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이눔아, 진즉에 누나 말 좀 듣지!

by 정옥




“어르신 콧줄 또 빼셨어요. 아이고 진짜! 응급실 또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요양원에 있는 동생이 또 콧줄을 뺐다는 연락이다.
끝까지 콧줄만은 거부하고 싶었다. 차라리 링거로 연명할망정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꾸역꾸역 영양식을 넣어주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의식도 없이 고단백 환자식(食)으로 일 년 넘게 견디다 가신 부모님을 보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콧줄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어느 집이나 말 못 할 사연은 있고 피붙이 중에도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있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사는 일이 순탄치 않았던 둘째 동생이 그랬다.
술에 의지한 채 내일은 없는 듯 사는 동생을 어르고 달랬다. 알콜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하면 형하고 누나가 너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길 마련해 주마. 동생은 그리하마 대답만 철석같이 해놓고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십 년 전이다. 경찰서로 행정복지센터로 갈마들며 연락이 끊겼던 둘째 남동생을 겨우 찾았다. 요양원에서였다. 나는 사지육신 멀쩡했던 동생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에 오열했고, 동생은 몇 년 만에 보는 피붙이가 반갑고 서러워 오열했다.
연락이 닿지 않던 동안 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생이 거동할 수 없게 된 것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졌던 파킨슨병 때문인가 싶어 검사를 의뢰했더니 알콜성 뇌경색이라고 했다. 의사는 골든타임을 놓쳐 더 이상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 무연고로 요양원에 입소했다는 동생의 보호자가 되었다.
내 혈육이니 자식도 마누라도 없는 동생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기꺼운 일이었다.
코로나 19가 오기 전까지는 저 좋아하는 음식을 싸 들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면회를 갔다. 요양원에서 제공되지 않는 생필품이나 약을 사다 달라는 연락이 오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비대면 체제로 바뀌고 음식을 싸 갈 수도 손을 잡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동생은 시들어가는 풀잎이 되었다. 작은 터치로도 부서질 것만 같다. 자는 모습을 보면 앙상한 뼈가 그대로 드러나 흡사 미라 같다. 코로나도 두 번이나 감염되어 격리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엔데믹이 선포된 지 일 년이 지난 올해는 폐렴과 청색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다음 날 면회를 갔더니 간호사가 “어제보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했다. 그런데 반가워야 할 그 말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중환자실에서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생을 보자 좋아졌다는 말에 기뻐하지 못한 나 자신이 죄스러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면회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뛰쳐나와 펑펑 울었다.
담당 의사는 이제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것은 위험하니 콧줄을 삽입하자고 했다. 응급실로 오던 날 분명히 콧줄을 비롯 어떠한 연명치료도 원치 않는다고 서명했음에도 의사 입장은 또 달랐다. 의사에게 동생은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낙이 먹는 것인데 먹는 즐거움도 없으면 살아있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담당 의사는 이 상태로는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거기 가더라도 콧줄은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생이 의사 표현은 확실하니 동생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하잔다. 동생에게 콧줄을 해도 되겠느냐 싫으면 손사래를 하라고 하니 눈을 껌뻑껌뻑했다. 그렇게라도 더 살고 싶었던 것일까?
안정을 찾은 동생은 콧줄을 하고 머물던 요양원으로 퇴원했다. 나와 두 동생이 십시일반 부담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삼키는 것이 힘들어 양껏 먹을 수 없었는데 콧줄을 하고 영양식을 넣어주니 얼굴도 한결 좋아졌다. 더 좋아져서 콧줄을 빼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오겠다고 하니 화색이 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가장 원초적인 생리현상까지도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을. 퀭한 눈동자만 굴릴 뿐 내장 기관도 굳어져 간단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을. ‘콧줄을 빼면...’이라고 했지만 영혼 없이 지껄여보는 빈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저도 안다. 잠깐 반가워한 기색은 땀 뻘뻘 흘리면서 쫓아다니는 누나를 위로하는 마음이었을게다.
검불이 된 동생을 보면서 ‘인간답게 죽는 것’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탄생과 소멸이 한 가지에 있으니 탄생의 기쁨 못지않게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기력이 다해 육신을 의지대로 부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음조차 순리대로 맞이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채로 콧줄에 의지해 음식물을 받아 넣어가며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져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 거부신청’도 했다.

어찌 되었건 오늘 밤이라도 동생이 하늘나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나는 인정머리 없는 매정한 누나다.
“이눔아. 진즉에 누나 말 좀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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