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다른 자리에서 같은 사람일 뿐
비는 언제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흐릴 땐 세상도 비에 젖었고,
내가 맑을 땐 그 빗방울마저 반짝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비를 싫어했다.
비 오기 전 눅눅하게 달라붙는 공기,
운동화 밑창에 들러붙던 진흙,
그리고 무엇보다 우산을 갖다 줄 사람 없는 오후.
사실 그렇게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살대 하나 빠지지 않은 멀쩡한 우산 하나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우리 집 우산들은 어김없이 휘어져 있거나 살이 몇 개씩 빠진 채 현관 구석에 위태롭게 기대 서 있었다.
호주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정원의 나무들이 비를 머금고 숨을 쉬고,
텃밭의 잎들이 촉촉하게 고개를 드는 순간들을 보며
‘이제 나도 비를 좋아하게 됐구나’ 싶었다.
빗소리조차 다정하게 들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비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단지 비가 필요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식물이 비를 원했고,
나는 그 욕구 속에서 덩달아
비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저 사람, 예전 같지 않네.”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그건 오해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계절과 공기, 바람의 방향이 변했을 뿐이다.
햇살이 강하면 그림자는 짙어지고,
바람이 달라지면 말투도 바뀐다.
그러나 존재의 결은 변하지 않는다.
빛을 달리 받아 조금 다르게 보일 뿐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 속>이 떠오른다.
한 살인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이 각자의 진실을 말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짜 진실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죽은 자의 영혼조차
자기 입장에서만 말할 뿐이다.
진실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입장’,
그 좁은 시야 속에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 믿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말자고.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수반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게 본디 사람의 숙명일 테니까.
그렇게 냉소적인 척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흔들리고
작은 표정 하나에 하루를 망치곤 한다.
그게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방식이리라.
비가 내리는 오늘,
창가에 서서 생각한다.
한때는 그토록 피하려던 빗방울이
이제는 조용히 위로처럼 떨어진다.
결국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달라진 건,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뿐이었다.
그리고 비는 오늘도
내 마음을 닮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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