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실감한 사건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자유가 막 풀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고, 간섭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심지어 내가 수업을 빠지든 간섭받지 않았다.
그 순간엔 마치 내가 ‘풀려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주는 해방감은 곧 낯설고 불편한 공기로 변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이제 모든 판단을 내가 해야 했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도, 친구를 어떻게 사귈지도,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프랑스 학교의 선생님들은 “숙제를 안 하면 벌을 받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숙제는 너를 위한 거야. 안 해도 괜찮지만, 그건 너의 선택이야.”라고 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방임’하는 거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대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있다고 믿어주었다.
그게 ‘방임’이 아니라 ‘신뢰’라는 것을 깨달은 건, 어느 수업에서 숙제를 빠뜨렸을 때였다.
그날 선생님은 나를 혼내지 않았다.
단지 내 옆에 앉아서 조용히 말했다.
“너는 너를 신뢰하니? 너의 시간을, 너의 가능성을 믿니?”
나는 그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자유가 뭔지 고민했다.
그 이후로, 과제를 하든 안 하든, 그 모든 선택은 내 몫이었다.
그게 진짜 무서웠고, 그래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친구들과 있으면, 가끔 너무 솔직해서 당황할 때가 있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친한 사이라도 “그건 네 생각이지”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처음엔 너무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무례함이 아니라 경계의 존중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프랑스식 자유는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건 ‘너도 네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려 들지 않고,
대신 존중이라는 느슨한 선 위에서 자율적으로 공존하는 문화.
그리고 그런 문화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점검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내 자유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진 않은가?’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계가 “이건 하면 안 돼”라는 규칙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경계를 스스로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힘이 중요했다.
이건 단순히 문화 차이가 아니라,
인간을 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자유를 말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그것을 결과 없는 상태로 착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면서 배운 것은,
자유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 기술은 방종과는 정반대에 있다.
그건 훈련이고, 내면의 도덕 감각이기도 하다.
나는 때때로 혼란스러웠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나를 통제할 사람이 없으니 미뤄버리고 싶은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유혹 속에서 내가 계속 물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나를 실망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자유란, 누군가의 감시 없이도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상태였고,
그건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고된 삶의 방식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프랑스에서의 자유는 처음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결국, 그 혼란은 나를 깨어있게 만들었다.
누구도 나를 통제하지 않을 때,
나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나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신뢰에서 시작된 자유는 방임이 아니라, 깊은 존중이다.
그리고 그 자유 안에서 나는
단순히 유학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