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 같은 내 인생
두 언니는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작은언니의 얼굴에는 손톱으로 할퀴고 꼬집힌 자국이 아물 날이 없었다.
나 또한 큰언니의 손에 뺨을 맞아 안경이 날아가 깨진 적이 있다.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새 안경을 살 여력이 없었다.
나는 언니가 쓰던 낡은 안경을 물려받았다. 도수가 맞지 않는 렌즈 너머로 세상을 보다 보니 시력은 급격히 나빠졌다. 이제는 안경을 벗으면 눈앞의 사람 얼굴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큰언니의 폭력과 두 언니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택한 길은 ‘박쥐’가 되는 것이었다.
큰언니가 잘해주면 큰언니 편에, 작은언니가 잘해주면 작은언니 편에 섰다.
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은 박쥐 생활은 나를, 눈치가 몸에 밴 어른으로 키워냈다.
어느 날, 외동으로 자란 회사 사수가 내게 물었다.
“숨나 씨는 어떻게 회사 사람들하고 다 잘 지내요? 진짜 신기해요.”
다섯 형제 중 넷째로 산다는 건 위아래로 눈칫밥을 주워 먹는 일이었다. 특히 내 아래가 ‘남동생’이라는 절대강자일 때는 더 그랬다.
장애가 있는 오빠의 대용품처럼 딸들이 줄줄이 태어나다가 마침내 얻은 아들이었으니, 그 존재가 얼마나 귀했을까.
사랑받던 막내 자리를 빼앗긴 나는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갓 태어난 아기 동생이 싫지는 않았다.
물론,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짓궂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추석 명절빔으로 받은 고동색 프릴 원피스를 남동생에게 입히고, 엄마의 뽀글이 가발까지 씌웠다.
“승이야, 누나 올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해. 알았지?”
단단히 일러두고는 온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우리 집에 거지 왔어! 구경하러 가자!”
내 못된 장난과 아이들의 놀림에 동생은 서러워 엉엉 울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남동생은 나를 볼 때면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왜 그랬을까.
얄밉고도 사랑스러웠던 동생에게,
그때의 나는 혹시 살아남기 위해 또 한 번 박쥐가 되려 했던 걸까.
도수가 맞지 않는 삶을 견디며, 세상을 흐릿하게나마 읽어내려 애쓰던 아이의 방식으로.
“이 기록이 닿았다면, 저장·공유로 응원해 주세요”
#온숨나 #기억의잔상 #생존본능 #가족사 #눈칫밥 #박쥐같은내인생 #에세이 #자전에세이 #문득 #생각난다 #동생과의추억 #막둥이 #사랑하는내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