 만든 옷걸이에 곱게 수를 놓은 횃대 보가 걸려있었다. 횟대 보에는 꽃과 나비들의 수가 놓였다. 한 폭의 화조도 같았다.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오르면 긴 마루와 양옆으로 미닫이문으로 된 방들이 있었다. 아들의 방은 오른쪽 끝에 있었고, 입구 쪽의 방은 거실처럼 사용도 하고 손님방으로도 사용하였다. 그 뒤쪽 방은 남편이 서재로 사용하며 미닫이로 연결되었다. 안방은 개조하여 온돌이었으나 나머지 방들은 다다미로 되었다.

복도의 끝에 있는 문을 열면 뒷마당이다. 야트막하게 산이 경사져 내려와 계절마다 꽃이 피고, 단풍 드는 자연을 볼 수 있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이 눈처럼 바람에 날렸고, 산자락에 연결된 바위 하나가 마당에 불쑥 고개 내밀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흘러내렸다. 바위에 대나무 깔때기를 달아 작은 못을 만들었다.

그곳은 자연이 만든 정원이었다. 집은 고풍스럽고 고즈넉하였다. 어느 곳하나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녀는 이 집을 잊지 못하였고, 그리워하였다.

그녀는 남편과 떨어져 살았으나 불행하다 생각지 않았고, 어렵다는 말도 내색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그 삶을 사랑하였다.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고, 대학을 졸업시키고 소위로 임관되던 날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하였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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