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고등학교는 나를 학생이 아닌, 인간으로 봤다

프랑스 고등학교 첫날, 당황했던 이유

by 르네리베리
프랑스 파리-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기차표 하나도 혼자 끊지 못하던 내가,

프랑스 고등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알던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한국의 교실에선 조용히 정답을 맞히던 내가,

프랑스에서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 앞에 매일 고민했다.

그들은 나를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로 봤다.


‘학생’이 아니라, ‘개인’부터 본다


프랑스 고등학교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서 말하셨다.


“오늘은 모두 각자 생각을 말해보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이 말이 나는 믿기지 않았다.

수업인데, 발표인데, 정답이 없다고?

그 시간 내내 아이들은 손을 들고, 격렬하게 토론했다.

말투는 조심스럽지만, 의견은 강단 있게.

심지어 선생님도 학생에게 논리적으로 반박당하면 웃으며 받아들이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여기서는 누가 더 똑똑한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틀릴 수 있으니까, 말해봐”


처음엔 발표가 무서웠다.

내 프랑스어는 아직 서툴렀고, 말하다가 틀릴까 봐 겁났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발음을 고치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틀린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틀리더라도 너의 관점을 보여줘. 그게 더 중요해.”


그때 처음으로 말하기가 ‘두려움’이 아니라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프랑스 교육은 학생을 교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함께 자라야 할 ‘사람’으로 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철학 시간이었다.

주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한국이었다면 정의를 외우고, 시험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고, 친구의 의견에 반박하고, 철학자들의 주장과 엮어가며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갔다.


그날의 수업은 수학 점수보다 더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내 생각의 뿌리를 묻는 질문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vs프랑스, 두 교육의 다른 시선


한국의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향해 움직인다.

프랑스의 고등학교는 ‘좋은 시민’을 향해 고민한다.

전자는 성적을 중심에 두고,

후자는 사유, 토론, 표현, 다양성을 중심에 둔다.


물론 프랑스 교육도 완벽하진 않다.

비효율적일 때도 있고, 자유로 인한 혼란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었다.


‘공부’는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한다.

하지만 나를 ‘존중받는 존재’로 느끼게 한 교실은 프랑스가 처음이었다.


프랑스 고등학교의 책상 위에는 시험지만 있지 않았다.

거기엔 나의 생각, 내 의견, 내 감정, 내 말투…

무수히 많은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교실은 매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느껴봐. 그리고, 말해.”


지금도 한국에 돌아오면 가끔 놀란다.

질문보다 정답이 먼저이고,

침묵이 미덕이며,

틀림은 실패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틀려도 괜찮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걸.


그건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진리다.

그리고 그 진리는, 그 어떤 수능 문제보다도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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