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 belle aujourd’hui.”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단순히 머리를 잘 말린 날이었을 뿐이었다.
프랑스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민망하게 “아니야, 그냥 아무렇게나 한 건데…”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그 친구는 눈을 크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왜 스스로를 깎아내려? 넌 오늘 정말 예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프랑스에서의 ‘예쁘다’는 단순한 외모 칭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순간 자체를 온전히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한국에서의 ‘예쁨’은 때때로 기준이 너무 명확하다.
하얀 피부, 갸름한 턱선, 또렷한 이목구비.
특정한 외모 규범 속에서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압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예쁨에 대한 정의가 훨씬 더 주관적이고 자유롭다.
지나가다 만난 할머니가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으면,
그건 “젊어 보이기 위해”가 아니라 “오늘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다.
프랑스에서의 아름다움은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외형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였다.
그 표현이 주는 생동감, 개성, 분위기, 태도 그 자체가 곧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 친구들이 건네는 “Tu es belle”는 외모 하나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날의 웃음, 그날의 자세, 그날의 말투와 분위기까지 통틀어 하는 말이었다.
“오늘 너 되게 예쁘다”는 말에는 이렇게 숨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 너의 존재가 나에게 따뜻하게 느껴진다.”
“너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이건 단순한 미적 평가가 아니라,
‘인정’의 언어였다.
당신이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존재의 수용’.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너 오늘 예쁘다”라고 하면
“아냐, 나 오늘 진짜 대충 했어…”
“헐 진짜? 나 아까 화장도 거의 안 했는데…”
하는 식의 겸손이 따라온다.
칭찬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것이 ‘거만’하거나 민망한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칭찬은 겸손으로 깎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상대의 시선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마디가 칭찬에 대한 정중한 답례이자, 상대를 향한 감사의 태도다.
그 문화 안에서 나는 배웠다.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한 존중이라는 것.
프랑스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듣던 말 중 하나는
“너 웃을 때 진짜 예뻐.”
처음엔 그 말이 낯설었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그게 칭찬이 될 수 있나?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게 가장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나의 화장, 옷차림, 외모가 아니라
나의 순간, 표정, 태도에 대해 말해주는 그 칭찬은
나를 예뻐지게 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예쁘다’는 말이 종종 타인의 기준을 맞추기 위한 평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예쁘다’는 말은 다르다.
그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감탄이고,
그 사람이 ‘자기다움’을 지켜낸 순간을 포착해 주는 말이다.
그 문화를 겪고 난 후,
나는 누군가의 외모를 칭찬할 때
그 사람의 분위기와 태도까지 담아 말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의 ‘예쁘다’는 단어는 결국,
“당신이 당신 다울 때, 당신은 가장 빛나요.”
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예쁘다”는 말, 너무 오래 남에게만 맡겨두지 마세요.
오늘 당신이 당신답게 살아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예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