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마음, 지방종
상유심생(相由心生)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레몬심리라는 저자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산다.
우리가 지나온 세월, 생각과 가치관, 심리상태의 모든 변화 하나하나가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심리 변화는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차이를 발생시키고 근육을 만들어 표정에 변화를 만든다.
오랫동안 일정한 정서를 유지한 사람은 표정에 크게 변화가 없지만
항상 초조하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불안한 얼굴'이 생긴다.
살다보면 즐거운 일, 괴로운 일, 슬픈 일, 행복한 일 등 많은 일들을 겪게 되고 그에 따라 여러 감정들이 생깁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생기면 좋으련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일들만 있으면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을 것이고 슬프고 나쁜 일이 자주 생긴다면 웃음기가 싹 사라진 찡그린 얼굴이 될 것입니다.
뭔가 불안하고 걱정이 많으면 움츠려들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차갑고 꽁꽁 얼어있으니 자꾸 안으로 안으로 묻어두려고 하고 보여주질 않으려 합니다.
환자들 중에는 신체적인 문제 때문에 마음까지 다친 환자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했을 수도 있고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상담하거나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환자들의 얼굴과 말투, 분위기에서 안타깝지만 그런 불안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목 통증 때문에 신경외과, 정형외과 같은 여러 병원을 다니시면서 치료받고 있던 여자 환자가 진료받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통증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지금 느끼는 통증이 목 뒤쪽의 '혹'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상담받으러 찾아오신 것입니다.
물론 지방종이나 다른 혹이 근육 및 신경, 주변 혈관을 누르거나 깊게 침범하고 있으면 그에 따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증상을 동반한 혹이라면 아주 크거나 근육 깊은 곳까지 침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초음파, CT, MRI 같은 정밀 검사가 필요합니다.
검사와 진단, 치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환자에게 받은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요즘 날씨가 추워서 옷을 두껍게 입고 꽁꽁 싸매고 다녀야 하는 겨울이긴 하지만 유독 이 환자는 옷을 두껍게 입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차적으로 혹의 위치와 크기, 모양, 부드럽고 단단한 정도 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목의 뒤편을 확인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혹이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지방종과 다르게 주변 조직과 경계가 잘 구분되지 않고 넓게 퍼져 있어서 환자의 불편감이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
혹시 뒷목의 이 혹 때문에 어깨랑 팔이 이렇게 아프고 저릴수가 있나요??
정형외과, 신경외과 다녀봐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서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파요."
"지방종이나 혹이 크고 깊으면 신경이나 혈관을 누르면서 통증이 유발할 수 있고 저린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흔한 경우는 아니에요.
혹이 크니깐 정밀 검사가 좀 필요합니다.
혹이 작으면 초음파로 검사할 수 있을 텐데, 크기가 커서 근육이나 더 안쪽까지 침범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하니깐 CT를 찍어보는 것이 좋겠어요."
CT검사 후 결과를 확인해보니 병변의 모양이 명확하게 경계가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지방 조직이 크고 두꺼워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확실한 모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술할 때 흉터도 커지고 나중에 상처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환자에게 설명드리는데, 환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혹 때문에 팔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거죠??
근데, 그래도 저는 꼭 수술하고 싶어요.
목 뒤에 혹이 이렇게 튀어나와있으니깐"
"꼽추 같아요.
노트르담 꼽추 아시죠??
남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고 저도 자꾸 신경 쓰이고..
흉터가 커도 상관없고 상처가 벌어져도 괜찮아요.
이거 꼭 수술하고 싶어요."
*꼽추(척추장애인)
그런 환자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남의 시선과 혼자만의 외로움, 불안감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는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얼굴 표정이 힘들어 보이고 어두웠는지..
왜 그렇게 옷으로 두껍게 가리고 있었는지..
혹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 날짜를 잡았고 저희 병원 척추센터에서 진료를 봤던 환자는 심한 디스크 때문에 척추쪽 수술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하게 주변 조직과 구분되지 않는 지방조직이었기에 최대한 문제 되는 지방조직을 많이 제거하면서 수술 후 흉터의 모양과 크기를 고려하여 절제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외과 수술과 척추 수술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오전에 시작한 수술이 오후 늦게야 끝났고 다음날 환자를 보기 위해 회진을 갔습니다.
"좀 어떠세요??
수술은 잘 되었어요.
검사에서 보였던 지방조직은 충분히 제거하였고 나중에 흉터나 피부 모양도 최대한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술 당시 모양을 잘 만들었다고 해도 회복하면서 그 모양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잘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술 경과와 주의할 점을 말씀드리고
"팔이랑 어깨 통증은 어떠세요??"
"수술했던 자리가 아프긴 한데, 예전 같은 그런 통증은 아닌 거 같아요.
좀 좋아진 거 같아요."
물론 그 통증이 '디스크 때문에 생긴 아픔'인지 아니면 자신의 모습이 '노트르담의 꼽추 같다는 마음의 아픔'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자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있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척추수술로 단단하게 목에 보조기(Neck brace)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분명..
건강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