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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Aug 25. 2024

#13, 검사지의 NORMAL

최종 판정 정상, 우리는 해 내었다. 해방되었다

외래로 정기적인 검진을 받았다.

검진기간은 처음 1주일 후, 보름 후, 한 달 후, 3개월 후 그런 식으로 기간이 길어졌다

검진사이의 틈이 길어졌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약도 줄이고 하다가 이제는 공식적으로 약을 먹이지 않았다.

얼굴의 개기름도 빠졌다. 여드름도 없어졌다.

외관상으로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다.

검진결과를 기다릴 때마다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예전의 그런 기다림이나 두려운 가슴조임이 아니었다.

정상이라고 해주길 기다리는 마음, 이제 오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기다린다


아이는 4살을 넘어 5살이 가까워졌다. 이제는 아기가 아니다. 어린이가 되었다. 

어언 병원입원생활과 외래진료기간을 합하여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둘째는 어느 사이 병과 함께 생활하며 자랐다.

이제는 비 오는 날, 노란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고 아파트주위를 첨벙 대며 다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이 녀석도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한다.

물이 고여있는 곳이면 첨벙하고 뛰어든다. 

그리고 좋다고 재미있어하며 환한 얼굴로 소리 내어 웃는다.

원래도 잘 웃어서 간호사들을 즐겁게 하더니 여전히 잘 웃는다.


친정어머니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아이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

우리 어머니는 뛰어난 요리사 셰프다.

아이를 위해서 또 우리를 위해서 많은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원래 음식을 잘하시는 분이시다. 아니 요리를 해주신다는 말이 옳은 듯하다.


독특하게 하신다. 그 시절만 해도 카레라이스는 그냥 카레라이스이다.

어머니는 카레를 만드시는데 사과를 껍질을 까고 잘게 썰어 카레를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 해 먹는 고형카레와 병에 든 분말카레를 같이 넣어셨다.

사과는 오래 끓이면 은은한 단맛을 낸다.

재료는 수입상가에서 사 오셨다. 참 맛있었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고, 탁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맑은 탕, 맑은 국을 먹었다.

음식자체를 그렇게 하셨다.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고추장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붉게 해야 하는 음식은 그냥 고춧가루를 넣으셨다. 오래 끓이면 국물이 잘 어우러지고 맛이 밴다


아이들은, 참 큰아이도 집에 왔다. 연년생 두 녀석은 잘 지냈다. 건강하게 자랐다.

나의 할머니도 이제 우리 집에 오신다. 너무 좋아하시고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셨다.

평생을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으시고 여름이면 언제나 하얀 세모시 치마저고리를 입으셨다.

바뀐 것은 버선대신 흰 양말을 신으시는 것이 달라지셨다.

겨울은 당연히 비단(공단)으로 만드신 옷이다 겨울옷은 색과 무늬가 있었다.

두루마기와 토끼틀을 가장자리에 넣은 공단조끼를 입으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애잔하고 마음이 시리다. 영락없는 조선여성이었다

그 모든 것을 손수 지으신 옷이다. 옛날은 다 그리하였단다. 

여자는 자라면서 자동으로 수틀을 가까이하였단다

할머니의 기억, 추억이 할머니를 조선시대에 그대로 머무르시게 하신 듯했다.

할머니까지 오시니 집안은 더욱 행복함이 넘치는 날들이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알게 모르게 혼자 속을 끓이며 사셨다.

병원비 때문에 우리 집의 생활은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어머니 혼자 계셨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깜깜하게 불이 꺼진 집에 촛불을 밝히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조용히 앉아계셨다.

우리 집은 할머니나 어머니나 똑같은 것 같다. 손자를 붙들고 온갖 이야기 해주시는 것.


불을 안 켜시고 뭐 하세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께서 전기가 나갔다. 하신다.

밖을 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왜 불이 켜지지 않아요 하고 내가 물었다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 한전에서 전기를 끊었다고 하셨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가슴이 메었다. 어두운 집에서 엄마는 어떤 심정으로 촛불 켜고

손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계셨을까.

지금 글을 쓰고 있노라니 슬며시 속에서 분노가 치솟는다.

인간들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잔악, 사악 다 나오려 한다. 

편하고 아무런 어려움 없을 때 10억을 준다 해도 어렵고 힘들 때 100만 원보다 못하다 

그냥 큰 숨 한번 쉬고 내린다. 


집안일이 이렇게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돈 잡아먹는 귀신, 병원비 때문에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어머니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조용히 나가서 메인 전기함을 열어보니 퓨즈를 빼버렸다.

가게에 가서 퓨즈를 사 와서 넣었다. 끼워 넣었다.

올라와서 불을 켜니 온 집안이 대낮같이 밝았다.

그 모든 날들을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것을 모두 처분하고 어둠 속에 견뎌 내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웃으시고 음식을 마음껏 만드시고 밝은 불아래서 편히 성경책을 읽으시고

가계부를 쓰시고 하셨다.

어머니의 가계부는 재미있다.

한글과 한자와 일본어가 섞여있다. 간혹 짧은 영어도 섞여있었다.

삶이 정상으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일찍 집에 온 날은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고 제법 먼 길을 걸어 산책을 하고 왔다.

재수 없이 기분 나쁜 말은 여전히 한다. 물론 걱정스러운 맘에서 하는지는 안다.

'아이가 키가 크지 않으니 저대로 키가 자라지 않으면 어쩌냐'는 말을 하였다.

살려놓으니 또 정말 재수 없는 말을 하였다. 

사람이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는 것이지, 본인도 작은 키면서 무슨 별스런 

말을 하는지 정말 이상한 성격이었다. 걱정보따리, 체면보따리를 가지고 다닌다.


한없이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산다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참 모질고 재수 없다.

없으니 욕한다. 들을 수 없으니 지금 나는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훈풍이 부는 5월도 막 지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검사를 받았다.

오늘은 두 아이와 (첫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검진받으러 갔다.

채혈하고 담당의사 선생님과 면담했다.

남편얼굴을 보니 허옇게 질린 표정이다. 몰랐을 것이다. 매번 혼자서 아이 데리고 이렇게

기다림의 시간을 가진 것을,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가족 4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놀라며 웃는다.

처음 보는 장면일 것이다.

여전히 둘째는 선생님과 간호사를 반가워한다. 그러나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사이 아이는 자랐다.  

의사 선생님께서 자료를 보시고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 긴 시간 고생 많았습니다. 저 녀석도 잘 견뎠고요. 

그래도 항상 신경은 쓰셔야 합니다' 하셨다.


우리는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정말 감사했다.

우리는 해방되었다. 긴 투병과 간병의 시간에서 고통의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첫 골수이식 수술한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성공하여 우리 아이만큼  

잘 자랐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소중하다. 누구나 자식을 앞세우는 것은 그 부모의 슬픔을 넘어서 절망이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을 한다. 그 첫 수술을 한 아이가 건강한 어른이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는 병원부지 안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무아래에 앉았다. 

언덕에는 나무사이로 초여름의 따뜻한 기운 중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삼라만상이 새로이 시작하는 것처럼 남편과 나는 심호흡을 하였다.

두 사람 모두 잠깐이지만 눈을 감고 기도를 하였다. 감사의 기도였다.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뛰어논다.


우리는 마치 열면 안 되는 중요한 문서를 개봉하듯 최종 결과지를 펴 보았다.

결과지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있었다.


                  NORMAL, 


#완치 #투병생활 #고난의 생활 #사랑과 신념의 승리 #기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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