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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n 02. 2024

#5 우리는 낀 세대다

낀 세대의 아픔도 행복이었다

어젯밤, 침대에 편히 앉아 책을 읽었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시간이 새벽 1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이런,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지났나 하며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약을 먹고 물을 마시고 소등하고 쿠션을 제자리에 두고 누웠다

핸드폰에서 수면 음악을 플레이하고 침대에 누운 상태로 가벼이

몸을 정리하였다.      

하루의 몸과 마음의 피로를 정리하며 천천히 릴랙스하였다

수면의 모드로 들어간다          

음악이 아주 작게 들린다 음악에 집중하며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첫 곡이 페기 리(Peggy Lee)의 섬머타임(Summertime)이다.

페기 리는 1920년대 사람이다. 목소리가 차분한 허스키보이스다.

들으면 나른해진다.


섬머타임은 원래 남부 지방의 흑인들이 부른 자장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곡을 불루스니 재즈니 한다. 곡이 어떻든

흑인 가정부가 여름 한낮에 주인 아이를 재우며 부른 노래다.


아버지 부자고 엄마는 예쁘다 강에서 물고기 뛰어 오르고

목화밭에서 목화는 잘 자란다.

그러니 아가야 쉿 울지 말고 아무 걱정 말고 자거라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거의 수십 명 이상이다.

곡만도 편곡하여 많은 곡들이 있다. 지금도 부른다.


나는 이유 불문 수면 플레이 리스트에 페기 리곡을 넣는다

조금 듣고 있으면 잠이 온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이

빙글하고 돈다. 의식이 깨어나 생각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낀 세대와 다음 세대라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하였다.

가만히 든 생각이 아니다,


우리는 낀 세대의 부모님 세대보다 나은 세대다.

부모님 세대는 대한제국말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전쟁을 겪은 정말 불행한 세대였다. 일본강점기에 있었고 전쟁을 겪었다.

교육을 못 받아 글 모르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 중에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며, 시부모님 부양, 심하면

시동생. 시누이까지 부양했다.

전쟁통에 피난 온 사람들은 먹을 것도 집도 없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래도 좀 멀쩡하게 남은 곳은 낙동강 아래다

그곳도 지리산과 연접한 지역들은 퇴각 못한 북한군들과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뭐 대단히 좋은 지역도 아니다.

경상도 지역은 평야가 적다. 당연히 농지가 별로 없다는 말이고 가난하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교육열은 엄청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중앙관료가 이 지역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시대부터,



중략하고

그 시대에 부모님들은 얼마나 수고하고 힘들었을지 가히 짐작 간다.

그 이후 세대는 유교사상과 조상을 모시는 정신이 몸에 밴 터라

선 세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엄청 고생하셨다.


더 하여 예전에 없던 국가중흥, 산업 발전, 국토개발 등이 생겨났으니 또 나름 고생하셨다.     

본인 의지와 부모님의 한 맺힌 교육열이 합쳐지고 국가의 문맹 퇴치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결과 점점 나아졌고 배운 자도 많아졌다.


그래도 시골로 가면 여전히 글 모르고 세상돌아가는 것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산업 발전으로 지역이 온통 썩여버렸다 고생들 하셨다.          

나는 그 낀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에 끼였다.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고 국가가 만들어 놓은 판에 잘 안착하여 살았다.

여성도 경쟁하며 좋은 직업도 가지고 자신의 주장도 하였으며,

생각도 못 할 해외여행을 하늘을 날아 다니며 하고 아이들도 최상으로 먹고 입히며

교육하고 외국이라는 곳으로 공부시키려 유학도 보내면서 살았다


그아이들이 자라고 보니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 우리끼리 산단다.

전화로 안부하고 가끔 만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운 것보다 더하다 아이들을 품에서 놓지 못한다.

최고 다 못해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다 입히고 먹이고

남편은 한국에서 돈 벌고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공부시킨다면 외국에서 산다.


그보다 조금 아래 세대는 직장도 없고, 없는 건지 못 구하는 건지,

일할 의사가 없는 건지 그래서 뜬금없는 자발적 무직 즉 자발적실업자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정부에서 실업급여, 청년 지원금 아~이름도 모르겠다.

정부 혜택은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열심히 내가 벌어 병원비 보험료,

미래 연금 등 모두 자비로 하였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부에서 뭐 받아 본 것이 없다

급여 말고는 그것도 꼬박꼬박 원천징수로 세금 납부하였다.

그러니 좀 뜻뜻하고 당당하다고 자부해 본다.

          


이제 지금 세대가 문제다.

그렇게 아이들을 떠받들고 살았으니 그 아이들이 자라면, 지금 세대의

부모들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엄청 힘 들것이다.


예측 못하고 준비 못 하면 나중에 국가에 책임물을 자격 없다.

우리 세대는 보호받을 자격 있다. 요구할 자격 있다.

근데 안 한다. 우리 삶, 나의 삶이니. 정말 받은 것이 없다.


아니 있다 코로나 시국에 나는 3차례에 60만 원 정도 받은 것 같다

그것도 모두 지역화폐니 몽땅 음씩 주문배달 시키는 것 밖에 해당되지 않았다.

재래시장이 어디있어서 사용할 수있었나 그러니 싫든 좋든 음식배달시켜 소비했다


정말 그 시기 음식 질 떨어졌다.          

젊으신 분들이 책을 쓰고 포스팅을 하며 열심히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분들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세대나 열심이고 진정인 사람은 있고.

어느 세대나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남탓, 나라 탓하는 이가 있다.


그래서 생각이 든 것이 아~ 우리는 행복한 세대다. 


여즉 우리는 낀 세 대고 산업역군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열심히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였으나 사회에서 대접 못 받고 산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에서 만들어 놓은 터전 위에서 누리면서 살았었는데

정말 꼰대 같은 이 아니라 꼰대다.


고루한 생각이었다. 우린 행복한 세대였다.

노력하면 결과가 있었고 그 노력을 후원하고 지원하였으니 감사한 마음을 갖자.          


자려다 문득 눈이 뜨여서 이런 생각까지 왔다.

내일 아침에 어떻게 일어날까

이 생각이 내일 아침 기억이 날까 하다 잠들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서글퍼기도 하지만 한편 행복하고 편안해 진다. 

더 이상 질풍노도의 시대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한다.   .

#낀세대의 행복 #불안한 다음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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