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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Aug 27. 2024

#15, 글을 마무리하며(終思)

에필로그

이야기보따리를 풀다의 첫 번째 이야기를 끝마쳤다.

글의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면서 두달이 지났다.

혼자서 좌충우돌하며 여기까지 와서 브렌치북을 만들어 둔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도움도 청해보고 하였으나 답은 애매하였다.

또 다시 옛날의 고집이 나올까 무섭다.

어찌하였던 책의 모습을 갖추어야했기에 브런치북을 일단 만들자고 작정하였다.

제목을 '나의 첫 산은 험준하였다.' 로 정하기로 하였다.

다시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여인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던 중

날벼락 맞듯이 죽음과 같은 고통의 시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바꾸었다 '아름다운 나의 인생 벼랑끝 연주'로 하였다.

즐겁고 행복하고 꿈많은 청춘의 나이에 벼랑끝으로 내 몰린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연주하였다. 

이제 보따리에서 내어 보낸다.


이이야기 보따리는 참 많이 들어 있디. 어느것 부터 시작할까 생각해보다 

결혼후 첫번째로 겪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먼저 내어 놓기로 하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젊은 나이에 겪으며 힘든 산을, 짐을 등에 지고 넘어야했다.

첫산은 젊은 나에게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출발하여 푸른 들판을 가볍게 걸어 가파르고

험준한 산이 나를 맞이하였고 나는 그 산을 넘었다. 더불어 파생된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그럼 다음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일까, 새콤달콤한 이야기 일까,

오래 묵혀 두어 곰삭은 시큼한 이야기 일까,  어느 것이든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이 이야기 보따리에는 국내여행에서 해외여행으로 아이들과 함께 우리땅을 운전하며 

여행하였던 이야기, 아이들을 유학보내기 위하여 해외 면접을 보러간 이야기. 

나의 어머니의 헌신 이야기, 할머니의 남다른 삶의 이야기, 빼 놓을 수없는 시댁이야기

그리고 글을 쓰려고 작정하였을 때 머리에서 서로 나오려고 하는 글들,  이야기들

그러나 먼저 백혈병투, 간병기를 먼저 시작하였다. 순서가 그렇다


나는절벽끝으로 내 몰린 사람이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긴 투,간병기는 가정사이다. 동시에 어느시대나 누구의 집에나 발생할 수있는 이야기다.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고 그에 파생되어 경제적 고통, 가족간의 갈등 등을 겪으면서 삶을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기록이다. 누군가의 위로이자 용기가 될 수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다.극복하면 추억이되고, 그렇지 못하면 슬픔으로 고통만 남는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극복되었기에 담담히 쓸 수 있었다.

처음 글이라는 것을 썼다. 길고도 짧은 십수년에 걸친 이야기를 기억으로 차곡차곡 가슴속에 

들어있던 슬픔을 당시에는 울어보지도 못하였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러나 동정은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러한 고통을 받고 더한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신은 견딜수 있을 마큼의 고통을 준다,는 말 믿지않는다.

못견디면 자식을 두고 자살해야하는가

시작하고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할 수있을까?

하지만 모든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여기까지 오니 다시 욕심이 났다.

노인의 글을 누가 읽어줄까?

어떻게 하면 될까? 

과연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 질 수있을까?


요즈음의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윗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글이 길면 읽지않는다 그대로 손가락으로 스크롤하여 넘겨진다.

나는 글을 느리지만 끝까지 읽는 아니 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중에도 좋은 글은 꼼꼼하게 읽는다. 그냥 취향이 그렇다.


또 다시 많은 의구심과 욕심이 생겼다. 혼자서는 못한다 어떻게 할까,

등의 많은 생각이 나서 마무리글을 쓰 두고도 계속 수정하고 미루고하였다.

하지만  또 읽는 분들에게는 지루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신파조의 이야기는 피했다. 눈물과 동정을 구하는 듯한 글도 자제하려 했다 

그럼에도 인간인지라  글을 쓰며 감정이 솟구칠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다시 선명히 떠 올라, 마음 다스리길 여러 번 하였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고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 여린 마음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피했던 것 같았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분은 오래전에, 십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

참으로 좋은 남편이었다. 나의 걸음을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전국으로 세계로 확장시켜주었다.

아마도 일찍 떠날 걸 은연중에 알아서 그랬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단지 그는 ... 용기를 내어야 할 때 물러났다.

나는 푸념 삼아 욕할 수 있지만 다른 분은 모르시니 저의 푸념 섞인 원망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큰동서는 뭐라 할 말없다. 미안한 마음도 없고 여전히 운전하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동원하여 퍼붓고 싶다. 그래도 분은 풀리지 않을 듯하다.  

자기 가족도 모르고 다른 사람 몰래 만만한 시동생과 그 아내(나)에게 못할 말과 행동을 했다.

바늘로 사람을 찌르는 궁중의 사악한 후궁이 하는 그런 방법, 바늘로 폐부를 찌르는 말,

그리고 이 분도 심장병으로 앓다 죽었다. 좋아하는 열심히 절한 극락이라는 곳에 갔을 까?

어디를 가든 다음 생에서는 옷깃도 스치는 인연이, 바람조각 하나라도 부딪히는 인연이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만난다면 복수할 수있기를...  


그래도 매냥 미워할 수 없기에 ( 나의 정신건강상에도 좋지 않다.)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고 

이 글을 끝으로 아마도 또 훨씬 옅어져 갈 것이다. 내가 눈감을때는 기억도 나지않기를 바란다.


큰 시숙,  점잖음 뒤에 가려진 행동과 말, 양상군자.

아내의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체면에만 신경 쓰고 다른사람의 고통과 우애라고는 없는 방관자.

아버님 돌아가시고 상속재산을 두고 삼오날 모두 모인 장소에서 추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재산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상속재산 등기만료기간 6개월이 다되어 가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무실로 전화하여 괴롭혔다. 


마지막 6개월째만 그리한 것이 아니었다. 일찍부터 상속포기하라고 독촉하는 것이 사채업자가 

독촉하듯이 전화하여 괴롭혔다. 상속포기하라고 나에게 말을 못하니 남편사무실로 전화하여

매일 괴롭혔다. 근무하는 사람에게, 직원들도 있는데 끊임없이 괴롭혔다.


어느날 남편은 저녁식사후에 술을 한잔 하며 말했다. 상속포기서 주자. 매일 전화해서 넘기라고 

괴롭히니 죽겠다고 하였다. 업무도 집중이 않되고 아침에 직원들에게 업무지시하는데도 전화온다

고 하였다. 그 마지막 1개월이 문제였다. 그들은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

1개월만 지나면 바로 법적상속지분으로 계산된다. 그리고 문제는 상속세가 고율이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 가보니 집은 세놓고 산과 감밭은 폐허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집과 재산은 아버님이 일구신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손이 보태어진 것이다.


시아버님 시골 분이시지만 나름 인생철학이 있고 강인한 분이셨다. 

멀리 만주까지 가서 살아 돌아오셔서 가정을 일으키신 분 존경한다. 

나도 몰랐다. 아마도 자식들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유류상속분을 정리하다 거슬러 올라 가 조선말기에 만든 구 호적을 보고 알았다.

한글이라고는 없는 한자로된 옛호적을 열람하며 알았다. 


우리가 검사결과를 말씀드리자 진정으로 기뻐하셨던 분, 진정 어른이셨다.

그리고 한 가지 해주셨다 어디서 하얀 굼벵이를 몇 마리 구해서 마요네즈병에 넣어 주셨다. 

달여 먹이라고 하셨다. 일꾼 구해서 산 지렁이 채취하여 약으로 구운 우리어머니와 비교되었다.

그리고 유명한 말씀을 해 주셨다. 

 

밑 빠진  독에는 물을 붓지 않는다 흔적이 없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맡 빠진 독에 물을 담으면 흔적 없이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셨다.  

그때 너희는 밑 빠진 독이었다, 고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밑 빠진 독을 빨리 수리하고 메우면 물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달리 있었을까, 사람은 본인에게 유리한 말만 한다.

그리고  후일 논 5마지기와 큰 현금을 주셨다 당시로는 큰 돈이었다. 

물론 우리 엄마의 땅 판돈보다도 적고, 계를 하며 여직원들이 빌려주고 도와준 돈보다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었다. 

시 아버님은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좀 강하게 표현하신 것 같았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나와 남편에게 미안해하셨다. 

미안하다고, 근데 너무 늦었었다.


우리 집은 다른 형제들 집과 달리 따뜻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오해를 풀고 마음을 전달하고 원망은 아래쪽으로 누름독 속에 꾹 눌러 두었었다.


지난 서류나 아이의 투병기 때 사진, 아이들 데리고 여행한 사진 등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읽는 분들이 조금의 공감만 해주시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 중학교때 였던것 같다 내가 시집가며 일제 야시카 카메라를 사 가지고 갔다.

남편은 그 카메라로 사진을 엄청 찍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둘째 아플 때의 사진을 보며 서로 자기가 아니라고 우겼다.

당사자인 둘째도 첫째도 서로 자기 아니라고 싸웠다.

그다음에  그사진은 앨범 뒤쪽에 넣어두었다.

그런 일화가 있기에 아이의 사진은 노출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인도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사진을 올렸다. 허구가 아니라는 뜻으로...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 인생은, 

신이 만들었든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운명이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름다운 일본정원 같은 운명을 사는 사람, 

가는 길이 언덕도 있고 들판도 있고 적당히 높은 산도 있는 운명을 사는 사람

평생을 가도 가도 진흙바닥인 삶을 사는 운명을 가진 사람, 

끝없이 가는 길이 자갈길이라 편히 걸을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

가는 길이 산 넘어 산이고 이산이 끝나면 평지겠지 하고 열심히 걸었건만 다시 또 높은 산이 있는 삶 

즉 산이 아니라 산맥을 걷는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


여러 종류의 삶을 사는 것 같으나 종래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이 만들어 놓은 판에 올라 앉아 움직이는 바둑돌이라고 생각한다. 

잘 짜 놓은 판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더하여 유전자까지 합세하여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살아오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든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고 반론의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주변의 다른 삶을 환우가 있는가정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고통속에 사시는 분들을 돌아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감사히 생각하며 사시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흔히 죽을 때 까진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나는 나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면서 내가 태어나 살면서 

첫 번째 산을 넘은 것을 글로 옮겼다.

그 첫 번째가 험준했다.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며 첫 산을 넘은 이야기를 마친다.

읽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나 생면부지의 사람이

인생담(人生談)을 하나 풀어놓았는데 오셔서 읽어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글도 열심히 읽을 것이다. 지식을 탐구하는 데는 끝이 없고 즐겁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에게는 흔적이 있다.

족적이 있고 지문이 있다. 글에도 특유의 지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많이 들어 삶을 쓰 보고자 생각한  작가 지망생 노인이 정말 글을 쓰 보았다.


나는 기슭에 다다랐다.

이제 편히 앉아 쉰다


조용히 호숫가에 앉아 

물결이 이는 것을 보며

바람을 느낀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느껴본다.

모든 날들이 견딜만하였고, 행복했다

햇살은 따뜻하다



죽림헌(竹林軒)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소회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죽림에 헌을 권해주신 단풍국블리아작가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글을 읽어주신, 부지런히 라이킷해주신 작가님들 저에게는 너무 소중하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좌충우돌 아무것도 몰라 허둥대는 저에게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신 분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이버블로그를 통하여 이곳까지 오셔서 글을 읽어주시고 주인없는 블로그를 지켜주시는

이웃님들에게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특히 호주 애들레이드의 달포녀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도이 문학관 도이김재권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

글쓰는 것을 응원해주신 길동무선생님, 창원의 토니파파님,여행 인푸루언서 라벤더님 , 

지금도 조용히 오셔서 제 글따라 들어오시는 이웃님들 부족한 저의 글을 찾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죽림헌이 되겠습니다.


브런치와 브런치스토리팀에 감사드립니다. 자유 백일장을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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