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Chapter4 전사통지서
아들은 자대 배치가 되었다. 첫 임무로 공비(그 시절은 그렇게 불렀다, 공산당 비적이라는 뜻이다) 토벌작전에 투입되었다.
함양, 산청, 거창 등 지리산 과 연결 된 전라, 경상도 산골짜기를 타며 수색 작업을 하였다. 주로 낮이 아닌 밤에 야간 수색을 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민간에 스며들어 숨었고, 밤에는 지리산 자락을 타며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국군과 교전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처 북으로 퇴각하지 못한 패잔병과의 게릴라전이었다. 산 아래 주민들은 그들을 숨겨주기도, 신고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의 상흔(傷痕)이 복구되지도 치유도 되지 않은 때였다.
1960년대 말까지 그들과의 교전은 계속되었다. 화전민처럼 산속으로 스며든 군인도 있었다. 산속에서 화전민으로 산 사람들은 1970년대 말 새로운 주민등록제도를(현재 사용 중) 시행할 때까지 숨어 살았다.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하고, 사과도 하였지만 아무도 국군의 억울한 죽음은 말하지 않았다.
아들은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자신은 잘 지낸다며 살뜰히 어머니를 챙겼다.
지리산의 수색 작업은 난항이라 하였다. 민간에서 숨겨주고, 작은 암자에서 대처승이라 하며, 갖은 방법으로 민간에 스며들어 교란작전을 펼쳤다,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누가 적이고 누가 민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수색 작업은 경계가 없었고, 수색작업 중 국군과 경찰의 피해도 컸지만, 민간의 피해도 많았다.
전쟁아란 것이 그런 것인가 보았다. 모두에게 가슴 아픈 시기였다.
불안한 날들이 흘러갔다.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조이고 있던 어느 날,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았다. 야간 수색 중 소대원의 실수로 위치가 노출되어, 교전 중 전사하였다.
아들은 그렇게 피워보지 못한 꽃이 되었다. 소식을 받고 그녀는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정신을 온전히 잡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말문도 닫았다. 당장이라도 아들이 현관문을 열며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오는 상상, 환청을 들었다. 자식 앞세우고 울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그녀는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문갑 위에 오랫동안 그대로 두었다. 치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들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껴졌다.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바람은 유독 세차게 휘몰아쳤다. 밤에 홀로 앉아 바느질로 긴 겨울밤을 보내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마당에 몰려다니며 수선거렸고, 철대문은 덜컹거렸다. 그녀는 바느질하던 손을 내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누가 문을 두드리나'
'아들이 오는가'
'아이가 나를 찾나'
<쳇지피티생성 : 잠 못 드는 밤>
그런 밤이면 온 신경은 서릿발 서듯 날카로워졌다. 방이 싸늘하였다. 온기가 사라졌다.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를 들여다보았다. 연탄불은 이미 꺼져 있고, 하얀 재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을 지나며 뒷산 언덕에 새들이 지저귀고, 벚꽃은 하얗게 피어나고, 개나리꽃과 영산홍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그녀의 상처에도 연한 분홍빛 살이 돋아 났다.
그녀는 아들의 방을 청소하였다. 평상시의 모습으로 학군단복을 깨끗이 다려 걸어두고 베레모도 먼지를 털어내고 올려 두었다. 책상을 가지런히 정리하였다. 의자를 책상아래로 밀어 넣는데 주인 잃은 만년팔만 책상 위에 놓여있다. 벽에 걸린 졸업기념사진 속 아들이 밝은 미소로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걸고 나왔다.
아들은 그렇게 그녀의 가슴속에 묻히고 추억의 문은 닫혔다.
가슴 저린 날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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