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전을 하다가 유튜브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동영상을 듣게 되었다.
듣는데 감탄의 연속이었다.
수용소에서 가장 빨리 죽는 사람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탈출을 꿈꾸는 '낙천주의자'라 고한다.
근거 없는 그런 기대는 실망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막상 나가지 못하게 되면 실망이 되어 본인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도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 구절이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어리석게도 최근에 나는 20억을 벌고, 퇴사를 꿈꾸며 조급했었다.
무언가 나만의 것을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퇴사를 해서 책 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허상을 꿈꾼 것이다. 그냥 지금 있는 직장을 빠르게 그만두고 성공하면 된다는 흑백논리에 갇혀 조급했던 거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마치 탈출해야 하는 감옥이라고 폄하하다 보니 얼마나 지금이 괴로웠겠는가.
사실 행복하려면 가질 것보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어야 내 수준에서 더 깊은 몰입할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지금 나에게 이 직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은 나의 생계를 해결해 주고, 사회적인 결핍을 해결해 주고, 다양한 사건과 사고로부터 나에게 많은 경험을 준다. 그리고 많은 현상에 대해 배울 점을 제공함과 더불어 좋은 인간관계의 기회도 만들어준다. 심지어 때로는 위로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것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에 갇혀 감사함은 모두 잊은 채로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은 마치 나의 인생이 아닌 것처럼 스스로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그렇게 들어가기를 원했던 직장이고,
나에게 주는 것도 많은 곳인데...
내가 지금 보내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직장에서의 모든 일들을 의미 없게 보는 것은 참 스스로 만든 감옥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결국 과거의 내가 그토록 원해왔던 원인에 의해서 인연으로 연결되어 존재하게 된 것인데 이것부터 너무 부정해 버리니 내 인생이 위험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나는 북한에서 태어날 수도, 남미의 치안이 위험한 국가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하나의 직장에 다니고 있다. 상대적으로 감사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이를 잊고, 파랑새만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설사 위와 같은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감사할 것을 찾는 마음이 진정한 지혜일 텐데..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지금 내가 주어진 모든 상황을 나에게 필요한 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사하려고 작정한 것이다.
회사에서 받고 있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나 업무의 스트레스 등 다양한 부분들은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배양된 능력은 내가 추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될 때 슈퍼개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현실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내 미래가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오늘 글이 참 맘에 든다.
쓰면서 내 마음이 많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나는 오늘 조급함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는 남이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형 기술로 인해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갇히기 쉬운 디지털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나만의 철학과 기준이 더욱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철학과 기준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이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