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 집 안에서 한 첫 독립 선언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에게 혼이 났거나, 언니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겠지. 어쨌든 그날의 나는 참아오던 무언가가 분명 터져 버렸다.
“이 집에서는 더는 못 살아!”
그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으로 나섰다.
국민학교 3학년, 인생의 첫 독립 선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폭염이 나를 반겼고, 시멘트 바닥은 발바닥을 데울 만큼 뜨거웠다. 햇빛은 한 치의 그늘도 허락하지 않았다.
몇 걸음쯤 걷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나가야 하지?’
가출의 목적은 점점 흐릿해졌고, 대신 묘한 기대가 스며들었다.
‘그래, 내가 사라지면 엄마가 나를 찾아 헤매겠지.’
그래서 나는 집을 떠나는 대신, 집 안에서 가출하기로 했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뒤편,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쌀포대기를 두르고 몸을 숨겼다. 완벽한 작전 성공이었다. 그늘 덕분에 생각보다 아늑했던 그곳에서, 나는 ‘가출 중 낮잠’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한참 뒤, 엄마와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의 나는 숨바꼭질의 고수라도 된 양 조용히 웃었다.
‘역시 나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아.’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기 한 마리의 습격으로 전설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쌀포대기를 벗어 던지고 모습을 드러내자 땀범벅이 된 엄마와 눈이 빨개진 언니가 보였다. 그제야 아주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나를 그렇게 찾았잖아. 꽤 인기 있네, 나.’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배운 건 단 하나였다.
가출에도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 그때의 나는 빈 지갑이었고, 덕분에 인생의 현실을 꽤 일찍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쌀포대기 냄새와 뜨겁던 계단의 감촉이 참 그립다.
그 시절의 나는 참 단단했고, 어이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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