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은 내가 정하는 것
집수리를 하자면 베란다의 짐부터 치워야 했다. 그래야 방에 있는 살림들을 쌓아둘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들을 가려내느라 베란다 한쪽을 차지한 신발상자들을 열어보았다. ‘어머! 이 구두가 아직 있었네’ 새 신발이나 다름없는 까만색 하이힐이었다. 너무 예뻐서 최대한 아껴가며 특별한 날에나 신던 구두였다. 몇 년 전 난감한 일을 당하고 하이힐 종류의 신발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반갑기도 하고 왠지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외모와 마음의 상관관계는 별개인 까닭에 가끔은 잠자리 날개 같이 샤방샤방한 치마를 입고 싶은 날이 있었다. 거기에 끝이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도도하게 걷고 싶었다.
그날은 겨울의 끝자락이었고 눈이 온 뒤 비가 내렸다. 날씨가 궂으니 괜히 기분도 싱숭생숭 해졌다. 마침 시내에 볼일 있어 아주 오랜만에 비즈 장식이 달린 주름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외출을 했다. 점점 안 좋아지는 허리 때문에 굽이 높은 신발을 자제하고 있던 터였다. 국민은행 사거리쯤 갔을까. 나는 도저히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길은 온통 미끄럼판이었고 허리도 아픈 데다가 하이힐까지 신었으니 내 뜻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와야 했다. 날씨가 좋았어도 이 몸 상태로 하이힐은 무리였던 것이다. 집하고 너무 가까운 거리라 택시를 타기도 민망해서 삐딱 삐딱 게걸음으로 겨우겨우 집으로 왔다.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참 꼴불견이라고 혀를 끌끌 찼을 일이었다. 여자로서 하고 싶은 것들 따위는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굽이 높은 신발들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몇 번 신지도 안아서 새것이나 다름없는 신발들도 아깝지만 미련 없이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낡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기 미안하다 싶은 것들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고 깨끗한 것들은 아파트 재활용 통에 넣었다. 그날 내 기분이 슬펐는지,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담담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날 이후로 하이힐과는 완전히 작별을 했다. 한때는 기분전환에 특효약이나 다름없던 신발들이었지만.
부부동반으로 20년 넘게 유지해 온 모임이 있다. 의림동 주택가에 살다가 큰 길가에 있는 상가로 이사를 오면서 사귀게 된 이웃사촌들이다. 이제는 그 동네를 떠나 각자 다른 동네에서 살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를 한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만나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아끼던 굽 높은 하이힐들처럼.
아이들이 성장하여 제 짝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부터는 대화의 주제가 점점 며느리와 사위 손주들 이야기로 흘렀다. 휴대폰 바탕화면에도 손자 손녀로 채워지고 귀염둥이들의 재롱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자랑하고 싶은 그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맞장구를 쳐주지도 못하고 서먹하기만 하다. 아기는 꿈도 꾸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것에 감지덕지한 딸을 가진 나로서는.
아끼던 하이힐과 미련 없이 작별했던 것처럼 이제 그분들과도 작별해야 하는 때가 온 건가...?
집수리가 끝나고 베란다에 남아있던 하이힐을 신발장 한쪽에 정갈하게 넣어 두었다. 그것을 신을 수 있는 여자여서 행복했고 샬라라 멋을 내고 싶은 날 기분전환을 시켜주었던 추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웃사촌모임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옥계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갔던 때를 떠 올려 보았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신나고 어른들은 파도에 밀려온 바지락을 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추억을 떠올리니 어느새 빙긋 웃음이 인다.
며칠 전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내 기분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이야 어떻든 행복한 추억이 많은 내 기분은 ‘언제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