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 창과 방패의 싸움

예의와 피로 사이, 나를 지키는 모순의 충돌

by 숨나

가끔 있다.
정말 순수하고 천진한데,
그래서 더 피곤한 사람.


요즘 말로 하면
뇌가 너무 순수한 사람.


앞뒤도, 좌우도 살피지 않고
자기 기분이 곧 진실인 양
말부터 던지는 사람.
정말 악의는 없다.


그런데 그 선함은
이상하게 늘
나에게만 상처로 돌아온다.


“나는 그냥 솔직한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 솔직함은 늘
남의 살 위에 흔적을 남긴다.


상처를 줬다는 자각도 없고,
상처를 받았다는 신호도 읽지 못한다.
뇌가 순수한 게 아니라
타인의 영역을 상상하지 못할 뿐인데.


그래서 나는 거리를 뒀다.
말을 줄이고,
약속을 피하고,
예의를 핑계 삼아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모든 신호를
‘아직 괜찮다’로 번역한다.
눈치 없이, 성실하게,
다시 다가온다.


대략난감하다.
무시하자니 내가 너무 모진 사람 같고,
만나자니 내가 너무 쉽게 다치는 사람 같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의 바른 얼굴로
피로를 삼킨다.


좀 밉긴 한데, 그래도 예의는 지키고 싶다.
아직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순 속에서
창과 방패가 사정없이 싸운다.





“이 기록이 닿았다면, 저장·공유로 응원해 주세요”

#숨구멍 #글로숨쉬기 #에세이 #자전에세이 #삶의기록 #미성숙의기록 #감정의언어 #버텨온날들 #숨트멍 #숨고르기 #물숨 #말하자면 #불행한가족사 #가족 #숨막힘 #숨막히는현실 #이방인 #시선 #기억의잔상 #이방인의호흡 #이민생활 #이민자의삶 #낯선문화


매거진의 이전글온숨나 - 온전히 숨 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