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호흡 : 척척박사

잃어버린 언어 위에 쓰는 글

by 숨나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척’을 하며 살아간다.
착한 척, 괜찮은 척, 좋은 척과 즐거운 척.
그 수많은 '척'을 겹쳐 입으며
나는 어느새 ‘척척박사’가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척은 아는 척이다.
사실은 잘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은 짙은 안개 속을 더듬는다.


호주에 와서 살면서
내가 가장 자주 하게 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 척,
미소를 머금고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는 일.


마음속은 늘 복잡한데
겉으로는 평온해야 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듣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단어를 붙잡아도 문장은 흘러가고,
나는 분위기에 기대어 겨우 의미를 짐작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알아들은 척’의 숙련자가 되어간다.


사실 한국에서도 나는 늘 ‘사오정’이었다.
말귀를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


모국어조차 서툴렀던 나였으니,
이방인의 언어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언어의 경계에서 내 자리는

자꾸만 지워져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잃어버린 자리 위에서
나는 조용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직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들.


아무도 내 표정을 보지 않는 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내 진심을 눕혀본다.


그 안에는
미소 뒤에 숨긴 쓸쓸함도 있고,
못 알아듣는 나의 작고 단단한 용기도 있다.


나는 오늘도 척척박사처럼 살아가겠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조금 달라지고 싶다.


척하지 않아도 온전한 사람.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적어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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